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을 개선하고 보건의료인을 적시에 공급하는 노력은 일부 전문인에게 한정된 권리나 의무가 아니다. 초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필수인력의 충원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시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보건의료 관련 학과의 증원 과정을 바라보면서 답답함과 초초함을 동시에 느낀다. 의대정원이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으로 묶여있다 보니 의사 수 비중은 주요국의 30~40%에 불과한 실정이다. 약학대학 정원은 2008년 20개 대학 1210명에서 2011~2019년 사이에 17개에서 신설돼 2020년 기준으로 37개대학에서 입학정원이 1753명으로 15년만에 45% 증원됐다. 간호대학 정원도 2008년 이후 16년간 2배 증가하며 올 해 간호대 입학정원은 2만3183명에 달한다. 과연 수요예측과 대응은 합리적이었을까?의사인력 부족으로 사회경제적 위기가 표면화되었고 응급처방까지 필요한 지경이지만 속시원한 해결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전문인력의 충원이 대학정원 충원의 단순한 문제만도 아니다. 신생아 수가 감소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지원자는 2년 연속 미달이다. 2022년도 전공의 모집에 소청과 수련의 충원율은 23.9%였으며, 2023년도 전반기 모집에서도 16.6%에 그쳤다. 이런 현상은 가임 여성 감소세와 출생률 저하로 2000년대 초부터 예견됐다. 유인책으로 소청과 전문의 수련기간을 3년으로 1년을 줄였지만 충원율 개선에 효과가 거의 없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입시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절벽현상’도 예견됐었다. 대학정원 감축을 유도한다던 대학평가제는 효력을 상실했고 자율적 구조조정이란 명분 하에 전국의 대학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한 형국이다.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필수인력의 양성, 공급 조정역할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 그룹의 책임은 막중하다. 인구감소와 생산성 저하, 지방소멸이라는 파괴력을 예견했던 역대 행정부와 전문가, 학자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적으로 경고했었다. 그러나 몇 몇 분야의 문제점은 오히려 심화되고 개선될 가능성 조차 요원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2027년까지 초·중등교사 채용규모가 20~30% 줄어든다. 교육부의 2024~2027년 중장기 초·중등 교과 교원 수급계획에 따르면 2025년 초등교사는 2900~3200명 선발 예정인데, 올해 신규채용 3561명과 비교하면 10.1~18.6%가 줄었다. 신규 초등교사 600명 이상이 내년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게다가 2026~2027년도 신규채용은 2600~2900명으로 최대 27%나 줄어들 전망이다. 미래사회에 대비한 필수인력의 증원이나 감축은 범국가적 전담기구를 갖추고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관련 기관의 전문성과 책임감 강화도 필요하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1년 1만명이던 변호사 수가 2020년에는 3만1757명으로 10년만에 2.5배 이상 늘었고 2025년에는 4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변호사 급증에도 변호사가 개입된 법률수요도는 제자리 걸음이다. 대법원이 집계한 2020년도 민사 본안 1심 사건 총 91만3000건 가운데 변호사 선임 없는 ‘나홀로 소송’은 71.2%에 달한다. 그리고 2015년 70.4%, 2017년 75.7%, 2019년 71.4% 등 70%대가 유지되었다. 변호사 수는 50% 이상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법률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도 심각하다. 필수전문인력의 추산과 공급이 현실과 괴리가 크고 법률, 교육, 보건의료 서비스가 현장에서 체감되지 못하는 원인과 체계를 신속히 손질해야 한다. 필수 의료공급, 연금개혁, 청년실업, 저출산, 탄소배출감소와 같은 시급한 국가적 난제의 해결은 서둘러야 한다. 정부의 원칙에 입각한 행정역량, 파업 등 반사회적 집단이기주의 표출은 자제하면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해결안을 도출하려는 이익단체의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전문가 정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방준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 대한약국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