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0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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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필수전문인력의 반사회적 집단이기주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을 개선하고 보건의료인을 적시에 공급하는 노력은 일부 전문인에게 한정된 권리나 의무가 아니다. 초고령화,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필수인력의 충원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시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보건의료 관련 학과의 증원 과정을 바라보면서 답답함과 초초함을 동시에 느낀다. 의대정원이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으로 묶여있다 보니 의사 수 비중은 주요국의 30~40%에 불과한 실정이다. 약학대학 정원은 2008년 20개 대학 1210명에서 2011~2019년 사이에 17개에서 신설돼 2020년 기준으로 37개대학에서 입학정원이 1753명으로 15년만에 45% 증원됐다. 간호대학 정원도 2008년 이후 16년간 2배 증가하며 올 해 간호대 입학정원은 2만3183명에 달한다. 과연 수요예측과 대응은 합리적이었을까?의사인력 부족으로 사회경제적 위기가 표면화되었고 응급처방까지 필요한 지경이지만 속시원한 해결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전문인력의 충원이 대학정원 충원의 단순한 문제만도 아니다. 신생아 수가 감소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지원자는 2년 연속 미달이다. 2022년도 전공의 모집에 소청과 수련의 충원율은 23.9%였으며, 2023년도 전반기 모집에서도 16.6%에 그쳤다. 이런 현상은 가임 여성 감소세와 출생률 저하로 2000년대 초부터 예견됐다. 유인책으로 소청과 전문의 수련기간을 3년으로 1년을 줄였지만 충원율 개선에 효과가 거의 없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입시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절벽현상’도 예견됐었다. 대학정원 감축을 유도한다던 대학평가제는 효력을 상실했고 자율적 구조조정이란 명분 하에 전국의 대학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한 형국이다.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필수인력의 양성, 공급 조정역할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 그룹의 책임은 막중하다. 인구감소와 생산성 저하, 지방소멸이라는 파괴력을 예견했던 역대 행정부와 전문가, 학자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적으로 경고했었다. 그러나 몇 몇 분야의 문제점은 오히려 심화되고 개선될 가능성 조차 요원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2027년까지 초·중등교사 채용규모가 20~30% 줄어든다. 교육부의 2024~2027년 중장기 초·중등 교과 교원 수급계획에 따르면 2025년 초등교사는 2900~3200명 선발 예정인데, 올해 신규채용 3561명과 비교하면 10.1~18.6%가 줄었다. 신규 초등교사 600명 이상이 내년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게다가 2026~2027년도 신규채용은 2600~2900명으로 최대 27%나 줄어들 전망이다. 미래사회에 대비한 필수인력의 증원이나 감축은 범국가적 전담기구를 갖추고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관련 기관의 전문성과 책임감 강화도 필요하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1년 1만명이던 변호사 수가 2020년에는 3만1757명으로 10년만에 2.5배 이상 늘었고 2025년에는 4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변호사 급증에도 변호사가 개입된 법률수요도는 제자리 걸음이다. 대법원이 집계한 2020년도 민사 본안 1심 사건 총 91만3000건 가운데 변호사 선임 없는 ‘나홀로 소송’은 71.2%에 달한다. 그리고 2015년 70.4%, 2017년 75.7%, 2019년 71.4% 등 70%대가 유지되었다. 변호사 수는 50% 이상 증가했음을 고려하면 법률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도 심각하다. 필수전문인력의 추산과 공급이 현실과 괴리가 크고 법률, 교육, 보건의료 서비스가 현장에서 체감되지 못하는 원인과 체계를 신속히 손질해야 한다. 필수 의료공급, 연금개혁, 청년실업, 저출산, 탄소배출감소와 같은 시급한 국가적 난제의 해결은 서둘러야 한다. 정부의 원칙에 입각한 행정역량, 파업 등 반사회적 집단이기주의 표출은 자제하면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해결안을 도출하려는 이익단체의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전문가 정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방준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 대한약국학회 회장

[윤석헌 칼럼] 과점이익이 가린 은행의 역할 부족

지난달 2일 비상경제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에 이어 은행권의 과도한 이익추구를 재차 질타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갑질을 해서 돈잔치를 벌이는데, 이는 은행이 과점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자꾸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지, 은행의 독과점 행태를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 10월말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을 ‘은행의 종노릇’에 비유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은행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책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났으며 관치금융을 부추겼다. 은행의 과점이익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은행 대형화를 추진한 결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은행은 정부가 주도하는 게임의 룰에 따라 열일 했을 뿐인데 이제와 초과이익을 문제 삼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은행시장은 비대칭정보가 넘치는 불완전시장으로 지나친 경쟁은 금융안정에 문제를 유발하고 자원배분의 양극화를 초래하여 소상공인들의 ‘종노릇’ 피해를 악화시킬 수 있다. 한편 금융은 규제산업인데 은행 행태를 나무라면서 금융당국의 방치를 나무란 것은 고작 팔이 안으로 굽은 정도다. 모두가 힘든 요즘 은행의 역대급 이자이익과 보너스 잔치 소식은 씁쓸하다. 그러나 이들은 개별 기업의 경영문제에 불과하며, 저비용조달과 담보대출로 짜여진 소위 ‘천수답 경영’에 안주해온 은행의 취약한 중개역할이 문제다. 만약 은행이 그동안 중개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초과이익이나 보너스 잔치는 모두 장려할 일이 아닐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보너스 잔치 질책 보다 은행의 중개역할 부재 극복이 절실한 과제임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세 가지 대안을 살펴본다. 첫째, 최근 금융권 등에서 논의되는 상생금융은 하책에 불과하다. 본래 상생금융은 은행의 당연한 책무다. 고객이 살지 못하면 은행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상생금융은 대증적이고 강제성을 지녀 관치금융에 가깝다. 그래서 이익 환원을 핑계로 정작 중요한 중개역할 활성화에는 눈 감을까 우려된다. 이자부담 경감이나 대환대출 확대 등을 압박하지만, 법과 제도에 의하지 않는 방식이 은행과 고객간 상생관계를 오히려 해치고 한국금융의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효과를 끼칠까 우려된다. 출연금이나 기부금을 확대하여 서민금융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 역시 서민의 곤경 해결 보다 은행의 배 불리기로 기울어 상생금융 본래의 취지를 벗어날 수 있다. 둘째, 상생금융과 함께 논의되는 횡재세(windfall tax)는 이자이익의 일부 환수라는 점에서 공통되나, 국회의 결정으로 관치 비난을 벗을 수 있어 중책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은행의 이자이익 일부를 횡재로 보는 이유는 은행이, 별다른 역할도 없이, 시장금리 상승에 편승하여 기존대출의 대출금리를 조달금리보다 빠르게 인상함으로써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국내은행 대출의 60~70%가 금리연동형인 현실에서 은행은 금리상승시 과거 조달한 기존대출의 조달금리가 아직 변하지 않았음에도 대출금리를 시장금리 또는 수신금리에 맞춰 상향조정함으로써 횡재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횡재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시장왜곡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왜곡의 교정효과가 기대된다. 횡재세원으로 차주고객의 횡재손(이자부담 증가)을 메우면, 소비와 투자 위축 및 신용위험 확대를 예방할 수도 있다. 다만 횡재세의 은행 중개역할 활성화 효과가 제한적임은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셋째로 상책은 천수답 경영으로 대변되는 은행의 기득권을 줄여 중개역할 활성화를 유도하는 안이다. 예로 지난 6월 7일 본지 칼럼에서 필자가 제안한 ‘주담대정책 이원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저축은행과 신협 등 비은행의 주담대 점유율 상승과 은행의 점유율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은행 수익의 단기적 감소가 예상되나 인적·물적 자원을 절감하여 고객 니즈 맞춤형 비이자이익 업무 개발에 사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거래형 금융이나 초과형 금융을 개발하거나 자영업자에 대한 컨설팅 및 지원 확대를 고려할 수도 있다. 한편 은행 자본규제에 대마 프리미엄을 추가하거나 경기대응완충자본(CCyB)을 시행하는 것도 건전성 요건 강화를 통해 천수답 경영 유인 축소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금융의 해묵은 과제인 은행의 천수답 경영 해소에 금융당국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올바른 금융개혁안이 제시되어 국내은행의 역할 강화를 이끌기 바란다.

[이슈&인사이트] 2030 부산엑스포 유치전의 득실과 교훈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로 확정됐다. 지난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압도적인 119표(득표율 72.1%)를 얻은 결과다. 빈 살만 왕세자가 앞장서서 초지일관 거국적으로 밀어붙인 유치 노력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본·중국·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아시아에서 네번째 엑스포 개최국이 된다. 어쨌든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부디 리야드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 엑스포의 부산 유치를 기대했던 우리 국민의 상심이 크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전력투구를 해왔던 부산 시민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져 버린 것처럼 절망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애써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유럽에 위치해서 더 유리한 입장이었던 로마보다 12표나 더 얻었다는 사실을 위안 삼을 수도 있다. 심기일전해서 2035년 엑스포에 다시 도전장을 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박빙을 예상한다던 정부의 분석과는 정반대로 BIE 총회의 투표 결과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165개국의 투표에서 90표의 차이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의 호언장담을 믿었던 국민의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다. 도대체 엑스포 유치 시도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확실하게 찾아내야 한다. 엄청난 예산을 썼고,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모든 책임지겠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모든 것을 묻어버릴 수는 없다.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자칫하면 우리가 엑스포?올림픽과 같은 초대형 국제 행사를 영원히 유치할 수 없게 돼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여름 세계잼버리대회의 참담한 실패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그동안 부산 유치를 위한 정부와 재계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한 낭비였던 것은 아니다. 모처럼 정부와 재개가 모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열심히 뛰었다. 실제로 국민의 단합된 유치 노력이 우리의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한국 산업의 글로벌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한상의가 상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우리 기업과 파트너십을 원하는 해외 기업이 크게 늘었고, 우리 기업의 글로벌 인지도 강화와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획보 등의 부수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의 존재감을 더 분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 근거 없는 억지는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유치 시도에서 드러난 문제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국제 사회에 분명하고 당위적인 개최 명분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개최하는 엑스포를 동아시아의 일본·중국·한국이 독차지하게 되는 불편한 상황에 대한 해명도 옹색했다. 하필이면 왜 부산인지에 대한 더 적극적인 설득이 필요했다. 부산이 국제 사회에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감동을 제공할 것인지도 당당하고 분명하게 밝혔어야 했다. 10년이나 묵은 ‘강남 스타일’이 이제는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산시와 정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2030 엑스포를 유치하겠다는 부산시의 2014년 결정이 국가사업으로 확정되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정부가 유치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시작하기까지 또 4년이 흘렀다. 지난해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부의 노력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일찍부터 나섰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미 대세를 굳힌 후였다. 대형 국제 행사가 지역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제 행사의 유치 및 개최 부담을 무작정 지자체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지난 여름 세계잼버리대회의 부끄러운 경험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국제 행사의 유치?개최에는 국민적 합의와 성원이 확실하게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도 국가의 위신과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초대형 국제 행사의 유치 실패를 볼썽 사납고 퇴행적인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부산 유치에 실패한 것은 못내 아쉽지만 치열하게 경쟁했던 사우디아라비아나 이탈리아를 원망하거나 비웃을 이유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막강한 오일머니와 뛰어난 외교력은 처음부터 누구나 알고 있던 상수였다. 내 탓에 관심을 집중해야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슈&인사이트] 월남 패망의 도화선이 된 정치인의 막말 설화

최근 여야 정치인들의 설화(舌禍)가 도를 넘고 있다. 설화는 자신을 망가트릴 뿐 아니라 그가 속한 조직, 더 나아가 국가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월남(남베트남) 패망의 단초를 제공한 마담 누의 어처구니없는 설화다. 마담 누는 고 딘 디엠 월남 총통의 영부인이다. 그는 당시 틱 쾅 둑 승려가 디엠 정권의 반불교·독재에 저항해 소신공양(분신)으로 열반한 뒤 디엠 정권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 여론이 들끓자 "만약 다른 바비큐 승려가 나타나면 나는 손뼉을 치겠다"고 발언했다. 1963년 당시 월남은 디엠 총통의 독재정권 하에 있었다. 가톨릭 신자인 디엠은 불교 승려들이 반정부적이라며 강제로 절을 폐쇄하고 승려들을 해산하는 등의 반불교 정책을 폈다. 틱 쾅 둑 승려는 정치적 저항으로 1963년 6월 11일 사이공 도심 한복판에서 소신공양을 했다. 틱 쾅 둑 스님은 당시 베트남의 덕망 높은 고승이었다. 소신공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혼이 육체를 초월하는 수준이 된 고도의 정신력을 가진 고승만이 가능하다. 사이공 도심 한복판에서 많은 군중 앞에서 실제 불길에 휩싸인 틱 쾅 둑 스님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AP 통신기자 맬컴 브라운은 이 장면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몸을 불태워서 봉공한다는 소신공양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소신공양한 틱 쾅 둑 스님을 ‘바비큐’로 폄훼한 마담 누의 발언이 알려지자, 디엠 독재정치에 불만이 많았던 승려들의 소신공양이 줄을 이었다. 틱 누 탄 꽝이라는 여승도 소신공양에 참여하는 등 68명의 승려가 소신공양에 동참했다. 이를 계기로 학생과 시민, 심지어 공무원까지 가담해 대도시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맬컴 브라운이 찍은 사진이 미국에 보도되면서 미국 사회가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으로 베트남 지원 정책에 대한 재검토 여론이 일어나고 사이공의 여론 조사에 착수한했고 두통 반 민 장군 중심의 군부 쿠데타에 대한 공작을 통해 미국은 디엠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디엠은 목숨을 잃게 된다. 이후 미군철수 등의 과정을 거치며 월남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불가에서는 입을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한다. 화를 자초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초입 수행자들에게 묵언수행을 부여한다. 불교에서는 항상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몸으로 짓는 신업은 살도음(살상·도둑· 음행)의 3가지 업이 있고, 뜻으로 짓는 의업에는 탐진치의 3가지 업이 있다. 그런데 입으로 짓는 구업에는 거짓말(妄語), 이간질(兩舌), 악담(惡語), 그리고 꾸밈말(綺語) 등 4개의 업이 있다. 따라서 삼업 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구업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등의 설화를 파급만 크고 절대적인 실익이 없는 업보로 취급한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잘 짖는다고 명견이 아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일구이언이부지자(一口二言二父之子)",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등도 설화를 경계하는 경구다. 중국 오대 시대의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라는 정치가가 있다. 그는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고 하니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경고한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구시화지문· 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안신처처우·安身處處宇).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북한의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과 한국의 대응

팔레스타인 급진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난 10월 7일 새벽 수천 발의 로켓포탄을 퍼부으며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15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40여명이 납치됐다. 모사드(Mossad) 등 최고의 정보기관과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아이언 돔 방어시스템을 갖춘 이스라엘이 무장단체에게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이스라엘은 물론 세계는 믿을 수 없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급습은 한국에도 북한의 기습 공격에 대한 한국의 안보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수도 서울은 휴전선에서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휴전선 너머에는 장사정포 등 중화기가 배치돼 우리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2018년 4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추진된 9·19 군사합의는 한국의 감시정찰 능력을 떨어뜨려 방어역량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 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모든 공간에서 남북의 적대적 군사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인데, 특히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한미 첨단 정찰항공자산의 활동을 제약해 적 타격자산 위치나 도발징후를 파악하는데 매우 불리하다. 문제는 9·19 군사합의를 제대로 지키는 쪽만 안보불이익을 받는 구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합의 이후 북한은 3000번 이상 위반했다. 2019년 11월 김정은이 서부전선에서 해안포 사격을 직접 지시했고, 2022년 12월에는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까지 침투했다. 한국군으로서는 북한의 ‘하마스식 기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정찰·감시역량 강화가 절실해졌다. 정부는 북한이 지난 21일 3차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9·19 군사합의 1조 3항에 대해 효력을 정지했다. 이 조항은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20~40km 공역에서 비행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이로써 군사분계선 일대의 공중 감시와 정찰 활동을 할 수 있게 돼 북한의 공격에 대한 감시능력을 높이게 됐다. 북한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북한 국방성은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며 "북남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충돌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전적으로 ‘대한민국’ 것들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어 군사합의에 따라 파괴·철수한 최전방 감시초소(GP)를 복원하는 작업에 착수하고 중화기를 투입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는 권총을 차고 근무하는 장면이 포착됐다.북한은 무력도발도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총선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다양한 도발을 벌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동시에 이에 따른 책임을 남한에 돌리는 선전전에도 열을 올릴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안포 포문 개방도 합의 파기 이전보다 크게 늘어 접경지역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데, 북한의 도발에 대한 물샐틈없는 대응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첫째, 높은 수준의 방위태세를 갖춰야 한다. 휴전선 인근 감시초소(GP)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한미연합방위 대응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미사일, 방사정포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응징하는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둘째,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북한의 위반과 파기선언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가 북한의 파기 선언을 불러 왔다며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는 움직임도 있다. 9·19 군사합의는 북한의 선의에만 의존하게 되어있고 게다가 북한이 수많은 도발을 하여 합의 위반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지키기 위해 부득이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셋째, 안보의식 강화다. 이스라엘은 정보실패와 함께 국론 분열이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을 강력하게 밀어 붙이면서 격렬한 시위가 발생하는 등 대혼란이 발생했고, 수천 명의 예비군이 복무 거부를 선언했다. 이런 국론 분열상이 하마스의 저항 의식을 일깨웠고, 혼란을 틈타 공격을 감행했다. 우리 사회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바람 잘 날 없다. 이는 북한의 선전전에 매우 취약하고 유사시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치인, 언론 등은 상대방 선의에 기댄 평화는 꿈과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하고 최소한 안보문제 만큼은 우리 국민이 합심해 대응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슈&인사이트] 여전히 말 뿐인 기업규제 개혁

얼마 전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주요 규제 현황과 개선방안을 담은 건의집을 펴냈다. 내용은 지배구조, 공정거래, 기업세제 등 3가지 분야에서 우리나라와 주요 국가의 제도를 비교한 것이다. 내용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개월간 분야별로 외부 전문가의 연구와 검증 과정을 거쳤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지배구조 분야에 흔히 ‘포이즌 필(Poison-Pill)’이라고 불리는 신주인수선택권제도가 반영돼 있다. 신주인수선택권 제도는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이 적대적 M&A를 시도할 때 공격자를 제외한 기존 주주에게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공격자의 지분을 희석시켜 경영권을 방어하는 시스템이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고 일본, 프랑스 등도 도입하고 있다. 공정거래 분야에는 대기업집단 규제,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이 있는데, 이런 규제들은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기업 집단, 지주회사에 대한 사전규제를 도입한 이유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대다수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전적 규제가 없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이 혁신을 통해 독점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이 혁신이 아닌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경쟁사업자의 사업을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담합을 하는 등 시장경쟁을 해치거나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경우에만 사후적으로 처벌한다. 조세분야에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과표구간 단순화 등이 담겼다. 대한민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은 26.4%로 OECD 평균(23.1%)보다 3.3%포인트나 높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과표구간도 우리나라는 4단계에 걸쳐 누진세 체계로 부과하는 데 비해 대부분의 OECD 국가는 과표구간이 1~2개로 단순하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과표구간도 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공동 건의집에 포함된 규제개선 내용들은 경제계가 오래전부터 개선을 요청했던 것들이 대다수이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은 과제도 많다. 일각에는 진부한 과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정말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핵심적인 규제개선 과제이기 때문에 진부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반복적으로 건의하는 것이다. 핵심과제인 만큼 그간 경제단체들은 세미나, 정책건의, 설명자료 제작, 전문가 기고, 정책당국과의 간담회, 언론홍보 등 규제개선을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일부 성과도 있지만 전반적인 규제의 틀과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이전 정부에서는 관련 규제가 더 강화되기도 했다. 정부는 매년 3000개에 달하는 규제개혁을 했다고 발표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규제를 개선했는데 기업들이 느끼는 규제개선 체감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지 경제단체에 물어보곤 한다. 정부의 규제개선 성과는 개별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 진 것 들이 많다. 규제를 풀더라도 개별기업 또는 몇 개의 관련 기업에만 파급력이 미친다. 물론 이런 세부적인 규제개선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규제개선 체감도를 높이려면 많은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인세, 지배구조, 공정거래, 노동 등 분야의 핵심규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 경제단체가 공동으로 건의집을 낸 것은 핵심규제 개선에 정책당국이 나서주기를 바라는 경제계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워낙 큰 과제이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어 정책당국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성장 고착화의 구조적 위기가 코앞에 와있다. 규제개혁을 통한 기업환경 개선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즉시하고 정책당국은 경제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핵심규제 개선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이상호칼럼] 총선 판 뒤흔들 가짜뉴스·여론조작 그리고 사이버 심리전

러·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팔 전쟁을 계기로 사이버 심리전의 중요성과 파괴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과 과시를 통해 국민 저항 의지 강화와 국제사회 지원 확보를 위해 언론, 소셜미디어 등 각종 매체에 가짜뉴스를 배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초토화 작전의 정당함을 확보하기 위해 아기 참수와 살해, 인질 강간 등 자국의 피해를 부각하는 여론전을 펴고 있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병원을 폭격당하고 무고한 어린이들이 죽어 나간다고 선전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탄을 유도한다. 세계 많은 나라나 정치 집단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가짜뉴스, 온라인상 기만행위를 동원해 선전·선동에 나서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서로 충돌하거나 반목하는 세력이 각종 매체와 인터넷을 장악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력은 매우 적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런 양상은 인공지능 등 관련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는 아주 고도화된 사이버 심리전의 일종으로 사람의 현실 감각 마비를 노리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작전을 ‘인지(cognitive)전’이라고도 부른다. 허위사실 유포, 불안감 조성, 여론 조작 등 사람들의 마음과 인식을 공격하여 저항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게 전쟁과 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손자병법에 나온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라는 명구와 부합한다. 사이버 심리전은 전쟁이나 위기 상황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용된다. 위기 때는 대중이 가짜뉴스에 경계심을 가지게 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사이버 심리전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경계심이 면역증강제가 되는 것이다. 반면 평상시에 은밀하게 진행되는 사이버 심리전은 당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더라도 잠재적으로는 매우 파괴적인 조용한 위협이다. 특히 가짜뉴스 확산을 통한 대중의 인지 왜곡과 잠재적 피해의식 조성은 공격 대상 국가 국민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극단적인 피해를 초래한다. 북한과 중국은 한국을 대상으로 사이버 심리전을 지속적으로 펼친다. 북한은 김정은 건강 이상설, 사망설 등의 가짜뉴스를 정기적으로 생산해 한국 관계자들에 혼란을 초래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 내 배신자 색출과 처단에 활용한다. 또 가짜뉴스 확산을 통해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등의 한국의 비극적 경험을 반정부 세력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국의 사이버 심리전은 더 파괴적이다. 중국의 가짜뉴스 확산 목표는 대국민 선동과 국론 분열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가짜뉴스를 대량 생산해 한국의 여론을 조작한 이유는 단지 사드 배치를 철회시키는 것만 아니었다. 중국은 한국을 철저히 굴복시키고 세뇌하여 앞으로 중국에 반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심리전을 폈다. 그러나 이런 중국의 헛된 시도는 한국인의 반중 감정이라는 역효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중국의 한국에 대한 여론 조작과 국론 분열 조장 시도는 확대일로다. 지난 13일에는 국가정보원이 중국이 한국 언론사를 위장한 웹사이트 38개를 개설, 운영해 왔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들 업체 언론사명 및 도메인을 실제 지역 언론사와 유사하게 제작하고 국내 언론사 기사를 무단으로 게재했다. 또 해당 사이트들과 보도자료 배포 서비스인 뉴스와이어를 활용해 ‘중국 정부의 코로나 공조 성과’, ‘한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 득보다 실이 많다’ 등의 가짜 뉴스를 배포해 한국민의 친 중국화 및 반미· 반자유민주주의 성향의 국민을 세뇌하는 데 활용했다. 자유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은 선전·선동에 취약하다. 정치권도 가짜뉴스를 일상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국민이 뭐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북한과 중국은 선전·선동과 심리전으로 한국 사회의 국론분열과 상호 반목을 조성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그들은 이것이 이미 좌우 정쟁으로 두 동강 난 한국 정치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21년 한국 4월 총선에서 중국 댓글부대가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중국의 사이버 심리전 활동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2024년 총선의 승리를 위해 명운을 건 투쟁을 시작했다. 이제 가짜뉴스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정당의 정치활동이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 등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 총선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총선의 공정한 진행을 위해 국내외적으로 가짜뉴스와 사이버 심리전, 여론조작이라는 삼각파도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슈&인사이트] 상생과 통합의 ‘그랑 수도권’

지방과 수도권의 상생과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역할분담과 네트워크, 인구 저상장 시대에 대비한 도시 기능 재편은 2000년대 도시정책의 시대적 화두였다. 최근 인구감소와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국토의 균형발전정책의 접근방법과 대안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로, 철도 등 교통인프라 투자, 국가 공공기관의 이전 등 전통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에도 불구하고 지방 인구소멸 위험이 증가하고 수도권 인구비중은 전국의 50%를 넘어서는 등 세종시와 혁신도시 개발 등의 극단적인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국토균형발전정책은 중앙정부의 지방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확대 요구, 수도권에 대해서는 규제 강화의 논리로 접근해왔다. 과거 국토균형발전특별법과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입법취지와 정책 목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연계되어 왔다. 수도권은 과밀부담금 부담, 지역상생발전기금 출연 등으로 지방발전 재원에 기여해 왔으나 수도권도 지역간의 발전격차가 심화되어 남북 간의 상생발전을 도모하고 전략적 프로젝트의 수립이 필요한 시기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단순히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생과 통합의 정책 철학이 필요한 시기이다.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는 산업 생산과 고용 역량이 부족하고, 집적이 이뤄지지 않은 지역경쟁력이 핵심적 원인이다. 전국 시·군·구별 지역생산성을 분석해보면 낮은 생산성은 주로 중소도시에 중심으로 나타난다. 일자리가 도시 내에 있지 않은 비 자족적 중소도시의 경쟁력은 악화되어 주변 대도시 등과의 상생발전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에 따라 인구와 지역경제 규모를 키워 대응해야 한다는 ‘메가시티(Mega-City)론’이 대두되고 있다. 메가시티론은 중앙의존적 지방발전을 탈피하고 수도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도권정비법 제도의 개선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지방화에 따른 독자적 생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동시에 고려하는 전략이 고려되어야 한다. 수도권 북부와 남부 모두 인구와 경제 규모를 키우고, 세계 유사 대도시권과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는 자강의 지역협력 발전전략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한강이라는 천혜의 수변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광역적 네트워크 도시발전을 고려하고 초광역적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 저자가 2009년 5월에 작성한 국토연구원 국토정책 Brief ‘세계도시의 녹색비전 :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그랑 파리(Grand Paris) 프로젝트’는 현 시점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 대도시들에 대한 파리 수도권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파리 수도권의 미래 발전 모습과 발전 전략ㆍ거버넌스 개편 등을 내용으로 하는 그랑파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국제공모를 통해 유명 도시·건축가 10개 팀을 선정하고, 21세기 파리의 비전을 ‘녹색과 휴먼’으로 제시해 교토의정서 이후 2030년까지 파리대도시권을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에 대한 제안서 제출을 요구받았다. 거버넌스 체계로 중앙정부에 새롭게 ‘수도권개발 차관’ 신임차관인 크리스티앙 블랑(Christian Blanc)에게 향후 30년 간의 파리수도권 전략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그랑파리 프로젝트의 핵심은 파리수도권에 대한 전략적 비전을 수립하고 지방자치단체 개혁 보고서에서 파리수도권 행정체제 개편을 검토하는 방안을 제시한 점이다. 또한 그랑 파리 프로젝트를 통해 파리수도권에 총 60조 원 규모의 대규모 교통인프라, 첨단연구산업단지 건설을 결정한 점이다. 그랑 파리 프로젝트를 통해 수도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행정체계개편과 이를 통한 국가적 상생발전을 도모한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최근 김포 서울 편입 등 행정체계 개편이 국가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러한 논의는 국가 전반적 차원의 경쟁력 강화를 고려한 ‘그랑 수도권’의 개념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강원권, 충청권, 영남권과 연계된 일자리의 창출과 초광역권으로서 역할 재편 등 비전설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또한, 수도권 메가시티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도시건축 프로젝트의 추진도 이루어져 상생과 통합이라는 비전하에 ‘그랑 수도권’ 전략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서 규정한 수원, 하남, 구리 등 과밀억제권역 규제 개선도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 메가시티의 ‘지역별 수도화’ 전략을 추진하여 지방 도시들 기능과 역할 확대를 지원하여 뒷받침해야 한다. 지방은 시?도 통합과 광역철도 인프라 확충사업 등 메가 프로젝트 추진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수도권은 수도권 규제 완화, 접경지역 개발, 도시간 기능분담체제 구축 등으로 기업경쟁력 강화, 주택공급 체계화, 광역교통의 합리적 조정 등 대도시권 지역발전정책으로 접근해 지방과 수도권의 상생적 통합발전을 꾀해야 한다.이범현 성결대학교 디자인정보공학과 교수/ 한국경관학회 부회장

[이슈&인사이트] PF 정상화 없이는 주거안정 요원하다

어느 덧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따듯한 연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이 시기에 부동산 시장은 싸늘한 이야기 뿐이다. 여의도·목동·압구정동과 수도권 1기 신도시 등 이른바 노른자위 아파트단지의 재건축 호재가 넘치는 데도, 어찌 된 일인지 이들 재건축 단지의 매물마저 호가가 한달 새 1억원 이상 빠졌다는 소식이 들린다.재건축 추진단지는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주변 신축 아파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건축 이후의 미래가치가 거래과정에 선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건축 추진아파트가 재건축이 완료 후 당초 예상했던 만큼 이상의 가치를 낼 것으로 장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미래가치에 매달려 무작정 거래에 나서기보다는 용적률, 고도제한, 역세권 여부 등 발전 잠재력, 일반분양분의 비율 등과 같은 사업성 여부와 함께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담금과 사업진행 속도 등까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들어 주택시장이 주춤하면서 사업성이 좋다고 평가되는 재건축단지 마저도 미분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자재값의 지속적인 상승과 고금리 영향으로 사업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사비가 크게 오르고 덩달아 분양가도 치솟다 보니 매수세가 끊기고 매매가격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더구나 사업자가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고금리 영향으로 PF대출 금리마저 내년에는 기존보다 5% 이상 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 2일 열린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향후 브릿지론 금리는 20%, 본 PF대출 금리는 15%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가령 시행자가 사업비로 1000억원을 빌렸을 때 1년에 부담해야 하는 PF 대출이자가 150억원이라는 것이다. 이자가 높더라도 일반분양분이 모두 분양되고, 분양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양가상한제의 적용을 받는 지역인 경우 시가에 한참 못 미치는 분양가격으로 일반분양이 이루어져 결국 조합원이 분담금을 통해 사업비의 이자를 떠안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에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30조원에 달하는 PF대출 상환기간이 속속 도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PF대출에 대한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저축은행이나 증권사 등은 PF 대출승인 자체를 꺼리고 있다. 결국 재건축 정비사업의 진행을 시작하거나, 시작한 단지들은 비싼 신탁 수수료를 부담하더라도 신탁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신탁방식의 경우 신탁사가 조합원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어서 재건축 기간이 길어지거나 협력사 등과 결탁하는 방식 등으로 인해 부수적인 비용이 막대하게 늘어나고 결국 토지소유자(조합원)들의 자금으로 신탁사와 그 협력사들만 배불리는 불합리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여기에다 시공사들은 치솟는 원자재값을 공사비에 반영하려는 과정에서 조합과의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기 일쑤다. 이 때문이 재정이 건실한 중견 건설사들마저 자금경색으로 부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올해들어 에이치엔아이엔씨(HN inc), 대창기업, 신일건설, 국원건설, 대우산업개발, 동흥개발, 삼호건설, 굿모닝토건이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이처럼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을 둘러싸고 겹 악재가 덮치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정상화를 위해 보증확대와 자금 공급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본질은 뒤로 한 채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내세웠다. 그마저 시중은행을 압박해 PF에 숨통을 트겠다는 것도 과연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시늉내기 대책보다는 금리안정과 건설사 유동성 확보 등 근본적인 처방을 내놔야 공급이 늘어나 주택시장 안정과 함께 경제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부동산 PF발 금융위기 시한폭탄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슈&인사이트] GenAI 세상 여는 AI 리터러시는?

생성형 인공지능(GenAI)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AI모델과 라이브러리를 제공하는 ‘허깅페이스’라는 플랫폼에 등록된 GenAI 모델만 40만개가 넘는다. 불과 1년 전에 대중에 알려진 챗GPT와 같은 GenAI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끝없이 확장하고 있다. GenAI는 단순한 기술을 뛰어넘어 혁신과 창의성이 융합된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설계자로서 비즈니스, 의료, 교육, 개인 생활 등 다양한 분야로 스며들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1이 조직에서 마케팅과 영업, 제품 및 서비스 개발, 고객 관리 등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업무에서 정기적으로 GenAI를 사용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는 업무에 GenAI 도구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많은 기업이 GenAI의 발전으로 인해 AI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GenAI가 사용되고 있다. 전립선암 진단, 문서화 및 환자 온보딩과 같은 관리 작업은 물론 신약 개발, 임상시험 계획, 고위험군 환자를 위한 예측 모델, 보철과 같은 개인 맞춤형 의료 기기 설계에 GenAI가 동원된다.교육분야의 경우 GenAI의 학교내 활용에는 아직 조심스럽지만, 개인화된 학습을 촉진하고 학생 참여를 향상시키는 ‘소크라테스식 교사’ 역할 등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GenAI 활용에 있어 교사가 학생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실제 이용도 더 활발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생활에서는 직장인의 경우 GenAI를 이용한 경험이 절반 정도인 가운데 세대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Z세대는 75% 이상이 사용한 경험이 있는 가운데 50대 이상 중장년층도 점차 관심을 높이며 적극적인 이용자로 바뀌고 있다. 한편으로 GenAI 기술에 대한 대한 인식과 이해가 높아짐에 따라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 유지와 다양한 분야에서 AI 채택 속도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포브지에 따르면 SW개발 분야에서 GenAI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에 주목하지만, 이 기술은 여전히 유동적으로 평가하면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가트너는 지속 가능한 AI 발전의 기둥으로 신뢰, 위험 및 보안 관리를 강조하면서 2024년의 중요한 트렌드로 ‘AI TRiSM’을 꼽았다. GenAI 시대는 단순히 정교한 알고리즘의 출현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문해력, AI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혁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AI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 지를 고민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GenAI의 의미, AI의 윤리, 인간 정체성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더 이상 도구로서 AI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파트너로서 AI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바로 AI리터러시 사회의 도래다. AI 리터러시란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 기능은 물론 윤리적 측면을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잠재적인 위험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GenAI 시대의 AI 리터러시는 단순히 기술을 사용하는 능력을 넘어서 개인적, 전문적, 창의적인 측면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소유해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필자는 GenAI 시대를 열기 위한 세가지 AI리터러시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GenAI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방언으로 ‘프롬프트’를 잘 사용해야 한다. 프로그래밍이 AI 모델을 구축하는 기반이라면, 프롬프트는 AI 모델의 항해를 돕는 바람이다. 프로그래머가 AI의 신경경로를 설계한다면, 프롬프터는 AI의 지성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프롬프트 작성 기술은 GenAI의 방대한 잠재력을 열어주고, 소통하는 방식에 따라 창의력과 분석능력을 크게 증폭할 수도 있고, 왜곡되고 편협한 관점에서 컨텐츠를 생성할 수도 있다. 둘째, GenAI가 사회에 더욱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논의의 중심은 필연적으로 윤리와 교육으로 옮겨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오용을 방지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편견과 잘못된 정보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과 감시를 통해 AI를 개선하는 동시에 사용자에게 책임감 있는 AI 상호작용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새롭게 떠오르는 AI 윤리 분야를 교육 커리큘럼에 통합해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퇴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의 힘에 대한 존중과 그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부와 국제기구는 AI세상의 심판자가 아니라 오용과 과잉 의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면서 AI의 흐름을 사회적 풍요로움으로 이끌 수 있는 안내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AI와 함께 살아가야 할 기둥을 만들고 있고, AI 리터러시는 그 기둥에 쓰여질 잉크다. GenAI시대에 인간 정신에 대한 끊임없는 헌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김한성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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