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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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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늦게 가더라도 안전한 게 최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3.26 15:44

정종오 에너지부장


포항지진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포항지진과 지역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 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사단은 1년 동안 포항 지열발전소와 지진 발생 관련성에 대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조사단은 "포항지열발전소에서 5번의 자극이 있었고 물 주입 지하정에 물을 넣으면서 지진이 촉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물 주입으로 촉발지진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었다. 그 이유로 조사단은 물 주입 이전에 있던 지하 단층이 물 주입 이후 활성화된 흔적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본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사단은 단층 기하학과 응력 방향을 합쳐 해석할 경우 전체적 결론은 물 주입에 의해 포항지진이 촉발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번 조사단의 판단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우선 그동안 경제적 성과(결과)에만 주목하던 모든 공사가 안전을 무시했다는 측면이다. 결과와 과정을 두고 우리는 언제나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떤 곳에 무엇을 짓든 안전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우리는 애써 외면해 왔다. 앞만 보고 무조건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한몫 하지 않았을까.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모두 용서되는 문화가 만든 비극이다. 이 같은 인식 시스템은 이제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촉발지진이란 판단이 나오면서 당장 포항시민들이 나섰다. 지진으로 피해를 본 포항 시민들의 관련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으로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봤으니 시민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럽다.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조사단의 ‘촉발지진’ 판단에 따라 포항시민들을 달래기 위한 수순이다. 지난 22일 산업통상자원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홍의락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인재(人災)로 지진이 발생했다는 조사단 발표를 토대로 그동안 지열발전소 건립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피해자를 위한 대책 마련에도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열발전소는 주로 화산지대 같은 곳에 설치하는 등 입지 조건이 중요한 발전소 형태"라며 "이명박정부 때 안전 문제를 사전에 철저히 검토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굴착해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전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 의한 것인 만큼 철저하게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지난 24일 포항을 찾았다. 포항지진 관련 특별법 마련을 약속하는 등 특정 정권 탓을 하는 대신 지진 피해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나 원내대표는 "다른 정당과 힘을 합쳐 포항 지진과 관련한 특별법을 만들겠다"면서 "전임 정권 탓을 얘기하는 민주당에 상당히 실망했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의 해법과 무관하게 이번 조사단의 ‘촉발지진’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겁다. 당장 이 문제는 문재인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촉발지진’이 불거지면서 신재생에너지 전반에 불똥이 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밀어 붙이는’ 막무가내 식 정책이 아니라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소연료, 고형폐기물 등 전국 발전소 건립 주변 주민들은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천 동구에는 지난 1월 40메가와트(MW)급 연료전지 발전소 착공이 예정돼 있었는데 무기한 연기됐다. 발전소 허가 취소를 주장하고 있는 인천 중·동구 평화복지연대의 김효진 사무국장은 "발전소에 대한 기본적 불안감이 있어 연료전지 발전소가 안전하다는 정부의 말을 100% 신뢰할 수 없다"며 "주택지 인근 주민들 의견 수렴 없이 상용화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발전소를 추진하는 데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앞세워야 할 것이다. 실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있는데 지역 주민들의 발발 또한 만만치 않다. 주민과 토론을 이어가고, 안전성 진단에 있어 주민을 참여시키는 시스템 마련 등이 필요하다. 늦게 가더라도 안전한 게 그 무엇보다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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