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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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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 합의에도 20달러선 무너진 국제유가… "바닥쳤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4.16 14:03

▲OPEC(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주요 산유국의 감산 합의에도 국제유가가 18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유가가 바닥을 쳤다"고 밝히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감산합의가 부결됐을 때에 따를 수 있는 유가폭락 리스크가 없어져서 유가가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는 주장이다.

15일 댄 브루예트 에너지부 장관은 미 경제매체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증산과 저가공세를 배경으로 한 산유국 석유전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 등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감산합의가 이루어진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OPEC(석유수출국기구)과 러시아 등 10개 비OPEC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이 하루 약 1000만 배럴에 달하는 감산에 합의를 못했을 경우를 생각해봐라"며 "감산량이 제로(0) 확정됐을 경우 유가는 현재 수준보다 현저히 더 낮아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브루예트 장관은 "그동안의 OPEC과 주요 20개국(G20)과의 대화는 타격받은 원유시장을 완화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점을 고려하면 현재 유가가 바닥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원유시장은 기록적인 공급물량, 소진되고 있는 글로벌 원유 저장시설의 여유공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글로벌 락다운 조치에 따른 수요 둔화 등 삼중고에 시달리면서 국제유가가 올해 들어 55% 가량 급락했다.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는 4월 하루 원유 수요가 290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25년 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이라고 밝혔다.

OPEC+는 이에 맞서 5월 1일부터 6월 말까지 두 달 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이달 12일 합의했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를 불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1.2%(0.24달러) 하락한 19.87달러로 장을 마감하면서 배럴당 20달러선이 무너졌다. 이는 또한 2002년 2월 이후 약 18년 만의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 역시 배럴당 6.45%(1.91달러) 하락한 27.69달러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예트 장관은 "감산의 목적은 유가 반등이 아닌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타결된 것"이라고 강조하며 "최소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하다"고 설명했다.

브루예트 장관은 또한 "현재 우리의 급선무는 수요둔화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유가가 한 자릿수 수준까지 폭락하는걸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네이버금융


◇ 저유가로 도산 위기에 놓인 셰일 업계…"어느 때보다 강한 회복세 보일 것"

아울러 브루예트 장관은 저유가로 인해 도산위기에 놓인 미국 셰일 업계에 대해 "셰일 산업에 뛰어든 업체들 중 일부는 차입금의 비율이 상당히 높고 파산에 직면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셰일 업계는 어느 때보다 강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현재 미국의 석유 산업은 저유가로 인한 최대 피해자로 거론되고 있다. 셰일 업계는 채굴 원가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유가 폭락세가 장기화하면 버티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스타드 에너지는 올해 안에 석유 사업과 관련된 일자리 최대 24만 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지난달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증산 등으로 석유 전쟁에 돌입한 배경이 시장 점유율 확보보다는 미 셰일 업계를 겨냥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브루예트 장관은 "산유국 석유 전쟁과 이에 대한 여파는 미국 내 여러 관계자들 사이에서 ‘비상벨’로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셰일 업계가 연쇄적으로 부도에 나서게 되면 또 다른 차원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는 올해 11월 대선을 치러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대 악재 중 하나로 꼽힌다.

또 대통령 당선 이후 힘들게 이룬 미국의 ‘에너지 독립’이란 위상도 무너지게 된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2018년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거듭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의 원유 전쟁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것도 이같은 이해관계를 고려한 결정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 합의에 나서기 위해 지난달 각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휴전을 촉구했다.

사우디를 향해선 미국에 수입되는 사우디 석유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사우디 에너지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셰일오일 산업에 손해를 끼칠 의도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산유국 감산 협상 막바지에 걸림돌이로 거론된 멕시코가 합의에 나서게 된 것도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다. 멕시코는 OPEC+의 감산 제안량을 거부하며 합의안에 서명하지 않고 회의장을 이탈했다. 멕시코의 서명 없이는 최종 합의안 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미국이 일부를 대신 부담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으로 인해 멕시코가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OPEC+ 감산합의가 타결됐다.

이와 관련, 브루예트 장관은 "대통령은 어떠한 형태로 미국 시장을 위협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며 "만약 원유시장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의도적이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 그에겐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고 이를 거리낌없이 활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산유국들이 감산에 합의하도록 이끈 것처럼 저유가로 인한 미국의 셰일 산업의 붕괴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만큼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미국의 셰일 업계가 부활할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 미국 감산에 대한 업계 의견 분분


한편, 미국 셰일 업계 사이에서는 감산을 둘러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활동하는 주요 셰일 업체 중 하나인 파슬리 에너지의 멧 갤래거 최고경영자(CEO)는 15일(현지시간) CNBC의 간판 프로그램인 ‘매드 머니’에 출연해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우리가 빠르게 대응에 나서지 않는 순간 국내 산업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이는 단순 우리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준다"며 "석유·가스 산업과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근무자들이 텍사스 주에 36만 명이 있고 전국 기준 100만 명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갤래거 CEO는 "이러한 업체들이 수익성 등으로 문을 닫게 되면 다신 활동을 재개할 수 없게 되어 결국 과거처럼 해외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갤래거 CEO는 또 원유수요가 하루 3000만 배럴 감축된 것을 고려하면 OPEC+가 감산에 합의한 하루 970만 배럴은 충분하지 않는다며 "업계가 직면한 최대 규모의 수요 쇼크다. 가능한 선에서 우리 모두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또 다른 셰일 업체인 다이아몬드백 에너지의 케스 반트 호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강제적인 감산 조치가 생기면 우리는 당장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이는 당장 3000만 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대했다.

원유생산량을 결정할 수 있는 텍사스 철도위원회(TRC)는 전날 공청회를 열어 감산 문제를 두고 협의에 들어갔다. 미국은 반독점법 등으로 인해 대통령이 직접 감산을 결정할 수 없지만 TRC에게는 가능하다. 공청회에는 55명의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찬반 양론을 펼쳤다.

그러나 15일 텍사스 트리뷴에 따르면 TRC가 10시간의 공청회 끝에 원유 감산과 관련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웨인 크리스천 공동위원장은 상원 의원인 폴 베튼코트를 포함한 몇몇 공화당 의원들이 감산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천 위원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업계의 의견이 엇갈렸을 수 있지만, 세계 원유 시장 가격 안정화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통합됐다"면서 "우리는 곧 다시 모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텍사스는 지난 1970년 이후부터 생산량을 제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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