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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전기요금 인상·온난화 부채질"...美, 원전 시장 주도권 잃을수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5.29 14:29

IEA '원자력발전의 역할' 보고서...선진국, 2040년 공급 발전량의 66% 손실

각국 신재생 확대로 전력 대체한다지만...저장용 시설확충에 따른 전력비용 증가

불안정한 공급도 문제...화력발전 필요해

"노후원전 폐기보다 수명늘려야…온난화 가속화"

▲신고리 5,6호기 (사진=연합)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이 안전성, 경제성 등을 이유로 원자력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가운데 원전을 폐쇄할 경우 앞으로 수십억 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추가로 배출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특히 미국은 원전시장을 둘러싸고 중국, 러시아와의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경제성’ 이유로 선진국 잇단 원전 폐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7일(현지시간) ‘청정에너지 시스템의 원자력 발전의 역할’ 보고서에서 "정책변화가 없을 경우 선진국들은 2025년까지 원자력 공급 발전량의 25%를 잃게 되고 2040년에는 무려 66%를 잃을 수 있다"고 밝혔다.

IEA는 "원전 수명 연장이나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40억 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발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티 비롤 총장도 "원전의 발전 비중이 줄어들 경우 글로벌 에너지 전환에도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IEA에 따르면 원전은 수력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큰 비(非)탄소 발전원으로, 세계 발전비중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에게는 원전이 30여 년간 발전비중이 가장 큰 비탄소 발전원으로 자리매김 했다. 지금도 세계 각국들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2018 세계 비(非)탄소 발전원별 발전량 (단위:TWh, 테라와트시), 자료:IEA / 범례(좌에서 우): 원자력, 수력, 풍력, 태양광, 기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진국은 원전 발전비중을 줄이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에너지전환을 위해 원전을 가동시키고 있지만 그 규모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 미국 내 원전의 평균 가동기간은 39년, 유럽은 35년이다. 기대수명인 40년이 다가오면서 엑셀론, 남가주 에디슨, 엔터지 등 미 전력업체들은 미국 내 원전을 폐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국내 모든 원전을 폐기할 계획이다.

탈(脫)원전을 내세우는 정부 정책에 이어 안전 규제 강화로 전 세계 원전 452곳이 수익 창출에 난항을 겪으면서 향후 원전은 폐기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반면 태양광, 풍력 등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는 발전단가가 저렴해지면서 원전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그동안 신재생에너지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으나 비싼 가격으로 인해 외면받았고 업계에서도 가격이 저렴한 원전을 선호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의 기술발전으로 인해 균등화발전비용(LCOE·전기 발전원별 객관적인 비용을 산출하는 것)이 낮아지면서 원전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40년 기준 원전, 태양광, 풍력의 LCOE는 1MWh(메가와트시)당 각각 100달러, 50달러, 50달러로 추정된다. 유럽도 미국과 비슷한 추세로 LCOE가 각각 110달러, 85달러, 90달러로 예상된다. 반면 일본은 2040년이 되어도 원전의 LCOE는 태양광, 풍력보다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IEA에 따르면 1GW에 달하는 원전 발전설비를 10년 동안 연장할 경우 약 5억∼10억달러의 (약 5969억원 ~ 1조 1938억원)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발전회사들은 원전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추가 투자를 꺼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발전회사들은 원전운영에 대한 수익성 악화로 원전을 조기폐쇄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가동되고 있는 90기의 원전의 수명은 60년으로 설계됐지만 대다수는 이미 조기 폐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력한 환경규제를 도입 중인 유럽의 경우 신재생에너지가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원전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일본은 미국, 유럽과 다르게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석탄과 천연가스도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원전시장 역시 고전을 면치 못치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원전에 대한 지지도가 약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 주요 국가별 원전 발전설비 감소추이 (단위:GW), 자료:IEA / 범례(좌에서 우): 유럽연합, 미국, 일본, 기타 선진국


선진국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는 더욱 추진하기 어렵다. 핀란드, 프랑스, 미국에서 계획된 새로운 원전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되지도 않았고 비용이 초과되는 점도 부담이다. 한국의 경우, 해외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정해진 예산 내에서 차질없이 완공시킨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탈원전을 강조하는 정부정책으로 해외 수출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리 비롤 사무총장은 "원전 수명 연장은 다른 선택지에 비해 경제적이지만 원전은 치솟는 운영비 때문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IEA 자료에 따르면 원전 수명을 연장할 경우 2040년 기준 미국, 유럽과 일본 원전의 LCOE는 1MWh당 43달러로 전망됐다.

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신재생에너지 및 화석연료와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금은 물론 구조개혁도 필요하다"며 "직면하고 있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원전의 발전비중은 미국,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국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화석연료 발전소에도 비상 전력 제공시 보상금을 제공하고 있지만, 원전은 아무런 혜택이 없어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원전 신축이나 개보수 없이 폐지에만 나설 경우 현재 약 280GW에 달하는 원전 발전설비가 2040년에 무려 90GW 수준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특히 유럽에서의 발전설비 감소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 2040년에 에너지믹스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4%로 줄어들 전망이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8%, 2%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 폐기되는 원전을 신재생으로 대체하려면?…전기요금 상승 불가피

선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이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IEA는 원자력 발전 비중이 급격하게 줄면 전기요금이 증가한다고 강조했다.

원전이 폐기 될시 원전이 생산하는 비탄소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보완해야 함으로써 투자비용의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의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IEA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발전설비는 선진국 사이에서 지난 20년 동안 약 580GW 성장했다. 만일 세계 원자력 발전량이 2040년까지 66% 줄어들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현재 대비 5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1조 달러에(약 119조원) 달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도 앞으로 7년 이내 11.7GW의 원전설비가 미국에서 폐기될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경우 약 3650만개의 태양광 패널 또는 약 5043기의 발전소급 풍력터빈이 추가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한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 설비가 확장됨으로써 전력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시설도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 전력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원전의 계속운전과 신규건설이 없다면 OECD국가에서 연간 800억 달러(100조원) 규모의 전기요금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IEA는 "1998년 전 세계 비탄소 발전 비율은 36%였지만 지난해에도 36%를 유지했다"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확대되면서 비탄소 발전량이 늘었지만, 동시에 원전이 폐기돼 그 효과가 상쇄됐다"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려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IEA 자료에 따르면 원전을 통해 지난 50년 동안 약 550억 톤에 달하는 온실가스가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지난 2년 동안 글로벌 에너지 부문에서 방출된 온실가스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1971-2017 원전을 통한 이산화탄소 누적 절감량 (단위: 10억톤), 자료:IEA / 범례(아래서 위): 유럽연합, 미국, 일본, 한국, 캐나다, 기타 선진국, 개발동상국


특히 지난해의 경우 세계는 폭발적인 신재생에너지의 성장을 맞이하였지만 전력수요 증가량이 비탄소 전력 공급량을 웃돌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은 사상 최고치로 기록되었다.

신재생에너지의 최대 난관인 간헐성 문제도 에너지 전환을 발목잡고 있다. 날씨와 계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태양광·풍력 발전은 원전에 비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이 폐기될 경우 천연가스·석유·석탄 등의 화석연료를 동원해 전력 생산량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조사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도 "친환경 에너지원의 비중을 늘리고 있는 세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석유와 천연가스는 앞으로 미래에서도 주요 원자재로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BNEF는 2050년까지 천연가스 발전설비가 63%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천연가스는 신재생에너지 위주로 재편되는 발전체계에서 ‘발전의 유연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BNEF는 천연가스의 수요가 언제 피크를 찍을지는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천연가스 수요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롤 총장은 "원전의 도움 없이 안정적으로 주력 에너지원의 세대교체를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며 "원전의 미래는 각국 정책입안자들의 손에게 달려있다"고 밝혔다.


◇ 美 원전 폐기로 ‘글로벌 원전 리더십’ 빼앗긴다는 주장도 제기

▲국가별 원전 수명 현황 (자료:IEA) / 범례: 청=10년 미만, 노=10~30년, 적=30년 이상 / 우측 Y축 = 평균 원전수명


한편, 미국은 원전 폐기절차를 밟고 있는 반면 주요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원전 발전비중을 확대하고 있어 미국이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CNBC는 공화당의 마이크 크라포 의원과 민주당의 쉘든 화이트하우스를 인용해 "미국의 원전산업은 저렴하고 풍부한 천연가스로 인해 전국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세계 원전시장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이 역풍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CNBC는 "기후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국가 안보 등에 따른 도전과 과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은 경쟁국들에게 원전 시장의 주도권을 뺏기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두 의원은 ‘원전시장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 제고’를 위한 테스크포스를 꾸려 이와 관련 보고서를 최근 공개했다.

EIA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발전량 가운데 천연가스 비중은 35.1%에 달한다. 원전의 발전비중은 19.3% 수준이다. 그러나 2025년까지 약 12개의 원전이 미국에서 폐기되기 때문에 원전의 발전비중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또한 IEA에 따르면 지난해 원전 발전설비가 약 11.2GW 수준으로 증가했지만, 이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추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CNBC도 "현재 세계에서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원전 중 60% 이상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산업구조 개편 계획인 ‘중국 제조2025’의 일환으로 미래 에너지 패권을 쥐기 위해 본격적으로 핵 기술을 개발하고 원전을 늘리고 있다. 실제 IEA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중국의 원전 중 80%는 운영기간이 10년 미만, 20%는 10∼30년으로 나타난 반면 미국의 경우 90%가 운영기간이 30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국 원전의 평균 수명은 7년이다.

통상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물과 기름’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둘이 손을 잡았다는 점은 원전시장에 대한 미국의 패권확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CNBC는 "정치적 성향이나 지역과 상관없이, 원전 관련 기술개발과 이에 대한 리더십 확보는 나라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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