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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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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조원’ 노르웨이 국부펀드, 석유가스 주식 전량 매각한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11.18 17:28

▲노르웨이 북해 유전의 해상 플랫폼(사진=A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한화 1천조 원의 자금을 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석유와 천연가스 부문 주식을 전량 처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7일 파이낸셜 타임스, 블룸버그,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재무부에 석유와 천연가스 관련주의 처분을 건의했으며 재무부 측은 이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중앙은행은 국부펀드가 이미 석유와 천연가스 부문에 충분한 익스포저를 갖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투자 비중을 대폭 줄인다면 국부펀드가 석유·천연가스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에 덜 취약해질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에길 마첸 중앙은행 부총재는 이번 건의의 배경에 대해 "리스크 분산이 우리의 관점"이라고 말했다. 국부펀드의 자산이 불어남에 따라 투자처를 다변화하려는 의도이며 지금이 이를 실행할 적기라는 설명이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유가 안정기에는 에너지 주식이 시장 전체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하락기에는 시장 전체보다 훨씬 하락세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중앙은행 측은 이번 건의가 향후의 에너지 업종이나 유가에 대한 구체적 전망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주식의 1.5%를 보유한 큰 손이라는 점에서 다른 펀드 매니저들은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보유한 자산의 가치는 올해 들어 1조 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 부문에 대한 투자의 비중은 약 6%를 차지한다.

국부펀드는 지난 20년간 석유와 천연가스 업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BP와 로열 더치 셸, 토탈, 셰브런, 엑손 모빌 등 세계적인 석유회사들의 주식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이번 건의는 정부와 의회의 승인 절차를 받아야 하는 만큼 국부펀드가 당장 매각에 나설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는다. 노르웨이 재무부는 이르면 내년 가을에나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로열 더치 셸과 엑손 모빌 등 일부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는 뉴스에 즉각 반응을 보이며 하락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보유한 에너지 기업들의 주식은 셸이 53억 달러로 가장 많고 엑손 모빌이 그 다음이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의 이번 발표로 화석연료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유럽 최대 석유생산국조차 석유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지난 20년간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석유 투자를 계속해서 늘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텍사스대 에너지연구소 마이클 웨버 부국장은 뉴욕타임스에 "석유와 가스로 돈을 버는 나라가 주식 처분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에드워드존스인베스트먼트의 에너지 분야 수석연구원 브라이언 영버그는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결정을 뒤따르는 움직임이 커진다면 실질적인 충격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의 금융전문 온라인매체 브레이킹뷰스는 대형 투자기관 사이에서 석유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4년 이후 유가가 급락한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면서 화석연료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압력 또한 커지고 있다. ‘원조’ 석유재벌 록펠러가의 가족펀드는 지난해 엑손모빌 주식 전부를 처분하고 석탄과 캐나다 오일샌드 투자도 모두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교원연금(CalSTRS)도 올해부터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 석유·천연가스 주식의 1.5%를 보유한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관련 주식 처분 계획을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앞서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주식 처분을 초라하게 만드는 규모"라고 보도했다.

벨기에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리디파인 소장 소니 카푸어는 "석유·가스업계의 강력한 로비에 맞선 상식의 뒤늦은 승리"라면서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앞으로 녹색 투자를 10배는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환경보호단체 세이프클라이메이트켐페인 대표 댄 베커는 "그간 화석연료 퇴출 운동은 환경단체와 대학, 소규모 기업 등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졌지만 노르웨이의 이번 발표로 크게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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