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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원전, 정상안전과 비상안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6.21 16:11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우리는 안전에 대해 배우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다. 위험해 보이면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귀신은 위험할까? 우주유영은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옳지 않을 수 있다. 경험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감각적 판단은 오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원자력안전공학을 가르친다. 이는 원자력시설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학문이다. 공학적으로 시설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원자력을 완전하지 않은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다루기 위해 법과 제도 그리고 행정적인 측면도 함께 다룬다.

즉 안전을 감각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예컨대 방사성물질을 가두는 방벽이 실패할 수 있다면 다중으로 설치하고 고장나면 안 되는 중요한 부품이 있다면 이중으로 갖추고 그마저도 서로 다른 제품을 사용해 공통 원인으로 한꺼번에 고장나는 사태를 막는다. 이중설비에 대해서도 전력계통이 격리되도록 한다. 마치 자동차의 에어백과 같이, 운전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사고에만 대비한 설비를 둔다.

이런 것이 공학적으로 시설을 안전하게 건설하는 원칙이다. 특히 중요시설을 설계할 때는 계산한 사람, 검토한 사람, 승인한 사람이 각각 실명으로 서명하도록 하고 있다. 독립된 규제기관이 검토를 하도록 하고 그 절차와 내용은 법으로 만들어놓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행정적인 절차가 된다. 지난 60년간 원자력시설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안전공학은 체계를 갖추고 경험을 축적하였다.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대비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경주지진과 관련해서도 오히려 국민이 봐주었으면 하는 것은 원전에 지진을 감시하는 설비들을 따로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과 이미 안전정지지진(Safe Shutdown Earthquake)과 운전기준지진(Operating Base Earthquake)을 정해두었고 이 절차에 따라서 가동을 정지하였다는 사실이다. 안전은 정상안전과 비상안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상안전은 정상운전을 하는 동안의 안전성이고, 비상안전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안전성이다. 예컨대 석탄발전이나 LNG발전은 정상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이산화탄소와 공해물질을 배출한다.

비상안전은 사고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때는 원전의 재사용 여부는 문제가 아니며 사고로 인한 국민과 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는 가압경수로를 택하였고 여기에는 격납용기가 있다. 이는 원자로 내부에 있는 물질의 양, 그리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열량, 이들이 팽창되었을 때의 압력과 부피를 고려해서 용적과 설계압력을 결정한다. 결국 원자로 내의 모든 안전기능이 전부 상실되어도 이 격납용기가 방사성물질을 가두도록 설계된다.

이 또한 실패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또 바람이 한 쪽으로만 부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부지경계에 사람이 24시간 서있을 동안 받게 되는 방사성피폭량이 작업종사가가 평생 한 번 정도 받아도 되는 수준으로 설계된다. 우리는 정상안전과 비상안전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물리학자인 Frank von Hippel은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1000명이 치명적인 암에 걸릴 것으로 계산했다. 반면 나사(NASA)의 기후학자인 James Hansen은 상업 원자력 발전소들은 공기 오염을 줄여 지난 몇 십년 동안 180만 명 이상 목숨을 구했다고 하였다.

원전은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에너지원보다 청정하고 안전하다. 만일 사고가 나는 경우에도 피해는 다른 에너지원이 정상운전 때의 피해와 견주어볼 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다만 우리는 매일 조금씩 피해를 입는 것에는 둔감하고 한 번 큰 사건이 터지는 것을 더욱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비행기와 같이 원천적으로 위험한 것도 절차와 규제에 의해서 관리되면 자동차보다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나쁜 것은 우리의 부정확한 감각적 판단을 일부러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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