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그룹과의 현장소통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류세나 기자] 재계가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발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의 다음 행선지가 어디가 될 지, 사회적 명망을 생각하면 적어도 대기업 넘버3 안에는 들고 싶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게 꼭 절대 값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현 정부에서 ‘우리 기업의 중요도를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구나’하는 일종의 가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누가 상을 주거나 그런 것도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기분이 좋다’와 같은 그런 맥락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향후 사업계획 등을 강제 ‘커밍아웃’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김 부총리의 발길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는 분위기도 전해집니다.
얼마 전 LG그룹이 김 부총리의 ‘대기업 투어’ 첫 대상자로 낙점되면서 유례 없던 내년도 사업계획을 공개했습니다. 그것도 그룹 스스로가 아닌 기획재정부 입을 빌어서 말이죠. LG가 그룹차원에서 외부에 공식적으로 투자 로드맵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구본준 LG 부회장 등 임원진은 당시 자리에서 내년에 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시장에 올해보다 8%p 많은 19조 원을 투입하고, 올해보다 약 10%p 늘어난 1만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협력사와의 상생협력을 위해 85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무이자·저리 대출을 지원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이 역시 올해보다 7.3%p 가량 확대된 수치였죠.
대외적으로 LG그룹은 혁신성장과 일자리 확대, 상생협력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에 적극적으로 화답한 모양새를 갖추게 됐습니다. 정부가 삼성, 현대차, SK 등을 제치고 첫 번째 방문지로 재계 서열 4위의 LG그룹을 택한 것 역시 그간 LG가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고, 김 부총리 역시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LG는 지배구조 개선이나 협력사와의 상생협력에 있어 모범적인 기업"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습니다.
LG그룹이 김 부총리 방문을 위해 새로 준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부총리 방문 논의부터 최종 확정까지 불과 하루 이틀 새 빠르게 진행된 터라 별도의 전략을 짤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는 설명입니다. LG그룹이 발표한 내년 투자계획 일부도 각 계열사별로 세운 내년도 사업계획 중 투자와 채용부문 등을 취합한 결과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기업 입장에선 이러한 부분조차도 섣불리 공개하기 매우 조심스럽다는 겁니다. 보통 기업의 투자계획을 보면 회사의 향후 몇 년간의 큰 그림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기업들은 이를 전략적으로 공개하기도, 또 반대로 감추기도 합니다.
LG그룹만 보더라도 내년 국내 투자항목 중 상당 부분이 자동차 전장사업과 그린바이오(작물·종자·농화학), 레드바이오(바이오 의약·백신) 등에 투입, 혁신성장에 기반한 미래산업 추진에 역점을 두고 있음이 재확인됐습니다.
문제는 다음 타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로 면담을 가진 LG그룹이 부총리와의 만남에서 대규모 투자안을 선물로 안긴 만큼 다음 순서의 기업도 ‘뭔가’를 내놓아야 할 거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기업과의 만남에 따른 성과 차원에서 국민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는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의 만남이 단순한 숫자 공개의 향연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신산업 지원을 통해 기업들의 활로를 열어주고,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는 초석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