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0일(월)



[이슈&인사이트] 중동 분쟁 장기화와 한국경제 리스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5.08 09:49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강국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테러로 시작된 전쟁이 7개월째로 접어들고 확전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강도 보복 작전과 하마스의 반격으로 전개되고 있는 전쟁에 헤즈볼라와 후티가 가세하였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상대로 전투를 치러본 경험이 있어 단순 테러집단 이상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후티반군은 홍해를 운항하는 상선들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여기에 맞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가 연합은 후티반군과 예멘에 폭격을 가하고 있지만, 큰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에 구두 경고를 해 오던 이란이 직접 나섰다. 먼저 양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그림자 네트워크'를 겨냥한 공격으로 장군멍군을 주고받았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지난 1월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에르빌에 있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첩보본부를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유엔 사무소와 각국 대사관 등이 몰려 있는 마제흐 지역에 있는 한 주택을 미사일로 폭파시켜 IRGC 소속 장교와 대원들을 폭사시켰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4월 1일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타격하여 IRGC의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를 제거했다.


그러자 이란은 자국 외교기관이 공격을 받았다고 분노를 표시하고 300여기의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타격하였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이스파한의 군사 기지를 공격했다. 이스파한은 이란의 핵 관련 시설을 비롯한 군사 시설이 대거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상대방의 본토를 직접 공격함으로써 오랫동안 중동 전역에서 암암리에 벌여온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불안이 다시 고조되자 국제유가는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다행히 양국은 보복은 가하되 레드라인은 넘지 않는 '약속대련'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파국은 피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으로부터 날라 온 미사일과 드론의 99%를 요격했다고 밝혔듯이 이란의 대규모 공격으로 입은 피해가 무시할 정도였다. 자국 영토를 겨냥한 공격이 이뤄진 만큼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은 아이언돔도 막기 힘든 '램페이지' 미사일로 이란의 S-300 기지를 파괴함으로써 '방공망 무력화'라는 실력은 보였지만, 이란이 반격 안 할 수준을 골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감한 핵시설을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기에 의해 공격은 가하되 서로 선을 넘을 듯 말 듯 눈치 곡예를 벌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이다. 전쟁은 합리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선제공격-보복-재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 보복 강도를 높이다 보면 돌발 변수에 의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에 이어 중동 정세가 악화되어 지정학적 갈등이 격화되고, 이에 더해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세계경제는 고유가, 고환율, 고금리 3중고에 빠졌다. 경제의 해외의존도가 높고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중동 분쟁이 격화되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후티반군의 공격으로 상선들이 수에즈운하 이용이 어렵게 되어 물류비용 부담이 커졌는데, 후티반군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상선들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만약 이란이 가세하여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 국제 원유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급등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원유수입량의 80%가 통과할 정도로 호르무즈해협은 에너지원의 생명선이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그렇지 않아도 물가가 올라가 팍팍해지고 있는 서민들의 생계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국제유가 충격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분쟁으로 유가가 급등할 경우 우리나라 올해 4분기 물가상승률이 4.98%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불안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원유 도입선 다변화, 비축량 확대, 가격 헤지 등 원활한 원유 수급을 위한 대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하루 속히 종식되어 지척에 있는 러시아산 석유도 수입하여 바람 잘 없는 중동 정세와 관계없이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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