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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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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④] 충밍의 허파 ‘동탄’을 가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7.11 11:59

도시 탄소 저감 ‘중국 동탄 프로젝트’에서 해답을 구하다

[중국 동탄=에너지경제신문 천근영 기자] 정부는 2015년 12월 신기후변화체제 출범에 따라 저탄소경제를 지향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1700만톤 감축이다. 이를 위해 10대 프래그십 프로젝트를 발굴해 공격적으로 탄소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지자체들의 저탄소 정책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제주는 탄소프리 아일랜드를 선언해 전기차 보급 등 탄소저감 사업에 시동을 걸었고, 대구 역시 태양광발전 전기차 확산 등 세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본지는 저탄소시대를 맞아 도시 탄소 저감 기획의 일환으로 ‘중국 동탄 프로젝트에서 해답을 구하다’라는 제목으로 6월부터 8월까지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제작됐다.)



 
④ 충밍의 허파, 동탄을 가다


-강택민 시절인 1998년 자연보호구 지정
-버려진 황무지에서 중국 최대 생태공원으로 탈바꿈
-여의도 40배 면적이 녹지 습지로 빼곡
-중국 특유의 만만디 성향으로 50년 100년 앞 내다봐


"나라에서 관리하고 있어서인지 조금씩이지만 달라지고 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는 상해도 충밍(동탄) 덕을 톡톡히 볼 겁니다."

동탄의 중앙부에 있는 좁다란 습지 인근에서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는 심자량(41)씨는 동탄의 환경적 가치는 현재 보다 미래에 더 커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곳에서 십 이 년째 가게를 운영해 동탄의 과거를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다는 그는 "지붕에 태양광발전소를 무료로 설치해 줘 한달에 전기요금을 1만원(상해시 평균 전기요금은 3만원) 정도 밖에 내지 않는다"며 "시에서 강과 나무는 물론이고 숲과 도로까지 등 모든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해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드러나게 울창하지도 않고, 포만감을 줄 정도로 풍성하지는 않다. 그러나 면적이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것처럼(충밍섬은 모레나 흙 등 퇴적물로 이뤄진 섬이라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0분의 1정도씩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하루하루 시나브로 자라고 있다.

▲동탄 생태박물관 내에 설치돼 있는 전기차 충전소. 평일이고 오전이라선지 충전을 하는 차는 거의 없다.


◇ 충밍의 허파 ‘동탄’, 황무지에서 친환경습지로 환골탈태


충밍의 ‘허파’로 불리는 동탄은 강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즉 상해의 젖줄인 양자강(양쯔강)의 오른편, 그러니까 충칭의 오른쪽 맨 끝자락이 동탄이다.

푸동 공항에서 자동차도 1시간 반을 쉼 없이 달려 도착한 땅이 바로 거기였다.

우리 일행이 탑승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기자가 동탄에 온 게 당신들이 처음"이라며 "그런데, 뭘 보러 왔느냐?"는 가이드의 질문에 우리는 자신 있게 "스마트시티 동탄"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가이드는 태어나서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여기 그런 게 있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런 게 없나?"하는 표정으로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연변 출신의 조선족으로 우리말이 모국어와 다름없는 그가 그 쉬운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는 없을 터인데, "그런 게 있냐"고 물으니 말 문이 턱 막혔다. 그가 그렇게 반문한 이유는 30분도 채 안 돼 완벽하게 이해됐다.

가이드 말대로, 동탄에는 ‘스마트시티’, 그런 건 없었다. 사전에 정보를 얻기 위해 세 시간 동안 인터넷을 이 잡듯 뒤졌음에도 기사 한 꼭지도 찾아내지 못한 게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기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도 않았고, 집집마다 스마트미터 등 첨단 에너지관리시스템이 장착돼 있지도 않았다. 전기자동차가 거리를 누비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나마 흔하다면 흔한 건 딱 한 가지, 전기자전거(사실 오토바이인지 자전거인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모두 이 탈 것을 타고 다녔다) 뿐이었다. 동탄은 스마트시티가 아니라 자연생태도시인 것이다. 그것도 아직 중국에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미완의 땅이었다. 아는 게 비정상이고, 모르는 게 정상인 그런 변두리 농어촌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우리가 처음’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캡처

▲충밍섬 그래픽 이미지.(사진=Skidmore, Owings & Merrill LLP)


동탄의 면적은 충칭의 6분의 1로 약 210㎢ 남짓이다. 210㎢ 대부분이 녹지고 습지다. 또 강이고, 산림이다. 비닐하우스를 주로 하는 농지는 일부다. 습지와 녹지를 가르는 샛강은 양자강 줄기로 습지와 녹지 그리고 농지의 생명줄이다. 이 면적이 자그만치 210㎢라는 얘기다. 쉽게 말해 여의도의 무려 40배가 넘는다. 이 엄청난 땅을 녹지와 습지를 엮어 중국 최대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것도 땅과 나무와 풀과 습지가 한 데 어우러져 건강한 숨을 내뿜는 생태공원.

더 특이한 것은 주거지도 함께 조성,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삶의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동탄에서는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3층 이하다. 게다가 새로 건물을 지을 수도 없다. 음식점이나 유흥시설은 아예 없고, 잡화상만 군데군데 몇 개 있을 뿐이다. 주거 이외의 모든 생필품은 충칭시에 나가서 조달해야 한다. 그만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철저하게 관리한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해마다 동탄을 찾아오는 철새가 290여종으로 철새의 낙원이 된지 오래다. 이곳 사람들은 충칭을, 동탄을 새의 박물관이라고 부른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철새이동통로로 철마다 이동하는 새들의 중간 기착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황무지에서 중국 최대 생태공원으로 변신하는 데 무려 20년이 걸렸고, 여전히 진행형이고, 얼마나 더 갈지 모른다.

동탄에서 비닐하우스로 과일농사를 짓고 있는 리우청(52) 씨는 "습지와 생태공원 그리고 주변환경을 보기 위해 주말이면 수 백명의 사람들이 찾고 있다"며 "상해시를 위해 특히 아이들을 위해서도 동탄에 대한 시의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상해시에서 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는 왕리칭(38) 씨는 "처음 시에서 동탄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고 했을 때, 무슨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얼마 전 아이들과 놀러갔다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며 "시에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미래를 위한 ‘친환경 사업’ 정권과 상관없어

강택민 시절인 1998년 11월, 중국 정부는 동탄을 자연보호구로 지정하고 생태공원화 사업에 첫 삽을 떴다. 딱 20년 전이다. 그리고 2002년 퇴적지로는 처음으로 국제습지로 인정받았다. 여기에 쏟아 부은 돈만 수 조원.

그런데, 기자가 삼 일 동안 동탄 구석구석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잡히는 건 없었다. 이거다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한 방도 없었고, 딱히 감동할 만한 풍광도 보이지 않았다. 

습지도 아직 여물지 않은 채 겨우 형태만 갖춰져 있었고, 습지에 서식하는 갈대와 수생식물들도 헐거워 완전히 제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또 습지 주변에 심겨져 있는 나무들도 아직 제대로 군락을 이루지 못해 엉성한 모습이었고, 방문객들을 위해 조성해 놓은 시설도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도 헐거워 보였다. 휴일인 토요일에는 그나마 평일과 비교 두 배 정도의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평일 방문객이 워낙 적어 자랑할 정도의 수치는 못 됐다. 물론 면적이 워낙 넓기도 하다. 투입한 예산으로, 생태공원의 틀을 잡아 숙성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 자체로도 폄하할 수 없는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사업 역시 중국 특유의 ‘만만디’ 성향이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단기에 효과를 내려고 몇 년 동안 압축적으로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중국 스타일이 아니다. 짧게는 50년에서 100년, 길게는 그 이상을 보고 시작한 사업이라는 얘기다. 다소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생태공원 어딜 가도 사람의 손길을 닿아 있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들렀던 잡화상에 음료수를 사러왔다는 진파영(45) 씨가 "동탄에는 세 가지 없는 게 있는데, 그건 고층건물과 공장 그리고 공해"라며 "물질은 풍족하지 않지만 마음만은 모두 부자"라고 말한 이유가 오롯이 이해됐다.


▲동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습지와 갈대군락지. 새들은 이곳에서 먹이도 얻고 휴식도 취한다. 290여종의 철새와 텃새들에게 동탄의 습지는 생명을 잉태하는 지상의 낙원이다.


세계의 공장이요, 모방상품(짝퉁)의 천국으로 불리우는 왕서방의 나라 중국. 자원의 블랙홀로 1년마다 모습이 바뀌고, 3년이면 못 알아본다는 고층 빌딩의 전지장인 상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심각한 오염물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북경. 제주도 만한 땅 전체를 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수 십 년 수 백 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아이러니가 뒤섞인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현대판 중국 바로 알기 교과서 격인 ‘정글만리’를 쓴 조정래 선생이 이곳 동탄을 왔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동탄 어딜 가도 크고 작은 습지가 눈에 밟힌다. 20년째 공을 들여 가꿔가고 있는 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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