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목표로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달 공청회에 이어 입법토론회가 열리면서 제도적 보완책도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법안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당장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혔고, 노동계 역시 현재 입법 방향에 대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해 알아봤다. ◇ 노동기본권 보호 대상, 'employee'에서 'worker'로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법제화 논의가 진행 중인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근로 계약의 형태와 관계없이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을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의 대부분의 조항은 5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범위를 넓혀 근로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추진됐다. 쉽게 말해 노동기본권의 권리를 보장하는 대상을 근로자(employee)에서 취업자(worker)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논의와 입법적 시도가 있어왔다. 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자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고용보험법상 노무제공자 개념을 도입하는 등 사회보험법제의 영역에서 적용대상의 확장을 도모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고용노동부 비정규직 정책TF가 꾸려져 '일하는 사람' 보호를 위한 일반법 제정 논의에 불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등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법 사각지대에 놓인 '권리 밖 노동자'의 존재가 확인됐다. 입법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노동시장 내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은 감소되지 않았고, '1인 개인사업 사업자'로 구분되는 프리랜서 형태의 3.3% 소득 납부자는 지난 2014년 400만5000명에서 2024년 869만명으로 급증했다. 사실상의 제도적 사각지대로,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제21·22대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의 보호와 권리 보장을 위해 마련된 법안은 여야를 합쳐 총 7개 정도다. 이중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소속 김태선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법안은 고용노동부와 협의·조율을 거쳐 나온 법안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해서는 지난달 21일 입법공청회가 열렸고, 지난 10일에는 고용노동부 주도로 입법을 위한 공개 토론회가 개최됐다. 국회에서 발의된 일하는 사람 기본법안들의 공통적인 내용을 보면 △플랫폼 노동자(배달·대리·라이더 등), 특수고용직(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등), 프리랜서 등 '일하는 사람'의 범위를 확대하고 △근로의 권리, 적정임금 보장 등 헌법에 규정된 노동 기본권을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할 것을 명확히 하며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의 적용 확대를 지향하고 △사회보험 적용확대 등 국가와 지자체의 보호의무 강화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외에 지난해 12월 이용우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일하는 사람의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고, 같은 달 김태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노동위원회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지난달 박홍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공정한 노무제공계약 체결을 위해 대통령령으로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가 개최한 입법공청회에서 입법에 찬성하는 의원과 전문가들은 법 제정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기본법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휴식을 취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들도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조항, 그리고 고용·산재보험, 일·가정 양립에서 육아와 출산 등에 대한 최소한의 조항을 포함시키는 쪽으로 같이 검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 '법안 철회' 요구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정부는 오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목표로 법안 패키지를 완성한다는 계획이지만,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포함한 경영계는 과도한 부담이 된다며 제도화에 대한 '강력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황이다.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외식업중앙회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소상공인 단체들은 지난 10일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본부'를 출범하고, 해당 법안이 소상공인의 연쇄 파산을 강요하는 '사형 선고'라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 시행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이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소상공인은 1인당 연간 약 505만원의 추가 법정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퇴직금 소급 적용까지 맞물린다면 대다수 지역 업체들은 파산을 피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라는 듣기 좋은 말은 결국 소상공인의 고용을 축소하고 나아가 소상공인 일자리를 말살하는 법안"이라며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법안이 역설적으로 소상공인 업종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뺏고 서민 경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입법에 대한 불편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 최대 소상공인·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올라온 한 게시글에서 글쓴이는 “자영업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이 되면 인건비와 관련해 소상공인들의 큰 피해가 속출할 것"이라며 “근로자만 있고 사장은 없어지는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글에는 “회사는 사람 대신 인공지능(AI)을 여럿 돌리고, 일은 그냥 로봇이 하면 된다"며 “결국 혼자 하는 게 답"이라는 푸념이 나왔다. 또 다른 이는 “법안의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그렇게 되면 판매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법 시행 후 자리가 잡혔을 때 물가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실제 법 적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제도 도입 취지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실질 임금이 줄어드는 데 대한 우려다. 가령 지금은 인적용역 사업소득에 대한 3.3%의 세금만 납부하면 되지만,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면 납부해야 할 보험료 액수가 커질 수 있어서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장 노동의 대가로 받아온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 본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수수료를 사업소득으로 받고 있는 A씨는 “한 달 벌어서 생활비를 계획하고 쓰는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당장의 수입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잘 와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프리터족(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파트타임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배민 라이더를 하고 있다는 40대 남성 B씨는 “법 취지 자체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프리터족'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얘기"라며 “법적 보호가 필요한 건 한 달에 20일 이상 일하는 전문 라이더 정도일 것 같다"고 말했다. ◇ 노동계도 회의론…“실효성 없어, 근기법 확대 회피용" 노동계 역시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은 아니다. 반발하는 이유는 '실효성 부족'과 '근로기준법 확대 회피'로 압축된다. 법안에 구체적인 권리는 명시돼 있지만, 이를 제재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별도의 법 제정이 아닌, 근로기준법 체계 내에서 보호의 테두리를 넓히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송명진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사무국장은 “입법안의 분쟁조정 및 제재 관련 규정은 조정 중심의 구조로 설계되어, 이행강제나 직접적인 구제수단이 제한적"이라며 “구체적인 이행 기준과 집행 수단이 하위 법령이나 후속 입법에 상당부분 위임되어 있어서 이런 보완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현장 당사자들의 체감도는 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언적 권리 규정만으로는 실제 피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미지급 보수의 신속한 회수, 원상회복, 손해배상 등 권리 침해의 결과를 실질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구제 수단을 제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현행 정부안은 법원 소송 단계에서만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라며 “대다수 노동 분쟁이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종결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실질적 보호 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현주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법안이 '일하는 사람'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닐 수 있다는 강한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며 “'근로자 추정제'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방식이 실질적인 권리 구제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12일 민주노총은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정 의원은 근로기준법에 '자신이 직접 근로를 제공하고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그 대가를 지급받는 사람은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태환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근로기준법 밖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별도의 선언적 법률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정의 자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제시한 근로자 추정제가 정의 규정이 아닌 별도 조항에 규정돼 실질적 권리 보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노동자성 인정과 근로기준법 적용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