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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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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 위한다"는 트럼프의 메탄규제 철폐에도 웃지 못하는 '오일 메이저'...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9.02 14:2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


미국이 원유와 천연가스를 증산하기 위해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나선 메탄 규제를 철폐하기로 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러한 결정에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 더 강력한 메탄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꾸준히 피력해온 엑슨모빌,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셸 등의 오일 메이저는 마냥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달 말 석유·가스 기업들에 대한 메탄 배출 규제를 없애기로 하고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에 들어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은 메탄 규제 철회를 위한 개정안이 공청회를 거쳐 내년 초에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메탄 규제를 없애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원유, 천연가스 생산량을 더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도약한 미국이 글로벌 석유산업의 패권 확보를 위해 시설 확충과 규제 완화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은 그간 석유자원 개발로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국정 비전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EPA측은 미국이 에너지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메탄 규제의 완화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앤드류 휠러 EPA 청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메탄가스 자체에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인지하고 있다"며 "미국은 메탄가스의 누출을 최소화시키고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번 규제 완화가 기후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메탄 배출규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도입된 규정이다. 석유 기업들은 해당 규제 때문에 신규 유정, 저장고, 송유관에서 누출되는 메탄을 감시하고 억제할 장비를 설치해야 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메탄을 이산화탄소와 함께 기후변화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다. 비영리단체인 환경보호기금(EDF)에 따르면 메탄은 전체 온실가스의 15%를 차지하지만, 지구온난화 기여도는 무려 25%에 이른다. EDF의 피터 잘잘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메탄이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크다는 과학적인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석유·가스 산업이 메탄을 배출하는 규모도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특히 메탄은 20년간 공기 중에 머물며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보다 지구 온도를 80배 이상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NYT도 대다수의 메탄은 석유 업계에서 발생하며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WSJ은 미국 석유 기업들이 배출하는 메탄은 미국에 등록된 자동차의 25%인 6900만대가 뿜는 메탄과 같은 분량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환경 당국은 메탄과 기후변화의 관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PA 대기·방사능국의 앤 이드설 국장보 대행은 "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개정안은 우선 메탄이 규제될 필요가 있었는지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기후변화는 중국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취임 첫해인 2017년에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이 비용이 많이 들고 미국 이익에 반한다며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정 전력 계획과 화력 발전소 배출 규제를 폐지한 데 이어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펼쳐진 기후에 관한 토론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WSJ은 "이번 규제 철폐안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억제하기 위해 로비해온 산업계의 승리"라며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예상했다. 미국 비영리 환경단체 NRDC의 데이비드 도니거 법정대리인은 "트럼프 행정부와 EPA는 석유·가스 업계가 아무런 대가 없이 대기오염물질을 방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만약 EPA 이러한 개정안을 계속 추진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 노스타코타 주 유전에 설치된 원유채굴장비. (사진=이미지투데이)


◇ 메탄 규제 완화를 둘러싼 "이득 VS 손해" 공방

메탄 규제 완화를 두고 석유 업계와 오일 메이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우선 석유 업계에서는 환경 규제를 준수하기 위한 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규제 폐지를 찬성하고 있다. 오일프라이스닷컴 등의 외신에 따르면 메탄 배출규제가 완화되면 석유·가스 업계는 연간 최대 1900만 달러(약 230억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소형·중형 석유 업계는 메탄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발생하는 비용이 너무 높다며 규제 완화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석유학회(American Petroleum Institute)의 에릭 밀리토 부회장은 "메탄 배출량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방법이 오히려 메탄을 관리하는데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엑슨모빌, BP, 로열더치셸 등과 같은 오일 메이저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적인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메탄 규제를 강화해야만 석유·천연가스 사업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간 대형 에너지 기업들은 천연가스가 친환경적인 측면에서 석탄을 대체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메탄 규제를 완화하면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외신에 따르면 엑슨모빌은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메탄 규제의 핵심적인 사안들에 대한 유지를 촉구하는 서신을 지난해 말 EPA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열더치셸의 그레첸 왓킨스 미국지사장은 EPA가 메탄의 현재 배출량에 이어 앞으로의 메탄 배출까지 포함시키는 등 포괄적인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BP의 수잔 디오 미국지사장도 지난 3월 미 일간신문 휴스톤크로니클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천연가스가 석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며 "이같은 천연가스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메탄을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메탄 규제 철폐에 따른 장점으로 주장하는 ‘비용절감’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EPA는 새로운 규정안이 석유·가스 업계의 비용을 연간 최대 1900만 달러(약 230억원) 절감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미국 석유업계의 연간 수익이 통상적으로 1000억 달러(약 121조원)에서 1500억 달러(약 181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메탄 규제로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의 닉 커닝엄 연구원은 "일부 석유·가스 업계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관련 업계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결정을 내리기보다 오로지 규제 완화에 초점을 더 두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트럼프 행정부의 ‘오바마 뒤집기’…연비 규제 관련에서도 드러나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메탄 규제 완화에 이어 과거 자동차 연비 규정에 대해서도 ‘오바마 뒤집기’에 나선 바 있다. 오바마 전 행정부는 2012년 자동차 연비 규정을 제정해 대기질 개선과 연비 효율 향상을 위해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자동차들의 평균 연비를 2017년 대비 약 30% 개선하도록 규정했다. 달성하지 못하면 벌금 형태의 세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까지 규정된 갤런당 54.5 마일(리터당 23.2km)의 자동차 연비 목표를 2020년 이후 37마일(리터당 15.7km)로 동결시킬 계획이다. 연비 기준을 동결하면 자동차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다.

그러자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연방정부가 주 당국의 규제 권한을 침해했다며 기존 방침대로 연비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결국 자동차 제조사들과 배기가스 규제 강화 개별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포드, 혼다, 폭스바겐, BMW 등 4개 글로벌 자동차회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안보다 더 엄격한 캘리포니아주 환경 규제에 따르기로 지난 7월 합의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제조사들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대립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각 정부간의 갈등으로 인해 어느 기준에 맞춰 자동차를 생산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캘리포니아의 연비 기준을 따르는 주는 13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는 미국 내 전체 판매량 중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이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트위터를 통해 포드의 창립자인 헨리 포드(1863∼1947)가 "만일 오늘날 후손들이 훨씬 더 비싸면서도 훨씬 덜 안전하고 성능도 좋지 않은 자동차를 만들려는 걸 봤다면 아주 실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경영진이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싸우고 싶어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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