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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FCA 합병 ‘빅딜’ 조짐···韓 자동차 업계 호재? 악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5.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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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르노자동차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합병을 추진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토요타·폭스바겐그룹을 뛰어넘는 세계 1위 자동차 연합체가 탄생할 수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에 판도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르노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는 부산 공장에서 FCA의 물량을 추가로 확보해 다양한 차종을 위탁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광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이들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현대·기아자동차는 시장 잠식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한다.


◇ 합병땐 세계 3위 자동차 회사 탄생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탈리아 피아트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합작 회사인 FCA는 최근 프랑스의 르노자동차에 합병을 제안했다. 르노 역시 이사회를 통해 합병안을 논의했다. 이르면 다음주 중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르노는 일본의 닛산·미쓰비시자동차와도 플랫폼 공유 등을 위한 연합전선을 꾸리고 있다. 현재 FCA와 합병이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메시지를 닛산 측에 전하며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합병된 기업은 FCA가 50%, 르노가 50% 지분을 소유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네덜란드 소재 지주회사를 통해 합병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FCA 주주들에게 25억 유로의 특별배당금을 지급하고 나서 양사가 통합 법인의 새 주식 지분을 50%씩 소유하는 방식이다. 새 법인은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다. 합병 이후 현재 운영 중인 공장도 그대로 가져간다는 게 이들의 계획이다.

합병이 마무리되면 개별 그룹사 기준 세계 3위 규모의 회사가 탄생한다. 지난해 기준 FCA와 르노의 자동차 판매량은 870만여대다. 독일 폭스바겐그룹(1083만대), 일본 토요타그룹(1059만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다만 르노는 닛산·미쓰비시와도 얼라이언스를 형성하고 있다. 르노-FCA-닛산 연합의 판매량은 연간 1500만대를 넘어선다. 세계 최대의 ‘공룡 자동차 그룹사’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이번 르노-FCA의 ‘빅딜’에서 산업 내 기술과 경쟁 환경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나금융투자 송선재 연구원은 "이번 합병 제안은 산업 내 2군으로 분류되던 업체들이 수요 증가가 둔화된 시장에서 미래 자동차로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FCA와 르노 단독으로는 힘들지만,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지역·세그먼트에 대응할 수 있게 되면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고 짚었다.


◇ 르노삼성 ‘호재’ vs. 현대·기아차 ‘악재’


상황이 이렇자 국내 자동차 업계도 르노와 FCA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현대차그룹은 발걸음이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기준 739만대의 자동차를 세계 시장에서 팔았다. 그룹사 기준 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르노-닛산-FCA가 상호 보완 가능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게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FCA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유명한 지프와 고급차 알파로메오, 마세라티 등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북미와 중남미 등 시장에서 강점을 지닌데다 현대차그룹에는 없는 픽업트럭 관련 기술력도 갖추고 있다.

피아트와 르노의 경우 유럽을 중심으로 두터운 고객층을 지니고 있다. 닛산은 아시아권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대중차부터 고급차까지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세계 시장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 르노-FCA는 합병을 할 경우 주요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연간 50억 유로(약 6조 6000억 원)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경쟁 상대가 생기는 셈이다.

반면 르노삼성자동차의 분위기는 다르다. 르노 본사의 몸집이 불어나며 부산공장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기대는 눈치다. 부산공장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내에서 조립 품질이 우수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르노삼성 노사가 임단협 협상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강성 노조가 득세해 고정비가 올라가고 파업으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축적될 경우 오히려 몸집이 커진 그룹사 내에서 존재감이 작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공유경제 등 모빌리티 플랫폼이 변화하는 가운데 르노와 FCA가 합병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가져가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 유리해질 것"이라며 "각 시장에서 이들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현대·기아차에게 좋은 그림은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르노삼성은 공장에서 다른 브랜드의 다양한 차종을 위탁생산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초기 투자 등)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며 "대신 임단협 등 노사갈등 문제를 해결해 경쟁력을 먼저 갖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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