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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들 수첩] '재개발'의 딜레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12.21 17:49
기자수첩

▲건설부동산부 최아름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최아름 기자] 재개발을 반기지 않는 집주인들이 있다. 한국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한 도시정비사업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동시에 임대료를 위해 재개발을 꺼리는 동네가 모두 있는 나라다.

"절대 안 하려고 하죠. 재개발하면 아파트 한 채 밖에 못 갖지만, 이 상태로 놔두면 세 채 월세로 놓고 임대료 벌잖아요. 손님 같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대의 공인중개사의 질문이었다. 대부분 노년층이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이 곳은 인근에 소위 명문대학교로 구분되는 4년제 대학교가 세 곳이나 있다. 리모델링 한 원룸이 늘어나도 오히려 비싼 임대료로 학생들이 계약을 주저하게 되는 곳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올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태어난 어떤 ‘만 18세’들은 노후 주택에서 사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오히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노후 주택’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

노후 주택과 대학이 함께 몰려있는 곳은 딜레마가 함께 따라온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원룸 등이 몰려있던 대학가 인근 자취방들은 말 그대로 ‘자취’를 감추고, 학생들은 재개발로 인해 사람이 떠난 곳 인근에서 방을 구하게 된다. 기숙사에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이곳은 역설적으로 노후 주택을 가지고 대학생 임대 수요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주인들이 기숙사를 반대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재개발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일단 노후 주택이 몰려있는 곳의 대학가에서 방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개 노후주택을 가진 집주인들 역시 이 집 말고는 벌이가 없어 기숙사가 조성될 경우 월 수익의 위협을 받게 된다. 누군가 이득을 보려면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하며, 재개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노후주택의 환경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주택을 팔게끔 만들고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더 많이 제공하겠다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러 주택을 가지고 있는 고령층이 주택을 내놓고 연금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 대신 도심에 위치한 노후주택을 리모델링 해 청년층에게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임대료에 기대고 있는 고령층, 서울에서 집을 구할 수밖에 없는 20대가 얽힌 문제의 핵심을 짚어낼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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