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5일(일)
에너지경제 포토

송정훈 기자

songhddn@ekn.kr

송정훈 기자기자 기사모음




[본들수첩] 핀테크 혁신을 담지 못하는 낡은 그릇 은산분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3.02 11:03
송정훈

▲금융부 송정훈 기자


정치권이 ‘은산분리’ 이데올로기에 빠져 이달 중 영업을 시작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앞길을 막았다. 영업점 방문없이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케이뱅크가 이달 중순께 인터넷뱅킹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영혁신을 주도해야 할 정보기술(IT)기업 KT는 케이뱅크 설립의 주역이지만 지분으로 보면 객체다. 현행 은행법은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은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4%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KT는 케이뱅크 경영에 주도권을 쥘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본 고갈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은산분리 완화가 늦어지게 되면 자본 부족으로 대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케이뱅크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과 목표한 여신(4000억원)을 충당하려면 올해 말이나 내년초에는 2000~3000억원 정도의 증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율을 50%까지 허용해주자는 은행법 개정안은 9개월째 국회 정무위에 상정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산업자본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며 제1당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심사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다.

정보통신 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주주로 참여해 경영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 하여 첨단 금융서비스 개발 등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장의 요구를 국회가 막고 있는 것이다.

정출안마저도 국회에서 표류중이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작년 11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34%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한 특례법을 발의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대기업은 여전히 4%로 제한하는 등 악용을 막는 장치도 마련돼 있지만 더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사회학자 칼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인간은 그들 삶의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의 물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수준에 상응하는 필연적인 생산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다. 생산관계로 표현된 ‘그릇’이 발전하는 생산력을 담지 못하면 그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는 것이다. 증기기관 발명에 따른 산업혁명이라는 생산력이 자본가를 만들어내면서 중세봉건제의 ‘영주-농노’의 생산관계를 깨버려 봉건제가 끝나고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핀테크(금융과 기술 융합) ‘생산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낡은 이데올로기인 은산분리라는 ‘생산관계’가 생산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