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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홍 한국법제연구원장 |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예를 들어보자. 국내 코로나 감염 환자가 4명에 머물던 2020년 1월 28일 최초의 법안발의가 이루어진다. 이후 20대국회의 임기만료일인 2020년 5월29일까지 총 15건의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그 중 1건의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2020년 3월6일 공포되었다. 의약외품(특히 마스크)의 국외 반출제한, 감염경로에 대한 정보공유, 역학조사관 확대, 취약계층에 대한 마스크 지급 등 시급한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었고, 21대 국회에서도 각종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법안은 지속적으로 발의되었다. 2020년 5월30일 이후 감염법예방법에 대하여 156건의 개정안 발의가 있었고, 이 중 5건의 법안이 공포(예정1건 포함)되었다. 주요내용은 감염병관리기관 및 격리시설의 부족문제 해소, 실질적 방역주체인 지방자치단체장의 개인정보접근권 강화 및 정보사용제한, 감염병 예방관리 전문인력의 보강, 비대면 진료의 근거 신설, 백신계약의 체결근거 마련, 방역조치 위반자에 대한 손실청구권 근거마련 및 감염병 전문병원의 권역설치 근거 마련 등이다. 모두 시급히 해결이 필요한 현안들을 입법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 국회가 신속하게 대응하여 해결책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런데, 국회에는 아직도 입법적 결단을 필요로 하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안 117건이 계류돼 있다. 최근 1년반 동안 6번의 개정으로 시급한 현안에 대응했는데도 훨씬 많은 안이 국회 계류 중이라는 사실이 경이롭다.
국회 전체로 확장해서 보면 더함을 알 수 있다. 21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 16개월여의 기간 동안 법안의 발의건수는 2021년 10월 6일 현재 1만 2446건에 달한다. 월평균 770건이 넘고 국회의원 1명당 매달 2.6건에 근접한다.
헌법상 입법권은 국회에 있고 그 수행주체가 국회의원이므로 국회의원의 입법안 발의가 많은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특히 헌법상 또다른 발의주체인 정부에 비해서 입법적 해결을 요하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국회의원의 반응성은 월등하다. 수많은 내외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정부입법에 비해서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는 10명의 찬성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사회현안을 법률이 필요한 사항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다. 법률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지켜야 한다는 구속력을 가지고, 한번 만들어지면 상당기간 효력을 가질 것이라 예측할 수 있는 법적안정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법률규정화 되면 운영이 경직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기도 한다.
다시 감염병예방법으로 돌아가 살펴본다. 국회 계류 중인 많은 개정안은 유아용 투명마스크 지원, 감염병 대응 전문인력에 대한 수당신설과 재정지원, 해외파병 군인에 대한 백신우선접종 등 현안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나 이를 개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법률규정화로 접근하면 역으로 법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법의 존부에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국회가 만드는 법률외에 행정부에도 대통령령이나 부령 등의 제정권을 부여하였고, 행정부는 법령적 접근외에도 재정조치, 시책 등 상대적으로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물론 국회가 법률에서 부여한 재량의 범위에서이지만 말이다.
국회가 현 21대까지 대수를 거듭할수록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는 헌법규정은 충실히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대 다수의 법률은 국회의원의 발의에 의해서 통과되고 공포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는 보다 많은 입법보다는 입법의 선행이 반드시 필요한 사항으로 국가의 근간을 정하는 것인지에 보다 천착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운영의 근간은 국회가, 구체적 시행과 실효적 대응은 행정부가 각 주체에 부여된 입법역량을 발휘하는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