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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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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국내광물개발로 자원위기 극복한다 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09.04.29 14:34

⑤ 광업현장, 극한 속 광부의 일상을 담는다 - 신예미 철광산 생산현장을 가다


8시간 캄캄한 갱내 작업… 하지만 얼굴엔 ‘환한 빛’

지난해 47만톤 생산한 신예미철광, 이제 지역주민의 활력소

고령층·되돌아 온 광부 등 저마다 사연·꿈 갖고 ‘신예미’로


이번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광산 생산현장의 광부들의 모습이다. 지난호에는 국내 재개발 현장 모습만을 담았다면, 이번호는 그 다섯번째 기획으로 ‘광업현장, 극한 속 광부들의 일상을 담는다’라는 주제를 통해 국내 생산광산에 종사하고 있는 광부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과 가슴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국내광산 재개발 바람과 함께 생산량이 늘어난 신예미 광산엔 예순 아홉의 고령층과 스물 넷의 젊은이, 다시 돌아온 광부, 현대화장비에 가장 먼저 손을 댄 광부에 여성 광부까지... 사연과 꿈이 저마다인 광부들이 모여 있다. 짧게는 여덟시간을 캄캄한 갱내에서 일하는 그들. 국내 유일의 철광산인 신예미 광산을 찾아 제각각 다른 사연이 있는 일곱명의 광부들을 만났다.

#국내유일의 철광산인 신예미광산. 그 곳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 시간은 오전 7시30분. 그 시각, 신예미 사람들은 이미 깨어 있었다.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십년 동안 광업계를 떠났다가 돌아온 조사팀장인 김문호(59세)씨는 갱내 수직으로 375m 지점, 현재까지 진행된 가장 막다른 갱내에 들어가 새로운 탄을 찾기에 바쁘다.
국내광산 현대화작업의 시초자로 불리는 채광팀의 홍근희(63세)씨가 굴진작업을 위해 점보드릴(Jumbo Drill)을 타고 갱내 350m 지점까지 들어간다.

수갱팀인 이상엽(45세)씨는 이미 갱내 파쇄장에 있는 캄캄한 사무실에 들어와 있다.
갱 밖도 부산하다. 신예미의 최고령자인 박찬북(69세)씨는 갱내 파쇄장에서 올라오는 철광석을 선광장으로 보내기 위한 준비 작업에 나선다.

또한 35년의 곰삭은 경력을 갖고 있는 김창경(53세)씨와 가장 어린 신(24세, 쑥스러운지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란다)씨는 각각 마인트럭과 굴삭기와 같은 현대화 장비를 이용, 갱내와 갱내 밖에서 광석과 폐석을 옮기고 쌓느라 분주하다.

분석팀도 부산한 것은 마찬가지. 눈에 띄게 쌓여가는 광석들을 구분해 분석실로 보내기 위해 홍일점인 하영희(47세)씨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산길을 따라 네시간, 도착하자마자 신예미광산 광업권자 삼선로직스의 자회사인 한덕철광 신예미광업소 신두현 소장이 갑자기 발걸음을 재촉한다. 발파작업 때문이다.

“오후 3시면 채광을 위해 발파를 해야 합니다. 갱내에 들어가려면 지금 빨리 현황을 소개한 후 들어가야만 합니다.” 매우 급박하다. 시각은 12시30분. 그 시각까지는 불과 두 시간 30분이 남았다.
개발개요도를 보는 순간,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를 알게 됐다. 갱구로부터 갱도를 따라 길이가 무려 3km, 수직으론 무려 375m라는 수치가 선명하다. 대충 계산해도 두 시간으론 어림도 없는 것이다.

신두현 소장의 브리핑 속도가 빨라진다.
“이곳은 해발 500m 위치에서부터 땅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수직으로 100m 단위로 수갱과 연결하는 갱도를 만들었고, 100m 단위마다 다시 25m씩 다시 갱도를 만들어 하나의 광석도 놓치지 않고 개발생산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지도엔 수직 375m를 넘어 600m까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향후 계획입니다. 신예미광산은 현재 확정매장량 1213만톤, 추정매장량 2952만톤, 잠재부존량 5364만톤으로 총 9528만톤을 보유하고 있어요.”
신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를 위해 조사팀장과 함께 계속된 시추에도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1년에 10m 정도 더 들어간다고 봤을 땐 600m 계획은 아직 실현단계는 아니지요”

‘품위 약 40%, 지난해 철광석 생산실적 46만6000톤, 올해 포스코와의 50만톤 철광석 납품계약, 국내 유일의 철광산 생산지역, 신예미광산 사무소 직원을 포함한 광부만 총 84명에 덤프트럭 운전자(용역)까지 합치면 106명’ 이런 수치의 신 소장 설명을 들으니 더욱 갱내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  현대화 시초자, 이젠 후임자 필요

김문호 조사팀장의 차량에 올라탄다. 갱내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갱내 굴의 규격은 5.0m×5.0m. 생산현장이어서일까? 갱내는 그야말로 개미땅굴 같은 느낌. 아까 본 지도보다 더욱 복잡하다. 여기저기 뚫려 있어 길을 찾지 못할 정도다. 수직으로 350m 지점. 현장의 소리가 들린다.

‘두두두두, 드르렁’ 점보드릴 소리다. 드디어 첫 현장광부를 만나다. 홍씨가 채광을 할 수 있도록 광산 벽에 구멍을 뚫고 있다. 그의 나이가 63세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힘차다. “하루에 2막장씩, 한공에 3.9m씩을 뚫습니다. 폭약을 설치하기 위해서지요. 제가 타서 작업중인 장비는 점보드릴입니다.”

국내광산에 현대화장비가 처음으로 도입된 1991년. 홍씨는 이 당시 가장 먼저 갱도에서 일한 현대화 기술자다. 경력만 20년. 하지만 점보드릴 후임자가 없는 것이 아쉽다. 신예미 광산의 점보드릴은 두 대. 한 대에 두 명씩 타고 작업을 하지만 기술자가 부족해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화장비가 들어와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깊숙한 갱내에서 작업을 할 사람이 없다면 광산개발을 할 수 있겠느냐”며 아쉬움을 남기 홍씨는 다시 장비에 올랐다. 젊은 기술자가 없는 게 아쉬움이다.  함께한 김 팀장은 다른 작업장으로 차를 옮기며 말한다. “여기서 40대는 젊은 나이입니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인 고령자 이지요” 그러면서 본인의 나이도 59세라고 소개한다.

 ■ 갱내 8시간, 눈·비오는지 알 수 없어

다음은 갱내 파쇄장. ‘쿵쾅!쿵쾅!’ 호퍼(hopper)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광석이 파쇄기로 떨어지는 소리다. 커다란 광석은 여기서 200mm까지 파쇄돼 수갱을 통해 지상으로 나가게 된다고 한다.

두 번째 현장광부다. 갱내 파쇄 장에서 무려 8시간을 한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수갱팀의 이상엽씨는 보자마자 광산모를 가리킨다. “안전입니다. 안전!”하며 광석이 많이 튈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미소를 보여준다. 마흔 다섯인 그의 경력은 13년. 서른 초반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8시간이나 갱내서 일하다 보니 밤인지, 비가 오는지, 그런 것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주민으로서 일하고 있다는 것에 기운이 나지요”

그러나 현대화 작업의 기술이전에 대해 묻자 그는 한숨부터 내뱉는다. “광산에 대한 선입견이 강해요.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젊은이들이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이 지역 주민들의 일터가 된 겁니다”

신예미광산 광부들의 약 90%가 이 지역 주민들이다. 그것도 대부분 지난해 들어온 사람이다. 지난해 정부의 국내광산 재개발 정책방향과 함께 신예미광산의 생산량이 늘어나 채용이 늘어난 것이다. 좋게 말하면 광산지역 주민의 활력소가 된 것이며, 이 지역 고령층 직업이 생겨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광산을 떠난 광부들까지 다시 불러들이는 성과(?)를 낸 것이다.

■ 광부가 된 10대, 그 후 35

차량은 갱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서두른다. 폭약을 설치해 발파시간까지는 30분. 한참을 내려와서 일까, 세 시가 다되어 겨우 갱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40톤을 거뜬히 실을 수 있는 마인트럭이 서 있다. 바퀴가 사람 키보다 더 크다. 한눈에 봐도 누구나 운전할 수 있는 차량은 아니다. 세 번 째 현장광부다. 마인트럭의 기술자로 불리는 김창경씨가 운전석에 뛰어내리며 말한다.

“전쟁이 나면 여기 들어오면 됩니다. 이곳에서 전쟁지휘를 해도 될 정도로 갱내는 크고 튼튼합니다”
김창경씨의 나이는 쉰 셋. 경력은 무려 35년, 십 대 후반부터 이 일을 했다고 한다. 마인트럭은 현재 두 대, 한 명이 한 대씩 자기 차량을 가지고 2교대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시간만 열 두 시간이다. 당장 운전 기술자가 필요하지만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도시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발산하는 지역이라고 하지만, 사실 도시 공기보다 이곳이 나을 걸요, 우린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것에 매우 만족합니다”

힘든 기색이 하나도 없다. 힘이 부칠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 칠순 광부 세명, 일이 있어 행복

이어 수갱의 꼭대기에서 일하는 최고령의 박찬북씨를 만났다. 네번째 인물이다. 그의 나이는 예순 아홉. “같은 나이 대가 3명이나 있는 걸요. 광산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다시 들어오게 됐습니다. 이런 나이에 다시 직장을 갖게 된 걸 보면, 젊은 인재들이 없긴 없나 봅니다”

그는 “이제 물려줘야 광산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마침 교대시간이다. 밖에는 역시 일흔이 다 된 광부가 기다리고 있다. 미소를 띄운 그는 “힘들게 뭐 있겠느냐”며 “여기서 작업을 할 수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고 씩 웃는다.

여덟 시간 동안 갱내 300m에서부터 철광석을 200번 끌어올린다는 그는 “200번이면 700톤, 3교대이니 3명에서 2100톤을 하루에 지상으로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 24세 광부, 광산 통해 꿈을 찾는다

광산 현장 분석실로 자리를 옮기는데 젊은 광부가 보인다. 다섯 번째 광부다. 포크레인 옆에 서 있는 그의 나이는 스물 넷. 신씨는 최연소 나이로 갱내 깜깜한 곳에서 일하는 채광팀 소속이다. 바로 포크레인 작업을 하는 광부다.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갱내가 너무 커 길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어렵거나 힘든 점요? 그런건 전혀 없어요”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왔다고 밝힌 신씨는 이 광산 지역에 대해 “가족 같은 분위기에 모두 본인을 아들처럼 아껴준다”며 신이 나 있다.  그에게는 꿈은 있다. 이곳에서 광산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아 자기 사업장을 갖고 싶다는 것. 소박한 꿈이다. 조사팀의 김문호 팀장은 적지만 젊은이들이 있어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신씨가 있긴 하지만 20~30대 인력은 거의 없습니다. 향후 몇 년 후, 기술자가 없어지는 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그는 이 기회에 광산현장 홍보를 하고 나선다.  “젊은 인재들이 광산현장에 오면 현대화장비 기능을 익힐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현대화 장비 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 들어온다면 하나의 기술은 갖추고 사회로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광산을 자기개발을 위해 투자하는 곳으로 활용해도 된다는 얘기다. 그만큼 젊은 인재의 절박함이다. 그런 면에서 신씨의 광산 생활은 이곳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피로회복제’다.

■지역주민에서 광부가 된 여성

이제 광산의 분석실로 들어가 본다. 홍일점인 여자 광부다. 여섯 번째다. 깜깜한 갱내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광부 일에 남자도 아닌 여자가(?).  지난해 8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개를 받아 들어왔다는 하영희씨. 그녀의 나이는 마흔 일곱. 다행히 갱내에는 들어가지 않는 작업이다. 갱내에서 나온 원석에 철광석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분석하는 곳으로 정광, 원광, 저품위, 폐석을 가려내 분석실로 보내는 분석업무 보조다. 그녀는 교대 없이 여덟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을 한다.

“지난해 7월 본의아니게 생계를 이끌어 가게 됐지요. 광산에 대한 주위 평가가 좋진 않았지만, 지역주민들의 소개가 있어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실제 와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기엔 환경이 너무나 좋습니다. 지금 일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환한 미소로 답하는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갱내에서도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말을 던진다. 그녀 역시 이 지역주민이다.

이번엔 지역주민으로써 한마디 말은 건넨다. “광산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다고들 하지만, 신예미광산 지역인 이곳 함백 지역주민들은 다릅니다. 신예미광산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지역주민들의 일자리가 생겨 활력을 되찾은 분위기입니다”

심지어 이 지역의 이장은 정선군으로부터 일자리 창출과 지역활성화에 이바지했다는 공헌으로 상도 받았다고 한다. 민원은 고사하고 역할을 고마워하고 있는 것이다.

■ 광석을 만져야 힘이 생기는 사람들

마지막 일곱 번째 인물로 김문호 조사팀장과의 인터뷰 시간을 가져본다. 팀장이란 직함이 있지만 그는 광부들과 언제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같은 광부이기 때문이라는 것. 경력 또한 화려하다. 1976년 광업에 종사하기 시작한 그는 신예미광산이 철을 생산하기 이전, 연/아연을 생산할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때 광부 일을 접고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다.

“아이들 교육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결국 1998년 광부의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갔지요. 하지만 광부의 손이 어디 가겠습니까? 광산을 떠나 있는 십년간 ‘언젠간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지요”
그리고 정말 딱 십년이다. 김 팀장이 광산으로 돌아온 시기가 바로 지난해 8월이다. 재개발 바람과 함께 신예미광산의 일손도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오기까지 “가족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광석을 눈으로 보고 만지는데, ‘이것이 나의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아내와 함께 노후를 이곳에서 보낼 생각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많다. 이런 생각은 언제나 나이가 든 이들의 몫일 뿐이다. 올해 쉰아홉인 김 팀장은 “전문가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사람이 없다”며 “현대화장비 교육을 통한 면허 취득이 가능한 이 광산지역에 우리의 명맥을 이어갈 인재들이 나타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소 8시간을 깜깜한 갱내에서 일하고 있는 신예미 광산 광부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배어있다.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말을 외치고 있는 그들의 웃음이 신예미 광산에 흥건하게 고여 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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