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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사장 김종갑)이 연료비 연동제 도입 검토에 본격 착수했다.
한전이 최근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흑자를 기록한 게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연료비와 전력구입비 감소 덕분이라고 애써 강조한 것과 관련 연동제 도입의 군불때기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31일 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연동제 도입과 관련 이사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구체적인 일정 저울질에 나섰다.
한전의 연동제 도입 검토는 낙후한 전력요금 체계 문제 외에도 정책적 판단과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적 판단은 지난 7년간 묶여 있는 전력요금의 현실화, 즉 전기료 인상 필요성이다.
정치적 배경은 한전의 실적이 탈(脫)원전 등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과 연계돼 자꾸 정치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력요금을 유가 등 연료비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기름 값이 비쌀 때 올리고 쌀 때 내리는 구조이다.
기업 원리로 보면 당연하고 이미 도입됐어야 할 연료비 연동제가 전기료에는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전기료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한전이 민영화한 지 오래 됐음에도 아직 이런 기업 원리가 적용되지 않아 한전으로서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 오랜 숙원 과제였다.
한전은 그간 연동제 도입을 수차례 검토 또는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특히 최근엔 한전이 저유가 상황에서 연동제 도입의 적기로 보면서도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제 상황 악화, 탈원전 논란 가열 등으로 전력요금 체계 개편의 부담을 느껴 정치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전은 재무상황이 개선된 지금 줄 곧 주장하던 ‘합리적’ 요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준비하다 돌연 하반기로 미뤘다. 코로나19 사태로 전기요금 인상 추진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다만 업계에서는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하면 국제유가 인상시기에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실패라는 비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 연동제, 국제유가 등 전력구입비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도 변동하는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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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제는 연료비나 전원 믹스 변화, 발전기술의 진보 등으로 전력구입비가 변동하면 전기요금도 그에 맞춰 올리거나 내리는 요금체계를 의미한다.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을 올리고, 재생에너지 기술 향상으로 발전단가가 하락하면 전기요금을 내리는 것이다.
연동제를 도입하면 원유, 석탄, 가스 등 발전 원가(전력 도매가격)의 변화를 전기 소매가격에 주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 합리적인 요금체계 수립이 가능하다. 한전의 비용 중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0~60%에 달한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연료비 등락과 관계없이 사용량에 따라 일정한 금액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한전이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체계를 결정, 정부 산하 전기위원회에서 승인받는 구조다. 이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석유나 가스 등과 대비된다. 한국지역난방공사 등이 공급하는 도시가스의 경우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2개월마다 가격이 조정된다.
이에 과거 정부도 연료비 연동제 필요성을 인식하고 2011년 7월부터 시행하려고 했으나 물가 안정을 위해 유보하다 고유가 시기인 2014년 5월에 접었다. 한전은 해당 시기 삼성동 무역센터 맞은 편 본사 땅을 현대자동차에 팔아 10조 5000억 원의 매각대금을 챙겼다. 당시 한전은 이 돈을 부채상환에 썼다. 부지 매각 이익이 요금 인하에 반영됐다면 전기요금이 최대 30%까지 싸질 수 있었다. 당시에도 한전 경영상태는 흑자라 재정적 부담이 적을 때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번번이 연료비연동제 도입에 실패했다. 현재 성윤모 장관도 취임 당시 "국회와 협의하면서 주택용 누진제를 비롯해 전기요금체계 전반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선 방안이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요금체계 개편에 정치적으로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한전-에경연 "전력 산업 지속 가능성 위해서도 반드시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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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과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오른쪽) |
연동제는 한전의 숙원이다. 한전은 자체적으로 꾸준히 연동제 도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 용역은 전임 조환익 사장 때 시작했으며, 김종갑 사장도 지난 7월 "두부가 콩보다 싸다"는 비유를 들며 연동제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주장했다.
한전전력연구원은 2018년 연동제 기대효과와 해외 사례, 국내에서 이미 연동제를 도입한 가스·열·항공요금 사례 등을 조사하고 연동제 설계 방식과 고려사항 등을 분석한 바 있다. 보고서는 "전력구입비 연동제는 공급원가의 전기요금 적시적 반영을 통한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 유도와 판매사업자의 재무안정성 확보가 주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전기요금은 국제유가나 LNG 가격이 급격히 올라도 따라 오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LNG 등 1차 에너지를 연료로 만드는 2차 에너지인 전기 가격이 1차 에너지보다 저렴해지며 전력 과소비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연료비 하락이나 기술발전으로 한전의 원가가 줄어도 전기요금이 하락하지 않아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발전사업자도 원가를 판매가격에 제때 반영해야 적정 수익성을 확보하고 사업 예측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연동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에경연은 올 상반기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한 ‘국내 에너지 부문 요금체계 현황 진단 및 정책방향 연구’를 통해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주장했다. 우리나라 전력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박명덕 에경연 연구위원은 "상품을 100원에 만들었으면 100원 이상으로 파는 게 당연하다"면서 "원가를 밑도는 가격에 전기를 판매할 경우 전력은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에경연은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면 전기요금 변동으로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인센티브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위원은 "현재 제도로는 단일 전력사업자인 한전이 각종 비용을 아끼거나 경영 효율화를 해야 할 요인이 없다"면서 "영국 등 선진국처럼 인센티브 규제를 통해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연료비 10% 오르면 전기요금은 가구당 월 4200원 정도 올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요금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연료비가 10% 오르면 전기요금은 가구당 월 4200원 정도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용 전기 원가가 kwh당 120원(2015년 한전 발표 판매 원가는 123원)정도라고 가정하면 연료비가 10% 상승할 경우 요금 인상분은 12원이다. 도시 4인 가구 월평균 전기사용량이 350kwh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연료비가 10% 상승할 때 한 달 전기요금은 4200원(120*350) 가량 오르는 셈이다. 반대로 연료비가 내려갈 경우 전기요금도 인하된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시 전기요금 변동 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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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h당 전기 원가 | 4인 가구 한 달 사용량 | 4인 가구 한 달 전기요금 | |
현행 | 120원 | 350kWh | 4만2000원(120*350) |
연료비 10% 변동시 | 120원+12원=132원 | 350kWh | 4만6200원(132*350) |
소비자들과 전력업계는 최근처럼 국제유가 하락 상황에서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 적기라고 보고 있다. 발전 원가가 낮아져 전기요금이 그만큼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셰일가스와 재생에너지 등 대체 자원 증가로 말미암아 앞으로 하락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으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는 미국 일본 중국 등 30여 개국이 도입하고 있다.
해외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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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일본 | |
도입시기 | 1950년대 | 1990년대 |
취지 | 전기사업자 재무 안정성 | 소비자 수요관리 유도 |
요금단가 산정 | 연 1회 | 월 1회 |
인상폭 제한 | 기준연료비의 50% |
다만 정부는 전기요금 급등 가능성을 염려해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기요금이란 여러 제도를 통해 규제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구조적 문제라면 요금인상이 필요하지만 일시적 유가상승과 원전 정비로 인해 요금을 수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한전 실적이 좋았을 때도 요금을 보장했던 것처럼 일시적으로 상황이 안 좋다고 가격이 오르는 쪽으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만약 인상하더라도 이는 에너지전환에 따른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전력 업계에서는 "정부가 스스로 이번 정권 내에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강조하며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연동제를 도입하면 연료비가 오를 때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은 맞지만 반대로 연료비가 내려가면 전기요금도 내려간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큰 그림을 봐야 하는데 폭염으로 여론이 들끓으면 깎아주기 바쁘다"며 "요금 인상으로 인한 반대여론을 두려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전기요금을 연료비 변동에 따라 현실화 해 국민에게 요금 변화 신호를 줘 전기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한전은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바라고 있지만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기업인 만큼 민감한 정치현안인 전기요금에 대해 입장을 그대로 나타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수익성보다 공공성이 우선되는 측면도 있어 결국 국회나 산업부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한전 측은 "하반기 중으로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다시 논의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 시기는 정해진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