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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적십자사의 방사선 포비아 일격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8.25 11:07

정범진(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요즈음 ‘의문의 일패’라는 문구가 TV 예능프로그램의 자막으로 자주 나온다. 의도하지 않게 불이익을 받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의문의 일격’은 그 가해 행위를 표현할 목적으로 생각해 본 문구이다.

지난 3일 필자가 구독하고 있는 일간지 한 면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하단 전면 광고가 실렸다. 대한적십자사의 것이었다. 원폭 피해자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원폭 피해자에 대해 진료, 종합검진, 의료수당 등을 지원한다는 안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원폭이 투하된 것이 1945년이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의 일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될 당시에 15세였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90세이다. 아직까지 찾아지지 않아서 지원받지 못하는 대상자가 얼마나 남았을까? 물론 이 광고가 원폭피해자가 되어도 90세 이상이 되어도 잘 산다는 것을 홍보하려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과연 이 광고를 통해 새로이 찾게 된 원폭 피해자는 몇 명이나 될까?

대한적십자사는 원폭피해자에 대해서 일본 정부의 보상금과 함께 약 2000여명에 대한 치료를 해왔다. 대한적십자사는 당연히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를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 이 피해자를 찾기 위해서 죽음이 느껴지는 검정 바탕에 흰색 문구로 보일 듯 말 듯하게 ‘한국은 세계에서 원폭피해자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입니다’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시작되어야만 원폭피해자를 더 잘 찾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의문의 일격을 당한 느낌이었다. 방사선에 대한 공포를 유발할 목적이 아니었나 판단한다. 물론 의도치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원폭 피해자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데 500만원에서 1000만원 수준의 광고비를 할애하여 주요일간지 하단 전면의 광고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지로형식을 빌려 마치 공과금처럼 의무적으로 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긁어모은 적십자회비가 방사선 공포를 간접적으로 조장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단 전면이 필요했을까? 마치 죽음을 연상시키듯 검정색 바탕에 흰색문구가 원폭피해자를 더 많이 찾는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방사선 공포를 조장하는데 도움이 될까? ‘한국이 세계에서 원폭 피해자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임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원폭피해자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 과연 이것이 대한적십자사가 국민이 제공한 적십자회비를 잘 쓰는 방법일까?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이것은 마치 서울시의 원전 1기 줄이기와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서울시에 운행하는 버스의 상단에는 ‘원전 하나 줄이기’ 혹은 ‘함께 아낀 에너지, 함께 줄인 원전 하나’ 이런 식의 표현이 도장되어 있다. 이것은 원전이 나쁘다는 것을 전제한 표어이다. 이렇게 묘하게 원전을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질의하면 에너지를 절약할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왜 원전을 줄이겠다라는 표현을 서울시가 쓰는가?’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한다. 물론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사무는 서울시의 사무도 아니고 서울시가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원전 개수가 달라지지 않는다. 서울시가 서울시의 소관업무가 아닌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기본자세가 아니다. 누군가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서울시의 행정력을 동원해서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원전을 폄하하는 간접광고 효과를 노리는 일격이 숨어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부지에 보관중인 방사선처리수에 대해서도 해양방류와 관련해 방사선 수치와는 무관한 정치적·역사적 접근이 시도되면서 방사선 포비아(공포증)을 유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관중인 방사선 처리수의 약 20%가 삼중수소를 제외한 다른 방사성물질이 모두 걸러진 상태이고 삼중수소의 농도는 음용수 기준치를 밑돌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은 알려지지 않는다. 대신 마치 대단히 높은 수준의 방사선수가 해양으로 방류될 것 같은 인상만으로 방사선 포비아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방사선 포비아에 일격을 가한 것에는 틀림없다. 이것이 이들이 국민이 납부한 회비를 잘 쓰는 것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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