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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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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 주력했는데"...정영채 NH證 사장, 옵티머스 사태 넘어설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8.13 08:25

정영채 사장, 18년 취임 이후 '고객가치' 주력
업계 최초 KPI 폐지...고객중심 '과정가치' 도입
"KPI 쫓길이유 없는데..옵티머스 '최다판매사' 의외"
투자자들 "100% 선지급 확정하라"...이사회는 난색
일각선 "사모펀드 제도 허점...CEO 사퇴 능사아냐" 반론도

▲NH투자증권, 옵티머스자산운용.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투자은행(IB) 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이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환매중단 사태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 사장은 2018년 취임 이후 업계 최초로 핵심성과지표(KPI) 제도를 폐지하는 등 고객보호에 최선을 다했지만,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리더십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서는 최근 잇따라 터지는 사모펀드로 CEO에 책임을 묻는 기류가 강한 점을 감안할 때 정 사장의 2년 임기 완주가 다소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IB 대부에서 고객가치 대부...NH는 어떻게 '최다판매사'가 됐나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이번 옵티머스 사태의 최다 판매사로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다소 의외라고 보고 있다. 정 사장이 기업금융(IB) 사업부 대표 겸 부사장을 거쳐 2018년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바로 고객가치이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작년 초 증권업계 최초로 기존 직원평가방식이었던 KPI를 폐지하고 고객 중심의 새 평가지표인 과정가치를 도입했다. 상품 판매 실적, 신규 거래 고객 수 증감 등 단기적인 지표에서 벗어나 고객과 소통 횟수, 고객 상담 만족도,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서비스 등 모든 성과를 고객 중심으로 평가하는 제도다. 또 평가방식 등급 기준 중위권인 B등급 이하인 직원들에게는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이는 다시 말해 NH투자증권의 경우 다른 은행과 증권사와 달리 직원들이 성과지표에 쫓겨 무리하게 상품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NH투자증권 측은 "직원들 등급을 S부터 F까지로 억지로 나누다보면 열심히 하는 직원들에게도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B등급 이하 직원들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파격적인 변신에도 NH투자증권은 정 사장의 주특기인 IB는 물론 WM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NH투자증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4764억원으로 1년 전보다 31.8% 늘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 투자자들 "판매사가 전액 보상하라"...이사회는 '신중론'


그러나 옵티머스사태가 터지면서 정 사장의 이같은 성과 역시 다소 빛을 잃게 됐다. NH투자증권은 환매중단으로 문제가 된 옵티머스펀드 설정액 5151억원 가운데 약 84%에 달하는 4327억원을 판매했다. 한국투자증권(677억원), 케이프투자증권(207억원), 대신증권(45억원), 한화투자증권(19억원) 등은 NH투자증권에 비해 판매 규모가 크지 않다. 옵티머스 펀드는 공공기관 매출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한다고 홍보했지만, 펀드 자금 98%를 사업 실체가 없는 비상장 업체의 사모사채에 투자했다. NH투자증권도 내부 검열을 거쳐 해당 펀드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투자자들에게 해당 상품을 판매했지만, 상품 자체가 ‘사기’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정 사장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 사장 앞에는 투자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한편 이사회도 설득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있다. 투자자들은 상품 자체가 사기였던 만큼 판매사가 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옵티머스 사태의 또 다른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이 이미 옵티머스 펀드 가입 고객에 원금 70%를 선지급하기로 결정한 만큼 NH투자증권 역시 하루라도 빨리 선지급 비율을 결정하라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사실 정 사장 입장에서도 한국투자증권처럼 선지급 비율을 확정하고 서둘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다만 NH투자증권 이사회는 선지급 비율을 확정하는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회의에서 긴급 유동성 공급안을 논의했지만 "장기적인 경영관점에서 좀 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결정을 보류했다. 이 과정에서 정 사장은 무이자 대출 형식의 유동성 공급안을 제안했지만, 이는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감독규정 위반 소지가 있는 만큼 이사회에서는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에서는 상품 자체가 사기일 뿐더러 아직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만큼 판매사가 먼저 선지급 비율을 결정하는데 극도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


◇ 국회도 주시하는 사모펀드 사태...정 사장 책임론 부상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업계 일각에서는 옵티머스상품이 '사기 상품'이었다고 해도 이번 사태의 사회적 파장과 피해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정 사장이 도의적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연달아 터진 사모펀드 사태로 사모펀드 상품 자체가 ‘애물단지’로 전락한데다 금융당국은 물론 국회 역시 이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투자자들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아닌 판매사인 ‘NH투자증권’과 PB를 믿고 상품에 가입한 만큼 1차 책임은 단연 NH투자증권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10개의 성과보다 1개의 사고로 책임지는 것이 바로 CEO의 자리다"며 "옵티머스사태를 해결하는데 난항을 겪을 수록 코너에 몰리는 건 정 사장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은 애초에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가 없는 상품이다"며 "업계 최고의 전문가이자 대형 증권사가 상품의 진위 여부를 몰랐다는 것은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이는 다시 말해 판매사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고 강조했다.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와 달리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판매사 측에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는 만큼 CEO 교체가 거론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NH농협금융지주는 이번 사태 수습을 전적으로 NH투자증권과 정영채 사장에 일임하고 있다. 즉 정 사장은 이미 내부적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만큼 이번 사태만 잘 수습되면 지주와 시장의 신뢰도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판매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기조인건 맞지만 옵티머스 건은 (운용사의 과실이 크다는 점에서) 그간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며 "사모펀드의 제도적 허점이 원인이어서 수탁은행과 사무수탁사의 연대책임론도 힘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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