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정책이 주조될 당시에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첫째, 전력수급계획과 에너지계획을 수립하는데 왜 학계와 전문가가 빠지고 시민단체출신의 운동가가 그 자리를 채우는가 하는 것이었다. 의사가 못미더워도 의사 아닌 사람에게 수술을 맡기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둘째, 에너지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인데 왜 환경단체 출신자가 이렇게 주도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에너지계획을 수립하는데 환경적 측면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이 경우 에너지전문가가 계획을 수립하고 환경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에너지전문가가 아니라 환경단체출신의 시민운동가가 에너지계획을 주도하는 것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다. 셋째, 환경단체는 환경부 근처에서 활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산업부를 주요한 활동무대로 삼은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달 환경부는 산업부가 수립중인 제9차 전력수급계획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보완을 요구하였다. 한 마디로 퇴짜를 맞은 것이다. 코메디 같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환경단체출신의 시민운동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제9차 전력수급계획 그리고 에너지전환정책(탈원전정책)으로 영혼을 바꾼 공무원들이 수립한 계획이 환경부 입장에서 보면 환경친화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환경, 환경!’ 하며 마치 환경이 전부인 양 떠든 자들이 세운 바로 그 계획이 환경부에 퇴짜를 맞은 것이다. 에너지정책 전환 정책이라는 것은 이제 무엇이란 말인가?
7월 6일자로 발표된 환경부의 해명자료는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환경부의 검토의견은 비공개로 한다는 것 그리고 퇴짜가 아니라 ‘전반적인 내용이 부실해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라’고 한 것이라는 해명이다. 전반적인 내용이 부실하다는 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 정부가 세운 다른 계획과 유사하게 목표만 있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각오만 가지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겠다고 목표는 제시했지만 탈원전을 하고 나니 달리 이산화탄소를 줄일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얼마전 어느 행정학자가 작성한 원전과 관련한 설문지를 검토한 적이 있다. 제1번 설문이 ‘원자력발전소가 있었으면 좋겠는지 없었으면 좋겠는지’를 물은 것이었다. 누가 대답해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나올 것이다. 올바른 질문은 전력을 생산하는데 원자력으로 할 것인지 석탄으로 할 것인지를 물었어야 했다. ‘원전이 있었으면 좋겠는지 없었으면 좋겠는지’라는 질문은, 누군가 전기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공급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를 쓰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는 툰베리(Greta Thunberg)식 환경운동은 결과적으로는 우리 환경을 더욱 아프게만 할 뿐이다. 이것이 진보적 환경단체(Environmental Progress)를 이끄는 마이클 쉘렌버거(Michael Shellenberger)의 메시지이다.
사실 이번 환경부의 퇴짜는 예정된 일이었다. 산업부가 현 정부에서 수립한 제8차 전력수급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당초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안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부는 환경부 국장을 전력정책심의위원회의 위원 가운데 하나로 위촉하고 다수결로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사실상 환경부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여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서 환경부는 작년 연말 환경영향평가법을 개정하고 제9차 전력수급계획부터는 수립과정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제도화했던 것이다. 산업부의 독주를 막기 위한 제도였는데 산업부가 이에 부합하는 계획을 수립하지 않자 퇴짜를 놓은 것이다.
이미 제8차 전력수급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실가스를 저감할 방법이 없는데도 허수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늘리고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억지전망에 따라 계획을 수립해놓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우격다짐식 주장을 해왔던 것이다.
환경단체운동가가 주도한 에너지전환정책이 환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단편적으로 푸는 사람들이 수사학과 웅변술로 국민을 속인 결과이다. 문제는 더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