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중인 전기차(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석유 수요가 언제쯤 최고치를 찍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까지만 해도 2030년대 이후로 석유에 대한 수요가 최고치를 찍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석유수요가 보다 더 빠른 시일 내 고점을 찍을 것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면서 자동차 산업이 침체기를 이어가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점도 석유 수요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기차 대중화가 가시화되면서 더 많은 소비자들이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석유수요가 최고점에 달하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 피크 석유수요 도달 시기, 2030년대에서 2020년대로 하향 조정
글로벌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가 기존에 발표한 ‘2019년 세계 에너지 통계 리뷰’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 소비량은 과거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증가세를 이어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석유수요는 하루 약 1억 배럴로 최고수준을 경신했다. 이처럼 석유에 대한 수요가 왕성하자 주요 기관들과 석유업체들은 석유수요가 최고를 찍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영국 BP는 과거 보고서를 통해 2035년을 기점으로 석유 수요가 감소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고 엑손모빌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2040년까지 석유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스타드 에너지 역시 2030년이 되어야 석유수요가 최고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2027년∼2028년 사이에 글로벌 석유수요가 하루 1억 650만 배럴에서 1억 700만 배럴로 정점에 달할 것이라며 전망치를 수정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피크수요를 정하는데 있어서 그동안 석유산업은 꺼림직한 태도를 보였다"며 "그러나 올 한 해에만 수요가 하루 860만 배럴 하락할 것이라는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망이 나오면서 (피크수요에 대해) 다시 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석유수요가 2019년 수준으로 결코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근무, 항공, 통근 등의 패턴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미즈호은행의 폴 생키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특히 항공연료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계속 떨어져 오히려 2019년에 석유수요가 피크를 찍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BNP 파리바그룹의 마크 루이스 책임자 역시 "석유에 대한 모든 수요가 한 번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규모가 영구적으로 손실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기차 대중화, 석유피크 앞당긴다
주목할 점은 코로나19 사태 속에도 테슬라 등 전기차 업체는 물론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등 정통 자동차 업체 역시 전기차 산업에 몰두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GM은 셀 수명이 ‘100만 마일(160만㎞)’에 달하는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더그 파크스 GM 부사장은 지난 19일 열린 온라인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100만 마일까지 지속할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거의 다 왔다"고 강조했다. 테슬라 역시 100만 마일 배터리를 이르면 연내 중국 시장에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년 후에는 전기차 생산업체의 지형도가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2030년부터 테슬라 등의 업체를 앞서 전 세계 전기차 1위 업체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됐다. 기존 판매 베이스가 워낙 커서 이를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대규모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전기차 배터리 기술이 향상되면서 가격은 하락하고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까지 맞물릴 경우 내연기관차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휘발유 등 차량용 연료가 수요의 절반가량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전기차 대중화가 가팔라질 수록 석유수요가 피크에 도달하는 시점이 빨라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에너지조사업체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전기차 모델은 2020년 170만대로 전 세계 자동차 판매의 3% 가량 차지하지만 2023년에는 약 540만대로 상승해 7%를 차지할 것으로 최근 전망한 바 있다. 나아가 BNEF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25년과 2040년에 각각 850만대, 5400만대로 급증해 전 세계 판매의 58%를 차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속적인 배터리 가격의 하락세, 전기차 모델의 다양화, 그리고 탈(脫)탄소를 요구하는 각국 정책들이 맞물리면서 전기차 대중화가 도래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기대감은 코로나19 사태 속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도 유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BNEF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글로벌 내연기관차 판매량은 23% 급감하는 반면 전기차는 18% 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BNEF는 또 내연기관차량의 전 세계 판매는 2017년 정점을 찍었고, 일시적인 위기 후 회복을 거친 후 장기적인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 리스타드 에너지의 페르 마그누스 니스빈 파트너는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2023∼2024년부터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가팔라질 것"이라며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 석유 수요에 관련해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인 우드 맥킨지는 "원유 수요에 대한 전망은 작년말 우리가 예상했던 수준보다 영구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피크에 도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업체는 원유 수요가 2030년대 중반이 지나야 최고치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지만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움직임이 가속화될 경우 2020년대에 최고를 찍고 2030년대 이후 급락할 것으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BP의 버나드 루니 최고경영자(CEO) 역시 이달 중순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향후 원유 수요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원유 수요가 이미 정점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세계 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각국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전기차 대중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지난주 저배출 차량에 대한 판매량을 올리고 싶다고 밝혔다.
중국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전기차 관련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며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청정자동차 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