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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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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달러대' 국제유가...'러-사우디 석유 전쟁·원유수요' 주목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3.26 14:02

▲(사진=에너지경제DB)


국제유가가 사흘째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향후 유가 전망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원유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계속해서 줄어들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산유국 석유전쟁을 중재하려고 하는 미국의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2.0%(0.48달러) 상승한 24.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0.88%(0.24달러) 오른 27.39달러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초대형 ‘경기부양 패키지법안’에 대한 기대감이 지속하면서 원유시장의 투자심리가 개선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정부와 의회는 2조 달러 규모의 대규모 부양책에 합의했다. 당초 거론되던 1조 달러보다 훨씬 큰 수준이다.

대기업에 대한 구제 금융과 중소기업 지원, 개인에 대한 현금 지급, 의료 지원 등의 내용이 광범위하게 포함됐다. 항공 등 위기가 특히 심한 산업에는 현금을 보조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대규모 재정 부양책이 코로나19로 충격이 불가피한 미국 경제에 버팀목 역할을 해 줄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무제한 양적완화(QE)에 돌입하는 등 금융시장 유동성 공급도 유례없는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재정 부양책의 의회 표결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며, 여전히 논란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 상승세 오래갈까…? 원유수요는 계속 하락할 것



그러나 문제는 현재 원유시장이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양방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부양책과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QE)로 투자심리가 개선됐지만 근본적인 펀더멘털이 개선되지 않는 한 원유시장이 탄력받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리스타드 에너지는 "원유 선물시장은 기대감으로 인한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원유시장에 대한 위기는 커져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지역 봉쇄와 통행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항공연료 등의 원유 수요가 연달아 위축받고 있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26일 "비행기,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이 제한되면서 2분기 글로벌 연료 수요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세계 2위의 인구이자 세 번째로 원유를 많이 소비하는 인도가 21일간 전국 봉쇄령을 내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앞으로 21일 동안 집을 떠날 생각은 잊으라"며 "21일간의 봉쇄령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의 가족은 21년의 시련을 마주할 것이고 일부는 영영 비탄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도 정부는 자국의 코로나19 대응 역량을 가늠하기 위해 이달 22일 하루 동안 13억 인구 전체에 대해 통행금지령을 실시한 바 있다. 이후 여러 주와 지역이 봉쇄령을 내렸지만 저마다 다른 규칙을 적용해 왔다.

전국 봉쇄령이 시작되면 필수적 이유가 없는 외출 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해당 기간에는 식료품점, 병원, 약국, 은행 등 필수 서비스 업체들만 운영하는 만큼 원유수요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2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에너지정보청(EIA)는 지난 한 주 동안 미국의 휘발유 수요가 하루 85만 9000배럴 감소해 880만 배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9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같은 기간 휘발유 포함 전반적인 연료에 대한 수요는 하루 21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수요에 대한 전망도 비관적이다. 세계 최대 원유 중개업체인 비톨(Vitol)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는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몇 주 이내 원유 수요가 하루 최대 1500만∼200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연간기준으로 보면 약 500만 배럴의 수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이는 우리가 직면해왔던 상황 중 최대 규모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디 CEO는 "현재까지 정유업체들은 약 하루 700만 배럴에 달하는 정제가동률을 줄여왔지만 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WTI와 브렌트유의 가격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향후 몇 주 동안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 산유국 석유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 주목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


이렇듯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원유수요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의 ‘석유 전쟁’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코로나19 여파로 산유국들은 감산합의에 논의를 이어갔지만 러시아의 비협조로 무산되자 두 산유국은 증산을 예고하면서 유가하락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은 원유시장 안정화를 위해 미국이 언제 본격적으로 석유 전쟁에 입김을 불어넣을지를 주목하고 있다. 저유가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가뜩이나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미 셰일 업계가 수익성 악화라는 또다른 악재로 인해 존폐위기에 처해질 것으로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석유 산업이 저유가로 무너지면 경제침체는 물론 ‘에너지 독립’을 선언한 미국의 위상마저 흔들릴 수 있다. 미국이 그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에너지 독립의 힘이 컸다.

미국도 이를 의식한 듯 사우디에게 입김을 조금씩 불어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사우디와 러시아 간 석유 전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 "사우디에는 나쁘다고 말하고 싶다"며 "적절한 때에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전화통화를 통해 국제 에너지시장을 논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모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 공화당의 상원 의원들은 빈 살만 왕세자에게 유가 안정에 나서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도 최근 석유 전쟁을 중재하기 위해 가세했다. 25일(현지시간) 미 국무부는 성명을 공개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화요일 빈 살만 왕세자와의 전화통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안정화를 유지하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성명은 "폼페이오 장관은 세계가 심각한 경제적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 속에 사우디는 G20(주요 20개국) 의장국이자 중요한 에너지 리더로서 세계 에너지와 금융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양측은 코로나19 팬데믹에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도 모든 국가들이 전염병 억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을 서로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와 러시아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석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26일 "사우디 또는 러시아를 향한 압박은 효과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측은 최소한의 성과를 챙기기 전까지 석유 전쟁에 물러날 계획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미국, 최후의 수단으로 ‘NOPEC’ 카드 택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매체는 그러면서 만약 미국의 이러한 노력이 무산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석유생산수출 카르텔 방지법’(NOPEC) 법안 통과 가능성을 언급했다. 해당 법안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에 대한 면책특권을 제거하고 유가 담합 행위를 미국 독접금지법으로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NOPEC 법안은 또한 가격 담합에 참여한 석유 생산국의 미국 내 자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미 의회는 초당적으로 해당 법안을 작년 2월 입법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법안 발의에 참여한 척 그래슬리(공화·아이오와) 상원의원은 "석유카르텔과 그 회원국들은 우리가 그들의 반경쟁적 행위를 멈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와 관련, 오일프라이스닷컴은 "해당 법안은 실제 법으로 통과되는 단계까지 도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가 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자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법안에 대해 과거엔 난색을 표했지만 최근엔 입장이 모호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 의회에서 NOPEC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사우디에게 큰 압박이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행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 왕권이 2주 내로 무너질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며 "미군의 지지가 더 이상 없을 때와 NOPEC법상 처벌국가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NOPEC 법이 통과될 경우 사우디는 미국에서 발효되고 있는 반독점법안에 따라 고소를 당하며 사우디는 법적 책임으로 미국에 약 1조 달러어치의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은 또한 법적으로 미국 내 모든 사우디 은행계좌를 동결하고, 자산을 압류하고 사우디의 달러 사용을 금지시킬 수 있다. 매체가 NOPEC 법안을 ‘석유 전쟁을 종결시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궁극적인 무기’라고 표현한 것을 고려하면 사우디가 원유시장 안정화를 촉구하는 미국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NOPEC 법안과 유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은 과거에도 발의된 적이 있으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이 무산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해당 법안을 반대했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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