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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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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경제 바로미터 '구리 가격' 4년來 최저…"반등 어렵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3.23 08:00

코로나19로 경기침체 우려감 확산에 장중 톤당 4371달러까지 하락

최대 소비국 中, 2월 제조업 PMI 역대 최저…美도 2013년 이후 최저

글로벌 경제 성장률도 금융위기 후 최저 수준 전망속 추가 하락 가능

"업체 생산비용 낮아져" 월가선 향후 3개월간 구리가격 '하향 조정'

▲그래픽=송혜숙 기자


글로벌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자재로 꼽히는 구리의 가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약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폭락했다. 구리의 가격은 글로벌 경기 전환점을 잘 보여준다고 해서 ‘닥터 코퍼’라고 불리는 만큼 향후 전망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향후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구리 가격 역시 당분간 부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코로나19 사태로 구리가격 4년래 최저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선물가격은 장중 한 때 톤당 4371달러까지 하락하면서 2016년 1월 중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후 상승세를 다소 회복해 4690달러로 마감했다.

구리는 글로벌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원자재다. 구리는 전기, 전자, 건설, 선박, 운송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대표적인 원자재로, 경기 변동에 따른 구리 수요가 가격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경기가 침체될 경우 건설, 자동차 제조 등의 사업이 중단되고 소비심리도 위축됨으로써 구리에 대한 수요가 줄어 가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투자자들은 경기가 악화될 경우 구리에 대한 숏 포지션(매도)을 취하는 반면 경기가 회복되면 롱 포지션(매수)을 활용한다.

그러나 구리 가격은 이달 들어서만 17% 가량 빠졌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집계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21만 5000명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8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실제로 구리 가격 하락세와 맞물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경기 위축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인 중국의 경우,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역대 최저인 35.7에 그쳤다. PMI는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을 뜻한다. 2월 미국의 종합 PMI도 49.6으로 2013년 10월 이후 최저였다. 같은 기간 미국 제조업 PMI(51.9→50.8)와 서비스 PMI(53.4→49.4)도 하락했다.

여기에 20일 AP통신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호텔과 항공, 여행 등의 업종은 물론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제조업체들에서 수천명 이상의 정리해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리어트호텔은 지난 17일 수만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실상 임시해고인 무급 휴가를 시작했고 미국 GM 등 3대 자동차 업체들은 북미 공장들의 가동을 임시 중단하고 있어 15만명의 노동자가 놀고 있다. 미국여행협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여행산업 일자리 460만개가 사라지고 여행업계 실업률이 현재의 3.5%에서 6.3%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이코노미스트인 미셸 메이어는 "우리는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져들어 세계 다른 곳과 합류했다고 공식 선언한다"며 "일자리는 상실될 것이고 부(富)는 파괴되고 심리도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미 GDP 성장률이 2분기에 마이너스 12%, 올해 전체로는 마이너스 0.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1%를 기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당 기관은 앞서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성장률이 2.3%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 구리가격 추가 하락할까…다양한 지표로 예측가능


이렇듯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안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구리 가격의 부진을 전망하는 지표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시티은행 맥스 레이턴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원자재 리서치 부문장은 ‘구리 가격 대비 금값의 비율’을 설명하면서 구리 가격이 앞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비율은 온스당 구리 가격을 온스당 금값으로 나누면서 산출된다. 구리와 금에 대한 채광과 생산구조가 비슷하지만 금은 경기가 불안할 때 강세를 보이는 안전자산인 반면 실물경기 회복기에는 구리의 값이 오른다.

레이턴은 "두 원자재에 대한 비율은 성장을 상징하는 구리의 가격추이와 공포를 반영하는 금의 가격추이를 하나의 비율로 나타낸다"며 "이러한 비율을 갖고 하나의 흐름으로 봤을 때 하향세가 보이면 저성장과 공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고 반대로 비율이 상승하면 불안심리가 사라지고 고성장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구리 가격 대비 금값에 대한 비율 추이는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 추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했다. 미 국채는 또 다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만큼 경제위기 때마다 몸값이 뛰어 오른다. 이는 곧 채권 수익률이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리와 미국 국채 금리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경제 역시 어두운 터널을 지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 국채 금리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사상 처음으로 장중 1%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이 고조되면서 미 증시가 연일 폭락하자 투자자들이 현금인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국채마저 팔아치우자 채권 수익률은 최근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1.118%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턴은 "최근 들어 두 지수에 대한 격차가 커지고 있다"며 "이는 채권시장에 대한 공포감이 원자재시장보다 더 많이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발언은 향후 구리 가격 대비 금값 비율의 하락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전문가들 "톤당 5000달러 선 밑으로 머물 것"


구리 가격 전망은 유가 추이를 통해 예측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국제유가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요 둔화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여기에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 합의 실패 이후 ‘유가 전쟁’에 돌입한 것도 유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유가 추이가 구리가격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레이턴은 "유가 역시 구리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성장과 경제활동에 크게 좌우된다"며 "구리 채굴과정에서 석유가 사용되기 때문에 유가는 구리를 생산하는 한계비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가가 하락함으로써 구리 생산업체들의 생산비용이 낮아진다"며 "이에 따라 구리 가격은 하방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배경으로 시티그룹은 구리 가격이 향후 3개월 동안 톤당 5000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구리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제프리 커리 애널리시트는 최근 투자노트를 공개하면서 향후 3개월간 구리 가격 전망치를 톤당 5900달러에서 4900달러로 하향조정했다. 향후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억제되면 금융시장은 점차 회복하겠지만 원자재 시장은 현물이 따르는 만큼 그동안의 수요둔화로 인한 잉여분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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