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원칙없는 에너지정책에 두산중공업이 결국 휴업 위기에 내몰렸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예정돼 있던 10조원의 수주가 날아가자 공장을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지난달 2600명을 명예퇴직 대상으로 올린데 이어 연이은 고육지책이다.
구조조정 당시 정부와 여권에서는 원인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아닌 회사의 실책이라고 단정했다. 원전 건설은 기존 국가 에너지계획에 포함된 사항이었는데도 말이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사업은 2008년에 이미 국가에너지 정책에 의한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 2014년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2015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계속 유지됐고, 2017년 2월에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적법하게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정부는 2017년 말 돌연 최대전력수요를 7차 계획 보다 12.7GW 축소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원전과 석탄화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그 공백을 LNG와 신재생에너지로 메우기로 했다. 8차 계획 심의 당시 공청회와 심의·확정이 단 이틀 만에 이뤄져 ‘졸속’ 논란이 일었다. 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공론화로 수천억원을 날렸다.
◇ "정부 정책 맞춰 사업 준비했는데...회사 잘못?"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8차 계획상 최대전력수요. [한국원자력학회 제공] |
그동안 일련의 사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던 두산중공업이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정부정책의 오류를 지적했다. 정연인 사장은 지난10일 노조에 전달한 ‘경영상 휴업’ 등의 내용을 담은 노사협의요청서에서 "최근 3년간 지속된 수주 물량 감소로 올해 창원공장 전체가 저부하인 상황에서 2021년에는 부하율이 심각한 수준까지 급감한 뒤 앞으로도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됐던 원자력·석탄화력 프로젝트 취소로 약 10조원 규모 수주 물량이 증발하며 경영위기가 가속화됐다"며 "신용등급까지 하락해 부채 상환 압박이 있다"고 했다.
국내 발전소 건설은 정부의 계획에 따라 공기업 주도로 추진·운영된다. 원전 주기기 등 발전 기자재를 만드는 두산중공업은 당연히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재의 사태에 대한 책임은 기존 발전소 건설계획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정부가 아닌 두산중공업에게 지워지고 있다.
김성원 전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12일 에너지경제와 통화에서 "회사의 잘못이라면 기존 정부의 계획을 신뢰하고 그에 맞춰 사업을 준비한 것 뿐"이라며 "발전소 건설은 수년이 걸리는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이런식이라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겠나"라고 탄식했다. 그는 "학생이 담임 선생님이 시험에 가,나,다가 나온다고 해서 공부했는데 시험 전날 새로운 선생님이 와서 A,B,C로 바꿔서 시험을 망친 학생에게 학생 잘못이라고 하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만약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짓겠다고 하는데 회사가 이에 따르지 않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준비했다고 치자, 정부가 가만히 뒀겠는가? 국내에 원전 주기기 제조업체는 두산중공업이 유일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김 전 부사장은 "회사에 몸 담았던 사람 입장에서 마음이 찢어진다"며 "지금 정부에서 원자력을 재개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보인다. 두산중공업이 어려워지는 건 정해진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한편 두산중공업 노조는 휴업을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은 "경영 위기와 오너·경영진의 방만 경영으로 벌어진 일인데 직원들에게만 고통과 책임을 전가해 수긍할 수 없다"며 "오너가가 사재출현, 사내유보금 사용, 두산지주 지원, 전문경영인 선임 등을 통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