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림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 겸 KB증권 대표이사. |
KB금융그룹이 지난해 금융권에 파문을 일으킨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에서 비껴갈 수 있었던 건 박정림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 겸 KB증권 대표이사의 공이 컸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 사장은 KB금융지주 내 손꼽히는 자산관리(WM) 전문가로, 상품 판매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과감하게 DLF 상품에 보수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KB금융지주 내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시중은행이 DLF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한 2018∼2019년 초 KB국민은행은 나홀로 해당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독일 국채금리가 장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다소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KB금융그룹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박 사장의 투자 혜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장은 투자 심의 과정에서 임직원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한 결과 DLF 상품을 판매할 경우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사 입장에서 상품을 판매해 수수료 수익을 얻는 것보다 투자자의 자금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박 사장의 지론이다. 여기에 김영길 KB국민은행 WM고객그룹 부행장과 조순옥 KB국민은행 준법감시인(상무) 역시 박 사장의 결단과 인사이트를 지지하며 힘을 실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장이 금융상품에 폭넓은 안목을 갖게 된 배경에는 30년 넘게 금융권에 몸을 담으며 다양한 상품을 접한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박 사장은 1986년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한 후 2004년부터 KB국민은행으로 옮겨 시장리스크부장, WM본부장, WM사업본부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박 사장은 KB증권 대표이사로 선임되기 전인 2017년 KB금융지주 WM 총괄 부사장, KB증권 WM부문 부사장, KB국민은행 WM그룹총괄 부행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즉 KB금융그룹의 모든 자산관리와 금융상품은 박 사장이 총괄했다는 의미다.
결국 박 사장의 이같은 결정은 '신의 한 수'로 통하고 있다. 지난해 DLF 사태로 주요 금융사 CEO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을 위험에 처한 것과 달리 KB금융은 상대적으로 평탄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다시 말해 박 사장을 비롯한 KB금융그룹 임직원들의 투자상품을 바라보는 폭넓은 혜안과 결단이 투자자 보호는 물론 KB금융그룹 내 브랜드 가치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KB금융지주. |
박 사장이 KB금융그룹 내 자산관리 부문에서 단단하게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인재를 알아보는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공도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사장의 투자 혜안과 리스크 안목 등을 높이 평가한 윤 회장은 2018년 12월 박 사장을 김성현 사장과 함께 KB증권 공동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윤 회장은 더 나아가 작년 12월 말 박 사장에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도 겸임하게 했다. 즉 박 사장은 국내 증권사 최초 여성 CEO로 등극한데 이어 KB금융지주의 자본시장 총괄까지 담당하면서 금융권의 높은 천장을 탁월한 현장 감각과 리스크관리 등으로 극복한 셈이다.
KB금융지주 내 정통한 관계자는 "KB금융이 지난해 파문을 일으킨 금융사고에서 모두 비껴갈 수 있었던 건 금융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리스크나 투자자들이 입을 수 있는 손실 가능성을 보다 심도있게 들여다봤기 때문"이라며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혜안과 투자자 중심의 전문성이 맞물리지 않았다면 KB금융 역시 DLF 사태의 칼날을 비껴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권 내 자산관리 핵심 인력은 투자 경험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통찰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자리다"며 "KB금융지주의 박정림 사장과 같은 사례는 고객의 돈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유능한 인재 한 명이 어떤 파급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