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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서 3월 29일까지 100일간 진행
최초 선보이는 전력사 희귀자료 통해 전력산업 태동기 모습 확인
중장년층 아련한 추억 되새기고 젊은층에는 교통의 역사 조명
[에너지경제신문 최윤지 기자] "출퇴근할 때 주로 전차를 타고 다녔죠. 당시는 전차가 주요 생활교통수단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 서울. 동대문발전소에서 전차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전차는 1968년 마지막 운행을 마칠 때까지 약 70년간 서울 시민들의 출퇴근을 책임졌었던 핵심 교통수단이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전차 개통 120주년을 맞아 ‘서울의 전차’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시민의 발이자 추억이 담긴 전차의 역사를 사진과 영상자료 및 실물자료를 통해 소개해 눈길을 끈다. 특히, 전차사업을 추진한 한성전기주식회사의 설립에 참여했던 미국인 사업가 ‘보스트위크’의 희귀자료가 일반시민에 최초로 공개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9일 기자가 찾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아이와 함께 전시회를 찾은 부모들, 대학생, 중장년층 등 다양한 계층의 방문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전시를 찾은 중장년층은 당시 전차 노선도를 보며 "전차가 저 길로 갔었구나. 기억나는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전차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전차를 타보고 싶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전차 개통 120주년을 맞아 한국전력공사와 서울역사박물관이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는 서울의 전차 기획전을 화보로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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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전차 381호. 서울에 마지막 남은 2대의 전차 가운데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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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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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전기 설립에 참여한 미국인 사업가 보스트위크의 사진첩이 최초로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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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전기회사에서 보스트위크에게 보냈던 고종황제 만수절 초청장(19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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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 기획전에 시청각 자료가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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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전차’ 기획전에 실물자료가 전시돼 있다. |
1887년 조선 최초로 경복궁 건청궁에 전깃불이 들어왔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된 데 이어 1899년 전차가 개통됐다. 이로써 당시의 서울 한성은 근대도시로서의 기반시설을 갖춰 갔다.
전차는 고종의 근대화에 대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고종은 1880년대 해외에 시찰단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본격적으로 서양의 최신 문물을 수용했다.
전차도 그중 하나였다. 황실은 빠르고 편리한 물자 운반으로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자는 뜻으로 전차 선로 부설을 추진한다.
전차가 부설되기 위해서는 전기의 도입과 도로의 정비가 필수였다. 그러나 기존 건청궁 발전소는 궁궐 사용에 제한된 설비였다. 이 때문에 새로운 발전 시설과 선로, 전기선이 필요했다.
황실은 새로운 발전 시설과 선로, 전기선을 설치하기 위해 민간회사의 틀을 빌려 1898년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미국 ‘콜브란-보스트위크 상사’에 설계부터 설치, 시운전까지 책임지는 턴키방식으로 사업을 청부했다.
한성전기회사는 설립 이듬해인 1899년 대규모 전차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898년 9월 15일 경희궁 흥화문 앞에서 기공식을 거행한 후, 선로 부설이 본격화됐다. 한성전기회사는 전차개통으로 인한 전기수요를 예측해 75㎾ 규모의 동대문발전소를 완공했다.
이후 한성전기회사는 1899년 5월 4일 전차 개통식을 개최했다. 서울의 전차는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교토(1895년 1월), 나고야(1898년 5월)에 이어 3번째, 아시아에서 수도로서는 최초로 운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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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개통식 동대문(18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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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을 달렸던 대한제국시대 전차(1899년 도입 당시 모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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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을 달렸던 대한제국기 일반용 전차(1902년)(사진=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
전차는 혁명과도 같았다. 전차는 서울의 모습을 바꿨고, 시민들의 의식과 생활도 바꿔놓았다. 전차는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전차는 ‘대중교통’이라는 말 그대로 요금을 지불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탈 수 있는 차였다. 차비를 내면 평민도 양반과 함께 일등석에 탈 수 있고, 양반이라도 차비가 없다면 전차를 탈 수 없었다. 전차는 반상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 간의 공간 구별도 서서히 무너뜨렸다.
당시 보스트위크는 신문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여성들이 우리 차를 탈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를 향한 첫걸음이다. 이전에는 여성들이 낮에 거리를 다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전차요금은 구간제로 이뤄졌다. 1935년 기준으로 시내선 5전, 교외선 1구역 및 시내·교외·2선연결권 8전, 시내·교외·3선연결권은 11전이었다. 당시 메밀국수 한 그릇은 8전, 커피 한 잔은 10전이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4개였던 전차 노선은 경술국치 후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시 경계의 확장과 인구 증가에 따라 전차의 수도 늘어났지만, 그 수요를 다 감당할 수 없었다.
1930년대 들어서 전차 안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1939년 1월 26일부터 31일까지 5일간 승객 조사기록을 보면 5일간 승객수가 56만4869명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급증한 경성 인구에 따라 만원전차가 사회 쟁점이 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에는 지선을 포함해 노선이 16개에 달했다. 전차 전성기에는 72개 역에 전차 200여 대가 서울을 누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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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전차 노선도(1961년)(사진=한국전력공사 인사처 기록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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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시간표(1899년)(사진=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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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전차표 검표기, 전차 승차권, 전차 승차권 제작 관련 서류 |
해방 이후 서울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1915년 24만 명이었던 서울 인구는 해방 이후 1946년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만원전차 문제가 극심해지면서 전차는 대중교통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당시 이를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였다. 전차를 증편하거나 전차를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전차를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미 교통 수요가 전차의 운행 범위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전차 궤도 부설은 시간과 경비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서울시는 확장하는 도시에 발맞춰 궤도를 놓는 것보다 버스를 통해 전차가 가지 않는 곳을 잇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버스를 중심으로 교통시스템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버스 승객의 증가는 전차 승객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전차 운영주체였던 경성전기회사의 적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그사이 경성전기회사는 1961년 조선전업, 남선전기를 합병해 한국전력주식회사라는 거대기업이 됐지만, 전차의 쇠퇴는 막을 수 없었다.
근대화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전차는 자동차 위주로 개편돼 가는 도시교통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됐다. 1966년 교통기관별 승객수송 자료에 따르면 버스와 시내버스합승, 택시가 서울의 교통량 중 85%를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전차 철거의 신호탄은 세종로 지하도 건설이었다. 서울시는 세종로 지하도 건설을 위해 한국전력주식회사로부터 1966년 전차 사업을 인수했으며, 전차 운행을 일부 중단시키며 전차 철거의 수순을 밟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68년 11월 29일. 서울시는 전차 운행을 전면 중단한다. 70년간 시민의 발이었던 전차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장년층에게는 전차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차에 대한 기억을 전수하는 ‘서울의 전차’ 기획전은 3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이번 기획전에 대해 "많은 시민이 이번 전시를 찾아 전차에서 전등, 그리고 발전소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태동하던 그 주요장면을 생생하게 느껴보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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