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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담보대출 늘려라" 주문에...은행권 '부실-안전성' 딜레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12.04 08:05

국내 시중은행 동산담보대출 잔액 1년도 안돼 2배 급증

정부 취지 공감하나...기업 파산시 동산 회수-매각 방법 ‘깜깜’

동산·채권담보법 개정 시급..."전체자산 담보 미국 등 사례 참고해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경기도 파주 팝펀딩 물류창고에서 열린 동산금융 혁신사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여기 계신 시중은행장님들. 동산담보대출 보고 받으세요. 동산담보 어떻게 취급하고, 왜 다른 은행보다 못하는지 다 보고 받으세요. 매일 부동산 담보 잡고 대출 받는데, 기업에 재고자산이나 원재료도 있지 않습니까. 이거 담보로 하면 기업들 불만도 완화될 수 있습니다."(11월 29일 대한상공회의소, 은성수 금융위원장.)

금융당국이 금융권을 대상으로 동산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라고 주문하면서 시중은행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은행권들은 동산금융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동산담보대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 동산담보대출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이 완료되지 않은데다 중소기업들의 부실 가능성과 향후 회수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무작정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은행권들을 대상으로 동산담보대출을 확대하라고 강조하기보다는 법부터 조속히 개정해 동산금융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고 은행권들이 보다 유연하게 동산
금융을 취급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국내 시중은행 동산담보잔액 2배 급증...상품 라인업 다각화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10월 말 기준 총 307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말(1131억원)보다 무려 2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동산담보대출은 신용도나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기계나 설비, 매출채권, 지식재산권(IP) 등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공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해 5월 23일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 전략을 발표하며 주요 은행권도 동산을 담보로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도록 했다.

▲하나, 신한, KB, NH, 우리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 5곳 동산담보대출 잔액 추이.(자료=각 사)


이에 주요 은행권들은 동산담보대출 전용 상품을 따로 만들거나, 기존 대출 상품에 동산담보도 같이 취급하는 방식으로 동산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권 가운데 동산금융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작년 8월 성공 두드림 동산담보대출을 출시한데 이어 올해 4월 IP를 담보로 하는 대출상품을 출시하는 등 동산담보대출 상품 라인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담보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초 사물인터넷(IoT)에 기반한 동산담보 관리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했다. 기존에는 동산담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3개월 마다 현장을 방문했지만, 해당 시스템 구축으로 현장 방문 없이 담보물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해당 시스템을 설치하면 ‘성공 두드림 동산담보대출’을 이용할 때 담보기준가의 55%까지 동산담보물의 가치를 인정한다.

KB국민은행은 동산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상품 제한이나 업종, 등급 제한 등 각종 허들을 폐지하고 담보 대상에 반제품, 완제품 등도 추가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에게 동산금융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 유형자산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맞춤형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KB 동산·채권 담보대출(유형자산)’ 상품도 취급하고 있다. 설립 1년 이상 중소기업 또는 중견기업들은 유형자산 담보조사가격의 80% 한도 내에서 운전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시설자금의 경우 총 소요자금의 80% 이내까지 가능하다.

NH농협은행은 기업이 보유한 특허권 등 IP의 가치를 평가해 운전자금을 지원하는 ‘NH지식재산권(IP) 담보대출’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도 모든 대출 상품에 ‘동산’도 담보로 취급할 수 있도록 상품 라인업을 확대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5년간 동산 및 IP를 담보로 총 7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며 "유형자산, 매출채권, 재고자산, 지식재산권 등 담보 종류별로 맞춤형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말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조찬강연회에서 동산금융 관련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은 위원장은 창고에 쌓여있는 의류 등 각종 재고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지원하는 사례를 소개하며 "기업은행이 이같은 동산금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범사례다"며 "담보가 부족해서 대출을 받기 힘든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줘서 감사하다"고 호평했다. 실제 기업은행은 올해 10월 말 기준 5770억원 규모의 스마트동산담보대출을 공급했다. 동산채권담보대출 공급액 역시 4000억원을 돌파했다.


◇ 동산담보 필요성 알지만..."부실위험 크고 안전장치 없다" 한목소리

▲서울에 소재한 주요 기업들.(사진=나유라 기자)


이렇듯 주요 시중은행들도 당국 움직임에 맞춰 동산금융을 적극적으로 취급 중인 가운데 동산금융을 ‘무작정’ 확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 입장에서는 담보로 잡은 ‘동산’에 대한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는 것이 현실상 쉽지 않다. 여기에 기업들이 은행 몰래 몰래 해당 자산을 매각하는 등 돌발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대비를 해야한다. 동산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한 기업이 파산하거나 경영난에 빠질 경우 동산 담보를 회수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의 경우 담보 평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기준이 애매모호한 점도 딜레마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동산금융에 대한 당국의 정책적 방향성과 기업들의 수요 등을 고려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동산금융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확대하는 당국의 방향은 이해를 하지만, 무리해서 대출할 경우 이것이 오히려 금융시장에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며 "아직 동산금융 시장이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각 은행권에서는) 부실 규모나 향후 자금회수 가능성 등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혹시 모를 비상상황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해당 기업의 파산 가능성이나 동산가치,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은행에 미치는 영향 등을 모두 따져야 한다"며 "동산만 보고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에는 은행 입장에서 떠안아야할 리스크가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금융권을 대상으로 무조건 동산금융을 확대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일괄담보제 도입 등을 담은 동산·채권담보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법은 지난달 초부터 입법 예고 중이다.

아울러 동산금융에 대한 리스크도 만만치 않은 만큼 시중은행들이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출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같은 경우 기업들을 대상으로 동산금융을 취급할 때 특정 ‘자산’이 아닌 전체 동산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취급한다. 기업들이 보유한 동산을 한번에 담보로 잡고, 매출채권에 따라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조정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미국도 상당히 이름난 많은 금융기관들의 자회사들이 동산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미국 같은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해당 기업의 자산 전체를 담보로 잡고 자금 지원 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금융권의 ‘안전성’과 ‘유연성’ 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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