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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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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문화적 경계 허무는 '맏형' 넥슨의 '이색 실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10.21 11:33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지난18일 개최된 ‘제5회 게임문화포럼’에서 7인조 오케스트라 ‘벨라’ 앙상블이 넥슨의 인기 게임에 등장하는 OST를 연주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정희순·최윤지 기자] 국내 게임산업은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게임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위상은 산업의 성장만큼 높지 않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도입한 후로는 관계당국 및 산업계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사회문화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게임에 ‘음악’ 혹은 ‘미술’이라는 색깔을 입힌 넥슨의 색다른 시도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게임이 하나의 문화이자, 또 다른 영역의 문화와도 폭넓게 융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편집자주]


◇ ‘카트라이더’부터 ‘서든어택’까지…오케스트라도 국악도 "오케이"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지자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드럼 등 일곱가지 악기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합주를 시작했다. 슈베르트도 헨델도 아니었다. 그저 귀에 익은 멜로디.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무대 뒤 화면에는 넥슨의 인기 게임 ‘크레이지아케이드’에 등장하는 캐릭터 ‘배찌’가 물풍선을 맞고 기절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그 곡은 바로 게임 ‘크레이지아케이드’에 등장한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었다.

지난 18일 7인조 오케스트라 ‘벨라(Eella)’ 앙상블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제 5회 게임문화포럼’에서 ‘게임 속 음악세계’를 주제로 한 특별 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넥슨의 또 다른 인기 게임인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던전 앤 파이터’, ‘메이플스토리’, ‘바람의 나라’, ‘서든어택’의 OST들도 함께 연주했다.

사실 넥슨의 인기게임 속 OST가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재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넥슨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난해 5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메이플스토리’의 서비스 15주년을 기념해 ‘게임 속 오케스트라 : 메이플스토리’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올해 5월에도 ‘마비노기’ 서비스 15주년을 기념한 오케스트라 행사를 개최했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아니었지만 ‘국악’으로 게임 음악을 선보이는 색다른 시도를 하기도 했다. 지난 9월 28일 경기도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개최한 국악외전 ‘바람의나라X천애명월도’가 그 예다. 이 음악회에서는 넥슨이 세계 최초로 서보인 온라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바람의 나라’의 OST와 텐센트의 오로라스튜디오에서 개발해 지난해부터 넥슨이 국내서비스를 시작한 ‘천애명월도’의 음원 20여 곡이 연주됐다. 특히 당시 공연은 단순한 연주 감상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게임 콘텐츠를 무대 위로 올려 관람의 재미까지 더했다. ‘다람쥐 몬스터’, ‘빡빡이’ 등 ‘바람의나라’ 속 추억을 공유하기도 하고, ‘천애명월도’ 테마곡에 무용과 보컬 공연까지 더해 더욱 공연의 질을 끌어올렸다.

메이플스토리오케스트라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게임 속 오케스트라 : 메이플스토리’ 공연의 모습.(사진제공=넥슨)

◇ 넥슨이 문화행사 여는 까닭?…대중에 게임 ‘긍정적 효과’ 알린다

넥슨이 이처럼 문화행사를 적극적으로 여는 이유는 오랜 기간 자사의 게임을 사랑해준 유저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크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일부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넥슨 관계자는 "이전에도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행사는 지속적으로 진행을 해왔지만, 최근 자사의 게임 콘텐츠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목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 같은 시도가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대중에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넥슨의 이 같은 시도가 게임산업을 넘어 문화산업 전반에 가져올 ‘긍정적 전이효과’도 기대해볼만 하다. 가령 클래식이나 국악의 경우 그 자체만으로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쉽지 않지만, 여기에 ‘게임’이라는 ‘익숙한’ 코드를 입혔을 때 얻는 시너지 효과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낯선 장르에 대한 대중의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국악외전



◇ ‘넥슨’만 할 수 있는 비결?…‘장수한 인기 IP 많아서’

이런 까닭에 최근에는 넥슨 측에 게임 음원 사용을 문의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넥슨 관계자는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축제나 공연장, 운동회 등에서 넥슨 게임에 들어간 음원을 틀거나 연주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라며 "‘메이플스토리’나 ‘크레이지아케이드’, ‘카트라이더’ 등을 즐겼던 세대가 이제는 아이 부모가 된 경우도 있는 만큼 부모님들도 아이들도 넥슨 게임 음악들을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넥슨의 이 같은 실험은 경제적인 수익으로도 연결될 수 있을까. 넥슨 측은 "아직 수익을 기대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가능성을 아예 닫아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서 넥슨은 앞서 메이플스토리 15주년 기념 음악회, ‘마비노기’ 15주년 음악회, 국악외전 ‘바람의나라X천애명월도’ 등의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유저들을 초청함과 동시에 티켓 판매도 벌였다. 티켓 판매를 통해 얼마의 수익을 거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향후 음반 발매 및 IP 대여 등을 통한 저작권료 수입 등까지 감안하면 수익성도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넥슨의 이 같은 사업은 다른 기업들이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사업모델이라는 목소리도 많다. 넥슨이 이처럼 게임업계 ‘맏형’의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까닭은 결국 ‘장수 IP(지식재산권)의 힘’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넥슨은 지난 7월 18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종로 아트선재센터에서 국내 온라인게임 25주년을 기념한 기획전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를 개최했다. 해당 전시장에는 넥슨을 대표함과 동시에 국내 온라인게임을 대표하는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서든어택’, ‘퀴즈퀴즈’ 등의 게임 콘텐츠들이 미디어아트 형식으로 구현됐다. 넥슨이 여타 다른 게임기업들처럼 단일 IP로만 승부를 보는 기업이었다면 감히 기획할 수 없는 행사였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넥슨은 국내 게임업계에서 인기있는 장수 IP를 다수 보유한 독보적인 기업"이라며 "오랜 기간 온라인에서부터 서비스를 하면서 얻어진 노하우기 때문에 신규 IP 발굴보다는 모바일게임 론칭에 집중하는 요즘 트렌드에서는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게임하다

▲넥슨은 지난 7월 18일부터 9월 1일까지 서울 종로 아트선재센터에서 국내 온라인게임 25주년을 기념한 기획전 ‘게임을 게임하다/invite you...’를 개최했다.(사진제공=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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