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어느 상장회사의 2020년 주주총회 풍경

에너지경제 ekn@ekn.kr 2019.10.21 06: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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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홍보팀장.


얼마 전 상장회사 주주총회와 관련한 상법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다. 그대로 시행되면 내년 상장회사의 주주총회는 어떻게 될까? 2020년 어느 상장회사의 주주총회 준비과정을 상상해 본다.

스튜어드쉽 코드 도입 이후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배당요구에 따라 우리 회사는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급감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주주총회에서 A회사는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를 배당기준일로부터 3월 이내에 열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결산을 위한 연결재무제표 작성준비를 위해 30여개의 해외 현지법인에 재무자료를 요청하고 이를 취합해 다시 회계법인에게 외부감사를 요청했다. 달라진 법규에 따라 주주총회 소집통지시 사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를 주주에게 통지해야 한다. 과거에는 주총 일주일 전까지 감사를 끝내야 했지만 이제는 최소 주총 2주일 전까지는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를 받아야 한다.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에 따라 감사기간은 한정됐고, 감사시간은 늘어나다보니 회계법인은 결산감사에 더 많은 회계사를 투입해야 한다. 그만큼 감사 비용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2020년 주총준비로 정신이 없는 어느 날, A회사가 기관투자자로부터 모 대학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 달라고 주주제안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회사는 모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하고 후보 자격 검증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세금 체납처분을 받은 사실, 부실기업에 근무한 사실, 횡령 및 배임 등 법령상 결격 사유가 있는지 묻고, 사외이사 후보자에 대한 직무수행계획서도 제출을 요구했다. 그런데 받은 답변이 황당하다. 해당 교수는 자신의 직무는 물론, 우리 회사의 사업 자체를 잘 모른다고 하면서, 듣자하니 사외이사의 책임도 크다고 하던데 잘 모르는 분야의 경영에 대해 어떻게 적극적인 의견을 낼 수 있겠냐며 되물었다. 사외이사의 자격이 마치 공직자 후보 검증처럼 까다롭게 자료제출을 요구하는데 누가 사외이사를 하겠냐며 차라리 고사하겠다고 한다.

현재 재임 중인 A 회사의 사외이사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6년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전문가이다. 그러나 이번 주총에서 그 분을 다시 선임할 수 없다. 특정 회사에 6년 이상, 우리 회사를 포함한 계열회사에 9년 이상 재직한 사외이사는 더 이상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감하다.

2020년 주총에서 A회사는 감사도 선임해야 한다. 상법상 감사 선임시 대주주는 지분의 3% 밖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이 많은 A회사는 감사선임을 위한 의결권을 확보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최근 상법시행령에서 예탁결제원을 통해 전자투표시 대체적 인증수단을 확대해 전자투표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방안과 상장회사가 증권회사로부터 개별 주주의 이메일을 제공받아 주주총회의 전자투표 참여 독려를 허용하는 방안이 마련된 만큼 일단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무엇이든 다 해 볼 생각이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했던 예년 전자투표 행사율을 생각해보면 설사 주주들의 이메일을 안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큰 걱정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2020년 주주총회가 2주 앞으로 다가 왔다. 회계법인으로부터 제출받은 감사보고서와 우리 팀에서 만든 사업보고서를 가까스로 기한 내 제출하고 주주총회 소집통지서에 동 내용을 주주들에게 통지했다. 그런데 이틀 후. 아뿔싸! 사업보고서 기재사항에 오류가 발견됐다. 정정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판이다. 주주총회 개최 기한 내 주총 소집통지 공고를 하는데 법에서 정한 2주간의 기간 확보가 불가능하다. 어쩌지?

감사선임을 위한 의결권 확보, 이사후보자에 대한 검증작업, 결산재무제표 작성, 합리적 경영 의사결정을 위한 전문적 사외이사 물색 등 2020년 A 회사의 한 IR 담당자는 주주총회 준비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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