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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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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兆 계약' 사우디로 향하는 푸틴, OPEC+ 감산합의도 논의한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10.14 07:45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우)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면서 지정학적 패권은 물론 글로벌 원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정상회담은 OPEC+(감산에 참여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비(非)OPEC 산유국) 감산에 새로운 합의를 위한 ‘사전 승인’으로 평가되는 만큼 산유국 감산정책과 국제유가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러·사우디 만나 2兆 보따리 푼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회장은 "푸틴 대통령은 14일 사우디를 방문해 20억 달러(약 2조 3810억원) 이상에 달하는 포괄적인 사업 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드미트리예프 회장은 이어 "양국은 OPEC+ 감산 정책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통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만나 경제협력, 무역과 투자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도 별도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RDIF는 2011년 러시아 정부가 고성장 부문에 대한 지분 투자를 위해 설립한 국부 펀드다. 한국의 경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6일 드미트리예프 회장을 만나 한·러 금융협력의 추진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공사(KIND)와 RDIF는 동북아 인프라 협력 강화를 위한 디벨로퍼 협의체 구축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체결하는 계약은 10개 이상으로 구성됐으며 농업, 철도, 비료, 석유 등 다양한 사업에서 긴밀하게 상호 협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특정 계약 한건만 7억 달러(약 8337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RDIF는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와 손잡고 공동으로 새로운 석유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드미트리예프 회장은 "푸틴 대통령의 이번 사우디 방문을 통해 다양한 석유관련 프로젝트들이 논의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아람코와도 적극 협력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는 "아람코에 이어 토탈(Total)과도 협력해 시부르(Sibur, 러시아 최대 석유화확그룹)가 사우디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중동지역을 둘러싼 러시아의 정치적·상업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드미트리예프 회장은 "역사적인 방문"이라며 "러시아가 중동지역의 안정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한층 더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으로 꼽히는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난 2016년부터 손잡고 글로벌 원유 공급량 축소했다. 러시아는 사우디와 손잡고 원유에 이어 다양한 산업으로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복안이다.

실제 세계 최대 소맥(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소맥시장 점유율을 넓히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는 유럽연합(EU)미국이 소맥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사우디는 흑해를 거쳐 들어오는 러시아산 소맥에 대한 수입규제를 완화하며 기존 소맥시장 점유율에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그동안 러시아산 소맥은 규정에 맞지 않아 사우디로 수출될 수 없었으나 최근 규제완화로 인해 새로운 판로가 러시아에게 열린 셈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이러한 변화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며 "사우디는 미국을 중요한 동맹국으로 여기지만 러시아와도 가까워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러시아의 한 관리자는 "양국이 OPEC+ 감산 정책을 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맥 관련 얘기도 나오게 됐다"고 전했다.

시장 패권에 변화가 따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 유럽 트레이더는 "(사우디의 규제완화는) 게임체인저 수준의 변화다"며 "독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의 국가들은 알제리아 등으로 수출처를 돌려야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밖에 사우디는 러시아와 총 100억 달러(약 11조 8920억원)에 달하는 25건의 별도 계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예프 회장은 "우리는 안정적인 원유시장, 중동지역의 안정화와 대규모 공동투자에 관심이 있고 이를 위해 사우디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사우디와의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감산정책 변화의 ‘트리거’로 꼽히는 러·사우디 정상회담…12월 산유국 정례회의 주목

▲지난 3개월간 WTI 가격추이


이렇듯 사우디와 러시아의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이번 회담을 계기로 OPEC+의 감산 정책에도 변화가 따를지 관심이 집중된다. 그간 산유국 감산합의가 공식적으로 선언되기 전에 두 정상이 먼저 만나 글로벌 원유공급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OPEC+는 지난해 12월 7일 오스트리아 빈에 열린 회의에서 하루 120만 배럴 산유량 감산에 합의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산유국들의 합의에 앞서 일주일 전 아르헨티나에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갖고 산유량 조절협정을 연장하기로 먼저 합의했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회담에서도 12월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산유국 정례회의를 앞두고 추가 감산에 대한 비공식적인 합의가 먼저 나올 수 있다. 현재 OPEC+는 내년 3월까지 하루 120만 배럴 감산을 이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앞으로 산유국의 감산 합의에 적극 동참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든든한 ‘우군’으로 등극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유 공급량을 조절해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이달 초 러시아에서 펼쳐진 에너지 컨퍼런스에서 푸틴 대통령은 OPEC+ 감산에 대해 "러시아는 여전히 OPEC+ 합의의 책임 당사국이다"며 "이러한 협력 공동체는 향후 꾸준히 지속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오일프라이스닷컴은 "그간 푸틴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만남은 OPEC+ 감산정책의 새로운 합의를 위한 사전 승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최근 OPEC이 최근 3개월 연속 글로벌 원유수요 전망을 하향 조정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미국 CNBC 등의 외신 따르면 최근 OPEC은 올해 남은 기간의 수요를 하루 98만 배럴로 조정했다. 이는 지난 9월의 전망치보다 4만 배럴 감소한 수치다. OPEC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부진한 경제지표가 수요를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OPEC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며 2020년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3.1%에서 3%로 낮췄다. 다만 OPEC은 내년 글로벌 원유 수요가 하루 108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는 미중 무역전쟁, 글로벌 경제성장의 둔화, 미국 산유량 증가 등의 이유를 꼽으면서 국제유가가 반등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석유거래업체인 비톨(Vitol), 트라피규라(Trafigura), 군보르(Gunvor)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런던에서 열린 ‘오일앤머니(Oil & Money) 컨퍼런스’에 참석해 브렌트유가 앞으로 1년 동안 50달러 박스권에 머무를 것으로 예측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도 최근 발표한 ‘10월 단기 에너지 전망보고서’(STEO, Short Term Energy Outlook)를 통해 평균 브렌트유 스팟가격이 올해 4분기 배럴당 59달러에서 2020년 2분기까지 57달러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사우디 석유시설 피습 사태 이후 원유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건 사실이나 글로벌 경기와 원유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를 억누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당분간 국제유가에서 사우디 원유시설 피습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항에서 약 100km 떨어진 바다에서 이란 유조선 1척이 폭발하면서 국제유가가 전일 대비 2.2% 상승했지만, 이것이 본격적인 유가 상승세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유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OPEC+ 산유국들이 오는 12월 회의에서 감산안을 연장하거나 규모를 늘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오일앤머니 컨퍼런스에 참석한 모함마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간) 2020년 원유시장의 수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 12월 산유국 정례회의에서 추가 감산 등 모든 옵션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바르킨도 사무총장은 "글로벌 경제와 중국과 무역분쟁, 브렉시트 문제가 원유 수요를 압박하고 있다"면서 "12월 회의에서 강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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