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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중인 전기차(사진=연합) |
전 세계에서 전기자동차가 온실가스를 저감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는 가운데 ‘노르웨이’에서 전기차 대중화에 대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노르웨이는 최근에 판매된 2대 중 1대가 전기차일 정도로 전기차 활성화에 가장 앞장선 나라로 꼽힌다. 정부가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전기차 판매를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같은 인센티브로 인해 재정적자가 악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르웨이 정부가 오는 2025년부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승용차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는 목표를 세운 점을 고려하면 향후 전기차 대중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정부 지출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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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인사이드이브이스 |
◇ 현실화 되가는 노르웨이의 전기차 대중화
전기차 전문매체 인사이드이브이스에 따르면 지난 7월 노르웨이에서 새로 등록된 자동차 가운데 48.2%(4427대)는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포함)로 집계됐다.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8.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을 자랑하는 중국의 전기차 판매비중은 4.6%에 불과했다. 중국의 경우 지난 6월 전체 자동차 판매량 가운데 전기차 비중이 8.5%로 연중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절대적인 전기차 판매량을 비교하면 중국이 훨씬 크지만, 신차 대비 전기차 비중으로 치면 노르웨이가가 중국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풀이된다.
노르웨이는 2016년부터 전기차 최대 판매국가의 지위로 등극하며 지금까지 유럽의 전기차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진투자증권 한병화 연구원은 "역설적으로 연간 자동차 판매량이 15만∼16만대에 불과한 노르웨이의 선전은 전기차 시장의 초라한 출발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판매된 자동차 3대 가운데 1대는 전기차였다. 올해 3월과 6월에는 전체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이 각각 69.5%, 57.8%에 달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전기차는 테슬라 모델3다. 올해 상반기에는 노르웨이에서 테슬라의 모델 3가 약 1만560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밝혔듯이 규모의 측면에서는 중국 전기차 시장이 노르웨이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노르웨이의 전기차 보급률이다. 주행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는 그간 전 세계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거론됐지만, 비싼 가격, 주행거리, 충전소의 부재, 소비자 인식 등이 전기차 대중화의 난관으로 꼽혀왔다. 심지어 노르웨이는 북유럽 지역에 위치한 만큼 겨울이 길기 때문에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기후여건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좋지 않은 편이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기온이 낮을수록 배터리 방전율이 높아 전기차 주행거리가 일시적으로 최대 40%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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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크로네) |
◇전기차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큰 당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에서 전기차가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노르웨이 정부가 전기차에 대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하면 각종 세금을 모두 면제해준다. 반면 내연기관차를 구매하면 부가가치세(VAT) 25%를 비롯해 이산화탄소 배출세, 무게세(차량 무게에 따른 세금), 질소산화물 배출세, 유류세(휘발류의 경우 리터당 최대 5.25크로네(약 698원)) 등이 부과된다.
여기에 전기차를 운행할 경우 통행료, 공영주차장 비용 등이 최대 50% 할인되며 버스전용차로 이용 가능, 전기차 충전소 무료이용, 법인리스 세율 할인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통행료의 경우 노르웨이에서 전기차는 지난 1997년부터 작년까지 요금을 모두 면제했고, 올해부터는 최대 50%를 할인받고 있다. 전기차 소유자는 공영주차장도 2017년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지난해부터 주차장 요금에 50% 할인 혜택을 받았다.
다만 PHEV도 전기모터와 석유엔진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는 점에서 배터리 전기차(BEV) 대비 인센티브가 적은 편이다. 이에 노르웨이에서 PHEV 판매량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노르웨이에서 판매된 PHEV는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했다.
노르웨이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비교적 잘 갖춰졌다. 현재 노르웨이에서는 1만개 이상의 공영 고속 충전소가 배치되어 1500대 이상의 전기차가 동시에 충전할 수 있다. 또한 노르웨이 정부는 모든 대형 차로에서 50km마다 최소 두 개의 고속충전소가 설치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8000대가 동시에 충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혜택들을 종합하면 노르웨이에서 내연기관차를 운행·유지하는 비용이 전기차 대비 최대 75% 비싼 것으로 추정된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의 나와르 알사디 연구원은 "(모든 혜택들을 다 감안하면) 노르웨이에서 내연기관차를 구매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다"고 말했다.
◇ 재정악화 초래하는 ‘퍼주기식 인센티브’…전기차 1대당 거의 1000만원
이렇듯 전기차에 대한 정부의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노르웨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보급률을 기록 중인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퍼주기식 인센티브’가 국가 재정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알사디 연구원은 "노르웨이 정부는 전기차 전환이 공공의 이익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러한 인센티브는 노르웨이의 재정상황에 엄청난 압박을 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전기차 대중화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대중화는 조세의 수입이 없는 반면 인센티브는 세금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상황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의 앤더스 스콘호프트와 노르웨이 통계청의 비야르트 홀츠마르크는 과거 연구를 통해 노르웨이 정부는 전기차(BEV) 한대당 연간 약 8100달러(약 985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수치에는 무료충전소와 버스전용차로 이용에 대한 잠재적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작년 말까지 약 20만 대의 전기차가 등록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르웨이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 규모는 연간 16억 달러(약 1조945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르웨이의 전기차 대중화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부담하는 전기차 인센티브는 올해 6월 말 기준 19억 5000만 달러(약 2조 3715억원)까지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알사디 연구원은 "현재 노르웨이에서 총 270만 대 가량의 개인 자가용이 등록돼 있는데, 이를 모두 현재 전기차 인센티브 제도에 적용할 경우 비용이 연간 220억 달러(약 26조 7586억원)까지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이는 노르웨이 정부가 지급하는 퇴직연금 다음으로 비용 부담이 높은 편에 속한다. 노르웨이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23.1억 코로네(약 2조 9723억원)가 퇴직연금 관련 비용으로 빠져나갔다.
노르웨이 정부가 전기차에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석유·천연가스를 보유한 자원부국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세계에서 12번째로 많은 333억달러(약 39조 8000억원)어치 원유를 수출했다.
하지만 문제는 원유수출 수입을 적용해도 노르웨이는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지출한 금액은 총 1조3030억 크로네(약 173조원), 총 수입은 1조 476억 크로네(약 139조원,석유사업 제외)로 집계돼 적자비율이 20%에 달했다. 여기에 석유사업 부문에서 발생된 순 현금흐름액은 1830억 크로네(약 24조원)인데, 이를 반영해도 적자비율은 7%에 달한다.
특히 전기차 대중화로 인해 내연기관차 관련 세입이 지난 2013년 507억 크로네(약 6조 7562억원)에서 지난해 248억 크로네(약 3조 3048억원)로 무려 절반 이상 급감했다. 202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정부의 지침으로 인해 전기차 대중화가 더욱 가시화될 경우 수입 대비 지출 폭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알사디 연구원은 "노르웨이의 전기차 인센티브 제도는 기타 국가들이 참고하면 절대 안되는 모델이다"며 "2021년 이후 전기차 인센티브 제도가 조정되면 과거 덴마크처럼 전기차 판매율이 폭락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7년 보조금 제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덴마크의 경우 같은 해 1분기 전기차 판매량이 무려 60% 급감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현행 전기차 인센티브를 2021년까지 적용할 계획이다.
알사디 연구원은 이어 "전기차 관련 기술과 국가 재정의 한계점을 감안하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도 동시에 자동차의 판도를 바꾼다는 목표는 이뤄질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