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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중인 전기차(사진=연합) |
앞으로 3년 이내 유럽 소비자들이 이용 가능한 전기자동차 모델 수가 기존보다 세 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의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어떤 행보를 펼칠지 관심이 쏠린다.
유럽교통환경연합(T&E)은 최근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에서 발표한 자료를 인용, 유럽연합(EU) 지역에서 조사된 전기차 모델 수(배터리 전기차(B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수소연료전기차(FCEV) 포함)는 지난해 약 60종에 불과했지만 2021년까지 214종, 그리고 2025년까지 무려 333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최근까지만 해도 전기차는 대부분 얼리어답터들의 소유물이었지만 미래의 EU 자동차시장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은 환경규제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만큼 전기차 역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U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배기가스 관련 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유럽 각국에서도 경쟁적으로 개별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EU는 오는 2021년까지 전체 신차 CO2 배출량은 km당 95g이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 데 이어 오는 2030년까지 승용차 CO2 배출량을 2021년보다 37.5% 감축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에 따라 IHS 마킷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유럽에서의 전기차 생산량이 6배 가량 증가해 총 400만 대가 생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전체 자동차 생산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스웨덴의 볼보 자동차는 올해부터 경유나 휘발유 등을 사용하는 내연 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만 생산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회사는 총 5종의 순수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독일의 폭스바겐, BMW, 다임러와 프랑스의 PSA(푸조시트로엥) 그룹,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 연합)도 전기차 생산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으며, 피아트크라이슬러, 포드자동차, 테슬라도 2025년까지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T&E에 따르면 현재 전기차의 주요 생산 공장들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쪽에 집중돼 있지만 향후 슬로바키아, 체코, 헝가리와 같은 동유럽권 지역까지도 확산될 전망이다.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가능성에 따라 전기차 생산계획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 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루시앙 매튜 T&E 교통 및 전기차 부문 애널리스트는 "EU의 환경규제 덕분에 다양하고 주행거리가 길고 저렴한 전기차 모델들이 유럽 시장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며 "내연기관차의 몰락은 점점 더 현실화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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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兆’ LG화학·SK이노베이션 VS ‘1兆’ 삼성SDI…국내 3社의 향후 입지는
이렇듯 EU의 내연 기관차에 대한 규제 강화로 전기차 대중화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현재 유럽 전기차 배터리시장 공략에 총력을 펼치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입지가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을 받고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배터리 공장에만 총 2조원을 투자하며 공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삼성SDI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행보를 펼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LG화학은 지난 2017년 폴란드 남서부 브로츠와프 공장에 6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어 이듬해 양산에 돌입했고, 작년 말에는 증설을 통해 생산규모를 15GWh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LG화학은 유럽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규모를 2021~2022년까지 연 70GWh 규모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유럽내 배터리 생산규모인 15GWh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또한 폴란드에서 제2 공장을 신설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LG화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맞이할 유럽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제2공장 후보지로 폴란드 우츠와 오폴레를 놓고 최종 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다. 구체적인 투자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약 45억 즈워티(1조39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유럽 첫 생산기지인 폴란드 보르츠와프 공장의 투자액인 약 4000억원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현지 정부와 업계에서는 LG화학이 오폴레에 투자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주요 공업 지대로 꼽히는 오폴레는 제1공장이 위치한 브로츠와프와의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차로 약 1시간 거리로 ‘카토비체-브로츠와프-크라쿠프-바르샤바’를 연결하는 철도가 이곳을 통과한다. 아우디와 BMW 등 주요 고객사들의 공장과도 가까워 고객사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김종현 LG화학 전지사업부문장(사장)은 최근 폴란드 현지법인 행사에서 "향후 2~3년 내 유럽에서의 생산능력을 70GWh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70GWh는 연 100만대 이상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 SK이노베이션은 약 8400억원을 투자해 7.5GWh 규모의 헝가리 코마롬 공장을 지난해 3월 착공했다. 올 하반기 완공 후 설비 안정화. 시운전, 제품인증 등을 거쳐 내년 초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 헝가리에 약 9400억원을 추가 투자해 유럽 제2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추가 투자를 결정한 유럽 제2 공장은 현재 제1 공장을 건설 중인 헝가리 코마롬 시에 위치한 건설부지 내에 연면적 약 11만 5700㎡(3만 5000평) 규모로 건설된다.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해 코마롬시 현지에 확보한 축구장 약 60개 크기의 부지 43만㎡(약 13만 평) 중 일부를 활용하는 것이다. 2공장이 2022년 양산에 들어가면 SK이노베이션은 유럽 내 약 17GWh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나아가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과 전기차 배터리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양사는 기본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 합의를 끝낸 상태다. 현재 출자비율과 건설장소, 완성시기 등 세부 내용 등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폭스바겐과의 합작법인 계약이 마무리되면 SK이노베이션과 폭스바겐이 출자한 합작법인은 헝가리에 16GWh 규모의 공장을 짓게 된다. 이를 모두 합치면 코마롬 단지의 총 생산 규모는 무려 33.5GWh에 이른다. 이는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테슬라와 파나소닉의 합작공장 기가팩토리(35GWh)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업계 2위’로 꼽히는 삼성SDI은 LG화학, SK이노베이션에 비해 전기차 배터리에 다소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SDI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신규 시설을 구축한 이력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LG화학은 폴란드 공장 증설에 1조3200억원을 투입했고 SK이노베이션 역시 작년 헝가리 코마롬에 공장을 신설하면서 8400억원을 투자했다.
이를 의식한 듯 삼성SDI는 올해 2월 헝가리에 제2 전기차 배터리 공장구축을 위해 5600억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앞서 지난 2016년 헝가리에 약 400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착공한 바 있다. 이 공장은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에 돌입했으며, 연간 6만대 가량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 투자금 4000억원을 더하면 삼성SDI는 헝가리 배터리 공장에만 1조원 가량의 금액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약 2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밝힌 LG화학, SK이노베이션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이다.
이에 따라 업계 2위라는 삼성SDI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5월 글로벌 삼성SDI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하는데 그쳤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같은 기간 각각 100.8%, 294.4% 증가했다. 세계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중국 CATL 사용량은 110.4%, 2위인 일본 파나소닉은 83.8% 늘었다. 삼성SDI만 성장세가 눈에 띄게 뒤쳐지면서 점유율은 전년 동기 4.9%에서 올해 2.9%로, 기존 6위에서 7위로 하락했다. 국내 업체로 한정해서 보면 LG화학이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삼성SDI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과 다르게 전반적으로 투자여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업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 전기차 배터리에 투자를 하지만 SDI의 전자재료 분야는 규모가 작은 편이라 대규모 투자금을 투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다.
또한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신규 시설 구축이 없었던 배경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구속 수감되었기 때문에 삼성그룹 전체의 신규투자가 멈췄다는 의견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송재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