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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공 정책자금은 눈먼 돈?...'자격미달' 기업들에 6천억 지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7.12 11:10

감사원 감사…평가점수 잘못 산출·부채비율 초과기업 지원대상 선정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지난해 4조4천억원의 정책자금을 집행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자금배분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중진공 홈페이지 캡처)



[에너지경제신문 성기노 기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은 정책자금 융자사업을 통해 기술, 사업성이 우수하지만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운전 및 시설자금 등을 저리로 융자하는 곳이다. 융자기간은 최대 운전자금 6년(3년 거치), 시설자금 10년(4년 거치)이고 한도는 최대 60억원(지방기업 70억원)이다. 특히 올해는 혁신 중소벤처기업의 스케일업 도약 위한 스케일업금융, 고용 창출 우수기업 지원을 위한 일자리창출촉진자금 등을 신설해 중소벤처기업을 의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4조4천150억원의 정책자금을 집행했을 정도로 상당히 규모가 큰 공단이다.

그런데 중진공의 지원기업 선정 과정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나타나 자금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 업체의 평가점수를 잘못 산출해 사실상 ‘등급 미달’인 기업들이 지원받는가 하면 부채비율 초과와 기술력 부족으로 융자금 회수가 우려되는 기업들이 지원대상에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최근 3년여간 정책자금 6천억원가량이 ‘자격 미달’ 기업에 흘러 들어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중진공 기관운영감사 결과를 11일 공개했다. 중진공은 기술·사업성 평가결과와 신용위험 평가결과를 종합해 기업의 평가등급을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자금 지원을 결정한다.

그런데 감사원이 2017∼2018년 정책자금 융자를 받은 중소기업의 기술·사업성 평가항목 28개 중 고용실적·수출실적 등 계량화된 정보가 있는 9개 항목에 대한 적정성을 점검한 결과, 1만6천34개 기업의 평가점수가 잘못 산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예를 들어 중진공 광주지역본부는 지난해 4월 A 회사의 ‘고용창출’ 항목을 평가하면서 이 회사의 고용인원이 전년보다 3명 감소(37→34명)해 ‘보통 이하’로 평가해야 하는데 이와 달리 최고 등급인 ‘우수’로 평가했다.

감사원이 평가등급을 재산출한 결과, A 회사를 포함한 2천574개 업체가 지원대상 평가등급에 미치지 않는데도 총 3천227억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9개 업체는 지원대상 등급인데도 등급 미달로 평가받아 정책자금 총 22억원을 지원받지 못했다. 또한 부채비율 초과기업에는 정책자금을 지원해선 안 되는데도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기술·사업성이 우수하지 않은 979개의 부채비율 초과기업에 정책자금 2천714억원이 지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채비율 초과기업이더라도 기술·사업성이 우수하고 융자금 회수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되면 예외적으로 정책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부채비율 초과와 기술력 부족으로 이런 예외조항을 적용할 수 없는 기업들에도 예외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플라스틱 필름 제조업체인 B 회사의 경우 부채비율이 716.6%로 플라스틱 제품 제조 업종의 제한 부채비율은 432.6%를 초과하고, 기술·사업성 등급도 기준 미달인데도 5억원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았다.

또 감사원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신용위험 평가결과를 검증한 결과, 신용위험 평가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65개 업체의 신용위험 평가등급이 적정 등급보다 높게 계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65개 업체 중 15개 기업은 신용위험 평가등급이 낮아 정책자금 지원이 불가능한데도 총 59억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담보대출시스템을 부실하게 운영해 담보가치를 시중 은행보다 과다하게 인정한 뒤 대출금액을 결정하고 대출금액을 결정해 사고 발생 후 대출금 회수를 저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중은행의 담보대출 평균 회수금액은 대출금액의 70%이나 중진공은 52%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 12개 기관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


한편 지난 5년간 중소기업정책자금 부실률이 2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악화로 수입이 줄어드는 반면 인건비나 원자재 등 비용은 늘면서 정책자금을 빌린 기업들의 상환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더구나 지난 2년간 30% 가까이 최저임금이 오르며 영세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만큼 정책자금 부실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근 공개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최근 5년간 정책자금 융자 부실률 현황’에 따르면 중기정책자금 전체 부실률은 2014년 2.1%에서 2017년 3.6%, 지난해에는 3.8%까지 치솟아 5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중기정책자금은 올해도 추경 포함 약 4조780억원이 잡혀 있으며 중진공이 직접 운용하고 있다. 경영환경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기업을 돕기 위해 운용되지만 부실률이 짧은 시간 내 2배나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불경기 지속에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가중됐고 이들의 상환능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부실률이 오르면서 중진공이 더욱 보수적으로 자금을 집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미 초기 창업기업들 사이에서는 "불경기와 연대보증 폐지 등의 영향으로 중진공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현금 흐름을 깐깐하게 따지기 시작했다"는 불만이 나온다. 여기에다 자금 상환이 2~3년 시차를 두고 이뤄지는 만큼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진행된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내년 이후 가시화되면 부실률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렇게 정책자금 부실률이 높아진 상황에서, 감사원의 감사 결과 중진공의 자금집행 기준마저도 제멋대로 된 것이 드러나 중소기업에 대한 중진공의 정책자금 배분이 더욱 보수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자금이 꼭 필요한 중소기업에 단비같은 정책자금이 제대로 흘러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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