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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적용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시간당 8천590원으로 결정됐다.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 2020년 적용 최저임금안 투표 결과가 보여지고 있다. 사용자안 8천590원이 15표를 얻어 채택됐다. (사진=연합) |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590원으로 올해보다 2.9% 오르는데 그쳐 노동계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물거품된 것은 물론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핵심 공약 역시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 8590원으로 의결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8350원)보다 240원(2.9%) 오른 금액이다.
사용자안(8590원)과 근로자안(8880원)이 표결에 부쳐져 사용자안 15표, 근로자안 11표, 기권 1표로 사용자안이 채택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전날 오후 4시 30분부터 13시간에 걸친 마라톤 심의 끝에 이날 새벽 5시 30분께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한 2018년 최저임금(7530원)은 인상률이 16.4%였고 올해 최저임금은 인상률이 10.9%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의결한 2010년 적용 최저임금(2.6%)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고, 박근혜 정부 시절 최저임금 인상률에도 크게 못 미친다. 박근혜 정부 임기에 해당하는 2013∼2016년 최저임금위원회는 해마다 7∼8%의 비율로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이는 정부 여당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론을 현실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한다는 현 정부의 공약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도 최저임금 1만원의 실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적용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려면 내년과 2021년 심의에서 각각 7.9%의 인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분위기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은 다음달 8일 고용노동부의 고시로 확정되기까지 노사 단체의 이의 제기 등 일부 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변이 없는 한 최저임금위원회 의결 그대로 확정된다.
정부가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떨어뜨린 데 이어 속도 조절까지 현실화한 만큼, 노동계에서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 1만원은 2017년 대선 당시 모든 후보가 내건 공약이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저임금 노동에 기반한 후진적인 성장 구조를 더는 유지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는 의욕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나섰으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경영계는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 적용 최저임금을 16.4% 인상한 직후부터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지난해 월별 취업자 증가 폭을 포함한 고용 지표가 악화되면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확산됐고, 속도 조절론에도 힘이 실렸다.
정부는 경영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노동계의 반대 속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떨어뜨렸지만, 속도 조절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홍영표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정부 여당 핵심 인사들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최저임금 의결 직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공약을 실현할 수 없음을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둔 지난 5월에는 KBS 대담에서 "그때 공약이 2020년까지 1만원이었다고 해서 그 공약에 얽매여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돼야 한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속도 조절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나타나는 일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경영난 같은 부작용은 재벌 중심 경제구조의 개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있다고 움츠러들 게 아니라 보다 과감하고 전면적인 개혁으로 부작용을 해소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현 정부의 공약들이 줄줄이 희석되거나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최저임금은 모든 사업주가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로, 국내에서는 1988년부터 시행됐다. 최저임금 수준은 노동자 생계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