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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팰리세이드 '대박'...현대차 전시장 웃어? 울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5.14 16:20

1~4월 2만5000여대 판매, 물량부족에 대기만 4만대
'증산 절실' 불구 노조 발목...지친 고객들 계약 취소

▲서울 서초구의 한 현대차 전시장에 팰리세이드가 세워져 있다.


"차는 잘 팔리는데 너무 답답해요. (차가 금방 출고된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서 고객들의 발길을 잡고 싶은 심정이에요."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 현대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의 푸념이다. 팰리세이드를 보러 전시장에 온 사람들은 많지만 막상 계약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대차가 내놓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말 출시 이후 올해 1~4월에만 2만 5000여대가 팔려 나갔다. 쏘나타(2만 5093대), 싼타페(2만 9014대) 등 주력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누적 계약 건수는 6만 5000여대에 이른다. 대기 물량만 4만여대에 달한다.


◇ 누적계약 6만5000대...대기물량만 4만대

14일 서울 시내에 있는 지점·대리점들을 둘러보니 영업 일선 분위기는 ‘대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반응이 사뭇 달랐다. ‘대박’을 냈다는 팰리세이드의 온기가 전시장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초구의 한 지점 영업사원은 "지금 계약하시면 내년 1월에 받을 수 있다는 게 공식적인 답변"이라고 말했다. 차를 둘러보고 계약서까지 썼던 분 중에 출고 대기가 너무 길어 취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부연했다.

"팰리세이드를 보러 왔다 싼타페를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불만일 경우 더 크거나 좋은 차를 찾아 떠나죠. 대부분 수입차 등 다른 브랜드로 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영업사원은 한숨을 쉬며 이같이 덧붙였다.

강남구에 있는 대리점에서는 색다른 제안도 받았다. 인기 없는 색상·트림의 팰리세이드를 선택하면 최대한 빨리 출고를 돕겠다는 게 골자다. 전산에 가끔씩 ‘남는 차량’이 뜨는데, 이를 계약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 곳 영업사원은 "물량이 워낙 달리다보니 본사 차원에서 전시장 내 전시차조차 빼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팰리세이드 구매를 원하시면 4륜구동, 옵션 등을 빼고 가솔린 모델로 선택하시라"고 조언했다. 자칫 고객이 차량 인도 이후 품질에 불만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긴 대기 기간에 계약자들 반응은 '냉랭'

시장에서는 팰리세이드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가성비’를 꼽고 있다. 넓은 공간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추면서도 가격이 3475만~4408만 원으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옵션을 넣어도 5000만 원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하위 모델인 싼타페의 최고가격이 4295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매력 포인트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물량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10년째 현대차에 몸담고 있다는 한 영업사원은 "물량만 받쳐준다면 팰리세이드가 그랜저나 싼타페보다 더 많이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며 "미국 수출까지 시작하면 고객 인도가 더욱 늦어질 텐데, 영업점 입장에서는 울화통만 터진다"고 하소연했다.

현대차는 앞서 팰리세이드가 인기를 끌자 지난달 월 생산량을 40% 가량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월간 약 8640여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4만대가 넘는 계약 물량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현대차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이 회사 노조다. 노사간 단협 내용에 따라 신차 출시, 작업라인 변화 등을 위해서는 노조의 ‘허락’이 필요하다.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데 이를 꾸준히 활용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사측이 팰리세이드가 만들어지는 울산 4공장 외 다른 공장에서도 이를 생산하자고 제안했지만, 노조가 거절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4공장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전체 조합원들은 업무량이 많아지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을 꺼려한다고 전해진다. 팰리세이드가 인기몰이에 성공했음에도 현대차 전시장에서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생산라인 변동을 위해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단협 내용을 변경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크게 뒤쳐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단협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해외 공장 관계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서초구 한 전시장에서 팰리세이드를 둘러보던 고객은 이렇게 일침했다. "차는 참 좋아 보이네요. 그런데 1년 가까이 기다려서 이 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나요? 그동안 다른 신차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요."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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