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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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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그 깊은 곳에’ 한국가곡이 들어왔다...한국가곡연구회 정기연주회 성황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5.03 10:54

정선화·이윤숙·김동주·이정원·오동국 등 정상의 성악가 11명 ‘4월의 감동’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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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정선화와 테너 이정원이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를 듀엣으로 부르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민병무 기자] 소프라노 정선화와 테너 이정원이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이안삼 곡)’를 듀엣으로 부르자, 객석을 메운 관객의 가슴 깊은 곳에 한국가곡 사랑이 샘솟았다. 원래의 빠르기보다 조금 느리게 편곡된 노래는 신선했다. 앞 부분을 한소절씩 나눠 부른 뒤, "아∼오늘도 그날처럼 비는 내리고 / 내 눈물 빗물되어 / 강물되어 흐르네" 뒷 부분 클라이막스에서 두 목소리가 만나 절정으로 치고 올라갔다. 짜릿한 감동이 온몸을 감쌌다. 한국가곡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입에서 저절로 브라보 브라바 함성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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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곡연구회 제52회 정기연주회 출연자들이 앙코르 곡으로 ‘아리랑’을 합창하고 있다.

한국가곡연구회 제52회 정기연주회가 2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렸다. 정선화와 이정원을 비롯해 정상의 성악가 11명이 아름다운 선율과 시적 노랫말이 빛나는 명품노래 22곡을 연주했다. 한국가곡연구회는 그동안 한국 대표가곡뿐만 아니라 최근에 나온 신상가곡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연주회를 꾸려왔다. 이번 콘서트는 내년 한국가곡 탄생 100주년을 미리 축하하기 위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 노래로 프로그램을 짰다. ‘한국가곡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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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이윤숙이 ‘월영교의 사랑’을 부르고 있다.

소프라노 이윤숙은 ‘매화연가(황여정 시)’와 ‘월영교의 사랑(서영순 시)’를 불렀다. 이 두 곡을 만든 이안삼 작곡가는 현재 1년 넘게 투병중이다. 이안삼 작곡가가 공식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이 바로 지난해 4월에 있었던 이윤숙의 독창회였다. 이윤숙은 어서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 예전처럼 다시 왕성한 활동을 바라는 소망을 담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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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정선화가 ‘그리운 사람아’를 부르고 있다.

정선화는 ‘그리운 사람아(임승천 시·박경규 곡)’를 선사했다. 그는 한국가곡연구회 회장을 맡아 우리 가곡 확산과 신예 연주자 발굴 등에 앞장 서고 있다. "햇살 가득 행복한 날 강바람 불어오면 / 내게 오라 그리운 사람아 그리운 내 사람아" 정선화가 그토록 애태워 부르는 사람은 바로 한국가곡을 사랑하는 팬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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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송정아가 ‘너를 위하여’를 부르고 있다.

"나의 밤 기도는 길고 / 한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 가만히 눈 뜨는 건 믿 을수 없을 만치의 축원 /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소프라노 송정아는 ‘너를 위하여(김남조 시·홍사라 곡)’에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진달래꽃(김소월 시·이홍석 곡)’에서는 안으로 안으로 슬픔을 참아내는 여인의 모습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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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하성림이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부르고 있다.

소프라노 하성림은 세월호 추모곡으로 사용되기도 한 ‘내 영혼 바람되어(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 시·김효근 역시·곡)’를 연주했다. 떠나간 사람이 오히려 남아있는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는 내용이라 울컥했다. ‘별을 캐는 밤(심응문 시·정애련 곡)’에서는 호미 하나 들고 저 하늘의 별을 따는 연인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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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송현지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부르고 있다.

1960∼1970년대 가정집 마루와 동네 가게에 붙어있던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김효근 역시·곡)’를 소프라노 송현미가 멋지게 소화했다. 그의 목소리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응원가였다. ‘새타령(박희경 시·조두남 곡)’에서는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움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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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김수현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부르고 있다.

소프라노 김수현은 이별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돋보이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서정주 시·김주원 곡)’를 담백하게 노래해 공감을 받았다. 읊조리 듯 불러야 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젊은 감각이 첨가돼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임긍수 곡)’에서는 연분홍 꽃다발 한아름 안고 오는 봄의 풍경을 싱그러운 수채화 스타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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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소프라노 김동주가 ‘오라’를 부르고 있다.

‘오라(현제명 시·곡)’는 그동안 남성 가수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심플한 시어는 아무래도 와일드함을 드러나게 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메조소프라노 김동주가 여성 버전으로 부른 ‘오라’는 색다른 감칠맛을 느끼게 해줬다. 노래 중간 잠시 멈춤의 순간은 여운이 더 극대화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발랄하게 노래한 ‘꽃구름 속에(박두진 시·이흥렬 곡)’서는 복사꽃과 살구꽃이 튀밥 터지듯 꽃망울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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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정원이 ‘내 맘의 강물‘을 부르고 있다.

테너 이정원은 한창 물이 올랐다. 무슨 곡이든 그의 입을 통하면 최고의 노래가 됐다. ‘내 맘의 강물(이수인 시·곡)’에서는 삶을 관조하는 중후한 매력을 제대로 보여줬고, ‘산촌(이광석 시·조두남 곡)’에서는 전원생활의 그리움을 흥겹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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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효섭이 ‘마중‘을 부르고 있다.

테너 이효섭은 요즘 2030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마중(허림 시·윤학준 곡)’와 ‘연(김동현 시·이원주 곡)’을 선보였다. "사랑이 너무 멀어 /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이슬된 서러움에 실어 나를 데려가 주오 / 닿을 듯한 그대의 품으로" 심쿵 노랫말이 두고두고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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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오동국이 ‘오 나의 고향이여’를 부르고 있다.

바리톤 오동국은 늘 유쾌하다. 항상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오 나의 고향이여(전경애 시·이안삼 곡)’에서 달궈진 그의 흥은, 판소리 ‘홍보가’에 나오는 중 ‘화초장 타령(전인평 곡)’에서 폭발했다. 화초장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천장 구들장 방장 모기장 구장 개장 도장 우장 땟장 송장 고추장 된장"을 마구 외치는 부분에서 폭소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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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김효석이 ‘산아’를 부르고 있다.

바리톤 김효석은 ‘산아(신홍철 시·신동수 곡)’와 한국민요 ‘거문도 뱃노래(백경환 곡)’를 연주했다. 특히 ‘거문도 뱃노래’ 마지막 부분에서 "디야∼" 추임새를 넣어 눈길을 사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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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순 시인이 ‘한국가곡연구회 제52회 정기연주회’ 사회를 맡아 성악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날 피아노 반주는 정영하와 문인영이 번갈아 맡아 성악가들과 환상 하모니를 연출했다. 마이크를 잡은 서영순 시인의 매끄러운 진행도 일품이었다. 한국가곡의 부흥을 기원하는 자리인 만큼 박경규·김효근·홍사라 작곡가도 참석했다. 또한 한상완·황여정 시인과 클래식 애호가인 이준일 전 중앙대 학장·정세욱 전 명지대 부총장 등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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