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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기와 석유를 펑펑 쓸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국·EU에서 인증을 받은 한국형 원자로(APR1400)와 세계 6위의 정유산업을 핵심으로 하는 성공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일궈낸 기적이다. 그런 에너지 정책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우리의 ‘현재’ 기술은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우리 몸에 맞지 않는 미완성의 ‘미래’ 기술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국민안전·경제·안보가 흔들리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승만 정부의 에너지 환경은 최악이었다. 수풍발전소의 전기 공급은 끊어졌고, 석탄 수급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도 없었다. 산업 활동은 불가능했고, 국민들의 생존도 위협받는 수준이었다. 농민·실업자들이 화전민으로 전락하면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1965년에는 42만 명의 화전민이 4만 헥타아르의 연명을 위해 숲을 파괴했다. 암울한 현실에서 1958년 원자력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에너지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정유산업을 일으켰고, 한강·낙동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 석탄 수급을 위해 강원도에 탄광을 개발하고, 중앙선을 전철화 했다. 물론 부작용도 심각했다. ‘연탄가스’ 중독과 채탄·수송·생산·소비 과정에서의 환경오염과 연탄 공급 파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우리의 석탄 자원은 10여 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정유산업이 순조로운 에너지 전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할 수 있는 경제력도 갖추었다.
그러나 1978년 고리 1호기의 가동이 최고의 성과였다. 원전 시대를 열어준 고리 1호기는 587메가와트(MW)의 작은 규모였지만, 당시 우리 전력 수요의 9%를 공급해준 구세주였다. 원전이 없었더라면 중화학·반도체·자동차·조선을 중심으로 했던 1980년대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했다.
그 이후에도 에너지 전환은 계속되었다. 치명적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취사와 난방을 제공해주었던 석탄(연탄)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노태우 정부에서의 민영화로 정유산업은 당당한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휘발유·경유·윤활유는 가장 중요한 수출상품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전혀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IMF 사태로 산업활동이 위축되면서 1998년까지 건설한 원전 17기의 전기가 남아도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력설비 과잉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전력산업선진화를 핑계로 한전을 분사시켰고, 발전시설의 건설을 통제하기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제도도 도입했다. 발전소 건설을 최대한 억제하는 정책 기조는 참여정부까지 계속되었다. 휘발유·경유에 대한 유류세를 대폭 올리는 대신 산업용 연료였던 경유에 대한 규제를 풀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가 회복되면서 에너지 소비는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2012년에는 9·11 순환정전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고질적인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발전산업의 민영화를 허용하면서 LNG 발전소가 크게 늘어났다. 녹색성장을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는 알뜰주유소·전자상거래제도로 정유산업을 억누르기도 했다.
에너지 정책은 지극히 현실적어야만 한다. 태양광·풍력이 세계적인 대세라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다. 태양광·풍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6년 OECD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태양광의 비중은 우리와 비스한 2% 수준이다. 수력(13.4%)·풍력(5.5%)·바이오(2.4%)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전히 간헐성과 비효율을 극복해야 하는 미래의 에너지라는 뜻이다. 20년 동안의 안정적 수입을 차지하는 일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태양광 마피아는 확실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우리의 세계적 원전 기술을 과거 독재정권의 산물로 인식하는 이념적 오류도 바로 잡아야 한다. 전 세계 원전 시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을 손 놓고 바라봐야 하는 현실은 황당한 것이다. 물론 태양광·풍력·수소와 같은 미래의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험 극복을 위한 기술력과 사회적 의지를 갖추고, 경제·환경·안전·안보·미래를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