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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한진빌딩.(사진=연합) |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이어 한진의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서서히 압박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KCGI가 한진그룹을 상대로 조급하게 의결권을 행사하기보다는 내년까지 바라보면서 우호 지분 확보 등 물밑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진단했다. 현재 한진칼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비롯해 이석우 사외이사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경영권 장악은 올해보다 내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 3월 정기주총서 KCGI-한진그룹 첫 맞대결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CGI와 한진그룹의 첫번째 맞대결은 올해 3월 열리는 한진칼과 한진의 정기 주주총회다. KCGI는 작년 말 기준으로 한진칼 지분 10.81%를, 한진 지분 8.03%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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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진칼 3분기 사업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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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진 3분기 사업보고서) |
한진칼 이사회 멤버 7인 가운데 4인의 임기가 올 3월에 끝나는 점도 KCGI 입장에서는 충분히 ‘건드려 볼만한’ 매력적인 요소다. 한진칼의 경우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과 조현덕 사외이사, 김종준 사외이사, 윤종호 상근감사의 임기가 오는 3월 17일 만료된다. 같은 날 한진에서는 이근희 상근감사의 임기가 끝난다.
특히 감사를 선임할 때는 대주주 지분 의결권이 3%로 제한되기 때문에 KCGI는 한진그룹과의 표 대결에서 불리할 것이 없다. 양쪽 다 3%의 의결권이라는 똑같은 조건으로 표 대결에 나서는 만큼 KCGI는 10%의 지분으로 한진그룹과 동일하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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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 내년 3월 한진家 임기 만료 주목...KCGI 총공세 가능성
우호지분을 봐도 어느 쪽에 열세에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한진칼의 경우 조 회장(17.84%)을 비롯해 특수관계인 지분이 28.95%다. 반면 KCGI 측은 자신의 지분을 포함해 국민연금(7.34%), 크레디트스위스(3.92%)로 최소 20%의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한진 역시 한진칼(22.19%)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3.13%이고, 국민연금(7.41%), 쿼드자산운용(6.49%), 조선내화(1.53%) 등도 주요 주주로 올라와 있다. 특히 조선내화는 한진 지분 중 일부를 KCGI에 넘긴 만큼 KCGI와 같은 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다. 또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올해부터 주주친화정책이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것으로 점쳐진다. 국민연금은 작년 6월에도 대한항공에 경영진 일가의 일탈행위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를 묻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KCGI는 본인 지분을 포함해 대략 21%의 우호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공적기금인 국민연금 입장에서 무조건 사모펀드 편을 드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국민연금이 어느 편에 서게 될 지 현재 상황에서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KCGI 입장에서 올해 3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년 3월이다.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 이석우 한진칼 대표이사 등 한진칼과 한진 이사진 3명의 임기가 모두 내년 3월 23일 끝나기 때문이다. 한진에서도 조 회장과 서용원 대표 등 이사진 4명의 임기가 내년 3월에 만료된다. 1년간의 시간을 벌면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영권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사외이사는 감사 선임과 달리 대주주 의결권에 제한이 없는 만큼 KCGI가 우호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내년 계획 역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 KCGI 펀드 만기 최장 14년...한진그룹과 장기전 가능성 커
또 KCGI가 한진칼에 투자한 펀드의 만기가 최장 14년이기 때문에 KCGI 입장에서는 내년 이후를 내다보고 서서히 지분을 늘리면서 이사회를 장악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KCGI의 지분 매입 시점도 이같은 의견을 뒷받침한다.
통상적으로 기관들이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할 때는 주가가 저렴할 때를 노리는데, KCGI의 경우 한진칼과 한진 모두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매입했다. 즉 중장기적으로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면서 주가를 띄우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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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개월간 한진칼 주가 추이.(사진=구글 화면 캡쳐) |
KCGI가 지분을 매입한 12월 26일 한진 주가는 5만2500원으로 10월 1일(3만2250원)보다 60% 넘게 급등한 상태였다. 한진칼 역시 KCGI가 처음 지분을 매입한 지난해 11월 15일 당시 주가가 2만4750원으로 3개월 전보다 40% 넘게 올랐었다. 즉 앞으로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두 기업의 주가가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KCGI 입장에서는 올해 3월 주총에서 이사회 장악에 실패하더라도 딱히 잃을 게 없다"며 "현재 오너일가가 과징금으로 지분을 더 매입할 여력이 없고 백기사로 나설 만한 기업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갈 수록 KCGI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