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진 칼럼] 숫자에 끌려가는 사회

이재훈 기자 ljhoon@ekn.kr 2018.09.11 1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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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끌려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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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주)대표
‘뉴욕증시 미·중 무역협상 속 혼조,다우 0.02% 상승 마감’. 이는 몇 달 전에 본 연합뉴스 기사의 제목이다. 이 제목을 고친다면 무엇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

상승률 0.02%는 매우 미미하다. 사람 키를 들어 이 상승률을 생각해보자. 신장이 175㎝인 청년이 "내 키가 한 달 전 측정했을 때보다 0.02% 자랐다"고 주장했다고 하자. 그 정도는 얼마나 될까. 약 0.4㎜로, 1㎜가 채 안 된다. 이 정도를 놓고 키가 자랐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한 달 전과 비교해 최근 측정할 때 사소한 변수가 일시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지수가 0.02% 상승하거나 0.02% 하락한 경우는 둘 다 움직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시세가 계속 유지된 상황은 ‘보합’이라는 말로 나타낸다. 나는 0.02% 상승을 ‘보합’이라고 서술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다우 0.02% 상승 마감’ 대신 ‘다우 보합’이라고 하면 된다. 꼭 수치를 전해야 한다면 ‘다우 보합 (0.02%↑)’이라고 쓰면 된다.

숫자는 의미 있는 자리까지만 적어야 한다. 어느 수치에서 어느 자리까지 정보 가치가 있는지는 그 수치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어느 숫자를 어느 자리에서 반올림할지는 그 숫자를 다루는 사람과 조직이 스스로 생각하고 정해야 한다.

수학자 존 앨런 파울로스는 책 ‘수학자의 신문 읽기’에서 어느 요리의 영양을 1인분에 761㎉라고 설명한 기사를 예로 든다. 그는 "마지막 1㎉는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설명한다. 760㎉라고 해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몇 가지 경우를 더 살펴보자. 설문조사 응답자 비율과 주가 등락률을 포함한 비율은 대부분 소수점 아래 수치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매체는 종종 소수점 아래 두자리까지도 알려준다. 예를 들면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8월 코스닥시장 전체 주문 건수는 하루 평균 805만 2371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36.80% 증가했다"고 전한다. 이 정보는 "37% 증가했다"로 정리하면 된다. "4일 코스닥시장에서 에이스테크는 80원(1.56%) 오른 5200원에 마감했다"는 ‘80원(1.6%) 오른’이라고 쓰는 편이 더 낫다.

영어로 보도하는 해외의 주요 언론매체는 지지율이나 증감률, 등락률을 쓸 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수점 아래는 반올림한다. 보합일 경우엔 등락률을 쓰지 않는다. 위의 마감시황을 한 외국매체는 ‘the blue-chip benchmark had added 5.17 points to close at 23,930.15’라고 보도했다. 의미 없는 0.02%를 쓰는 대신 상승폭인 5.17포인트만 알려줬다.

이 주장이 쩨쩨하게 따지는 잔소리이며 실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시는가. 이런 사례를 상상해보자. 당신이 종사하는 업계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주시하는 A지표가 있다. 지난달 A지표의 값이 전월에 비해 사실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은 중요한 거래업체에 보내는 자료에 ‘A지표 전월 대비 0.02% 악화’라고 적었다. 그 보고서를 본 상대방은 아마 당신에 대해 ‘이 친구,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군’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만약 정말 A지표가 나빠진 것이라면 당신은 악화 요인을 분석하고 그 내용을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도 0.02% 변동은 ‘악화’가 아님을 알고, 그래서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

숫자를 정리하지 않은 채 전달하는 것은 언론매체만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자료를 작성하는 곳에서 수치를 정리하지 않은 채 언론매체와 대외에 배포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는 숫자 같은 기본 정보를 다루는 일에서부터 기초를 다져야 한다.

파울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정확성보다 주변을 밝게 비추는 명료함이 더 낫다." 숫자를 정리하지 않은 채 늘어놓는 사회는 숫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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