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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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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View] 재생에너지로 전력수요 감당 못한다…폭염에 탈원전 국가들 '속속' 복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8.03 08:53

-이상 고온 현상에 전력 수요 급증
-韓·獨 등 원전에 눈돌려
-25도, 태양전지가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최적 
-쉘렌버거 "원전 폐쇄하고 LNG 늘리면 온난화 심화"

▲일반 카메라와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강변북로 모습. 오른쪽 영상이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 온도가 높을수록 붉게 낮을수록 푸르게 표시된다. (사진=연합)


3일 서울은 111년만에 가장 더운 밤을 보냈다.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 서울의 밤사이 최저기온도 이틀 연속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6시 1분부터 이날 오전 6시 30분까지 관측된 서울의 최저기온은 30.4도를 기록했다. 이는 서울의 하루 최저기온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1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전국 폭염이 절정을 기록한 가운데 지구촌 곳곳에서도 맹렬한 더위로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우고 이상 고온이 속출하는가 하면 화재 피해가 잇따르는 등 곳곳이 몸살을 겪고 있다.

북극과 북유럽마저 강타한 맹렬한 더위에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탈원전을 추진 중인 세계 각국 정부들도 원자력발전으로 속속 눈길을 돌리고 있다.


◇ 韓정부, 탈원전 위해 전력수요 낮춰 잡았나

▲신고리1(우)원전과 2호기(좌) 전경. (사진=한수원)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격적인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 주 가동 중인 원전을 14기에서 19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올 여름 유지보수를 위해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었던 2기의 원자로도 재가동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전력 수요는 ‘피크기’인 8월이 되기도 전인 지난 달 여름철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상황이 급해지자 정부는 현재 정비 중인 원전 2기는 재가동 시기를 앞당기고, 8월 초로 잡아놓았던 다른 원전 2기의 정비는 8월 하순으로 미뤘다. 최근 정비를 마친 원전 1기까지 포함하면 피크 기간 중 5개 원전이 500만㎾를 추가 공급하게 된다. 탈원전 선언을 한 정부가 결국엔 원전에 기대게 된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력 수요를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 예측 실패는 정부가 탈원전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력 수요를 자의적으로 너무 낮게 전망한 데서 기인했다는 지적이다.

탈원전에서 원전 옹호론자로 돌아선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마이클 쉘렌버거는 "역설적인 것은 한국, 대만을 비롯해 많은 탈원전 정부들이 기후변화를 들어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와는 정반대로, 원전을 폐쇄하고 LNG와 석탄 발전을 늘리면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면서 온난화 현상이 심화된다. 이는 다시 폭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독일, 프랑스, 대만, 일본도 잇달아 원전 재가동

▲독일 남부 지역에 폭염과 가뭄이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일(현지시간) 다뉴브 강이 완전히 메마른 채 바닥이 드러나 있다. (사진=AFP/연합)


탈원전을 기치로 하는 독일 정부 역시 원전과 석탄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태양광 패널의 전력생산량이 최대치에 달하는 낮 시간에도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일조량이 풍부한 대신 바람이 거의 불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탈원전 속도조절에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해 말 "원전은 탄소배출이 가장 적은 친환경 방식이고, 재생에너지는 전력생산이 불안해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며 탈원전 공약을 수정했다.

2025년까지 원전 제로를 선언한 대만은 지난 6월 전력난 해소를 위해 폐쇄했던 원전 2기를 재가동했다. 원전 6기 가운데 5기를 세운 대만은 지난 해 여름, 전체의 절반이 넘는 700만 가구가 정전 사태를 겪었다. 원전 없이는 안정적 전력 확보가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을 전면 폐쇄했던 일본 역시 여름을 앞두고 원자로 재가동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3월 이후 일본의 원전 발전용량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쉘렌버거 전문가는 "한국, 독일, 대만, 일본 등 탈원전 정부의 원전에 대한 의존은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전경.(사진=AFP/연합)


일본은 7년 전 후쿠시마 참사 이후 원전을 모두 중단하고, 에너지 보존과 효율성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 노력은 일본 최대 가전기업의 에어컨 판매량이 전년대비 70% 가량 급증하면서 한계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 역시 에너지 보존 및 효율 프로그램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이번 주 5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을 향해 에너지 소비를 줄여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기상청인 국립기상국 소속 전문가는 "전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난 수준의 폭염 속에서 전력 사용을 줄이라는 정부의 요구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 태양광 발전, 폭염엔 효율 오히려 떨어져…

세계 태양광 정책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 온 캘리포니아가 폭염에 곤란을 겪는 이유는 뭘까. 전력을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비싼 가격 탓에 대중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양광 발전은 전력 수요 피크 시기와 생산이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 6대 일간지 중 하나인 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에 따르면,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은 해가 지고 사용자들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에어컨을 켜고 세탁기나 건조기와 같이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감소한다.

태양광 발전은 햇볕이 뜨거울수록 발전량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태양광 패널은 폭염 속에서 전력 생산량이 줄어든다. 태양광 전문가는 "제조 표준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은 25도에서 최적의 생산량을 나타낸다"며 "25도가 태양 전지가 햇빛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태양광 패널. (사진=AP/연합)


지난해 런던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여름 기온이 축적된 먼지와 결합해 50도까지 오르면, 태양광 패널의 효율을 절반 이상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주의 전력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은 MW당 1000달러로 치솟았는데, 이는 작년 평균 가격와 비교해 무려 30배나 비싼 것이다.

로스앤젤러스 유틸리티의 대변인은 "올 여름 전력난은 우리가 겪을 미래의 모습"이라며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해질 수록 우리가 겪어야 할 극단적인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쉘렌버거 전문가는 "각국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은 비싸고 환경에도 좋지 않은 석탄·LNG 발전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는 다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 진행 시 전력 수요 폭증...원전 없이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

▲(사진=AP/연합)


올해의 기록적인 폭염이 탈원전 정부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까.

대만이 첫 번째 시험 사례가 될 전망이다. 대만은 오는 12월 원전을 폐쇄할 예정이지만, 올여름 폭염과 지난 해 발생한 대규모 블랙아웃 사태로 인해 강력한 반대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 역시 오는 2025년까지 주 전체 전력의 9%를 공급하는 디아블로 캐년 원전 시설을 폐쇄하는 계획을 추진 중인데, 급증하는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캘리포니아의 전기요금은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고 원전을 폐쇄한 2011년 이후 미국 내 다른 지역보다 5배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처럼 정상적인 조건에서도 원자력 손실에 의해 전기요금이 증가하는데, 올 여름을 강타한 극단적인 기후에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기록적인 폭염에 디아블로 캐년 원전의 폐쇄를 지지하는 반핵(反核) 환경단체 ‘환경보호기금’(EDF, Environmental Defense Fund)조차 "전력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인정하게 됐다. EDF는 "미국 인구가 지난 20년 사이 5000만 명 이상 증가함에 따라, 전력회사들이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 외에도 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도 문제다. 스마트폰,노트북, 클라우드 서비스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았고, 사생활과 기업에서의 활동 모두 전력과 신뢰할 수 있는 그리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전기차로의 빠른 전환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전기차가 급속히 확산될 경우, 전력 수요는 2016년에서 2040년까지 300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전문가는 "앞으로 전력 수요는 폭염·혹한 같은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뜻하지 않은 전력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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