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기업에 있어 일본은 무척 매력적인 시장이다. 중국, 북미와 함께 세계 3대 게임시장으로 꼽히는 빅마켓인데다가, 이용자들의 평균 객단가(1인당 평균 매입액)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특유의 폐쇄성 탓에 외산게임들에겐 '무덤'으로 통하는 곳도 바로 일본이다. 그런 일본에서 최근 한국산 모바일게임들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강하면서도 정확하게 현지 시장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본시장에서 살아남은 한국 게임들의 열도 공략법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日생존기…유행 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
② 불모지 뚫어낸 넥슨·넷마블의 2社2色 전략
③ [인터뷰] 넷마블재팬 엔도 유지 대표
④ [인터뷰] 넥슨재팬 김기한 모바일사업본부장
[도쿄(일본)=에너지경제신문 류세나 기자] 국내 게임업계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 공략에 속도를 올려 나가고 있다. 국내에서 매출 1위 왕좌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넥슨과 넷마블이 일본에서도 먼저 치고 나갔다.
넷마블은 ‘세븐나이츠’, ‘리니지2 레볼루션’에 이어 최근 내놓은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올스타’까지 연이어 흥행시키면서 현지시장에 확실히 적응한 모습이다.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 역시 ‘히트’와 ‘오버히트’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일본 내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이들은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와 액션 RPG(역할수행게임)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시장에 해당 장르를 전파, 외산게임 불모지라 불리는 일본시장에서 살아남았다.
◇ 넷마블, A부터 Z까지 ‘일본만을’ 위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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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일본 ‘리니지2 레볼루션’ 쇼케이스 현장에서 현지 게이머들이 게임 론칭 전 콘텐츠를 체험해보고 있다.(사진=넷마블) |
넷마블재팬의 엔도 유지 대표는 일본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제1 원칙으로 ‘콘텐츠’와 ‘운영’을 꼽았다.
엔도 대표는 "사실 일본 게이머들은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또 어느 정도 규모의 게임사가 만든 게임인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일본시장에서 게임을 서비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 자체의 콘텐츠와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의 모바일게임 시장도 경쟁이 심화된 곳인데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무척 다양하고, 이런 게임들을 찾는 이용자들 또한 많다는 것"이라며 "넷마블재팬 역시 시장의 니즈에 따라 TPO에 따른 다양한 게임들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넷마블재팬은 일본 공략을 위해 현지 게이머들의 성향에 맞춘 다채로운 게임들을 준비중이다. 장르도 다양하게 구비했다. 특히 일본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지적재산권(IP)을 활용, 접근성을 낮춰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 26일 출시한 횡스크롤 대전 격투게임 ‘더 킹 오브 파이터스 올스타’를 비롯해 다음 타이틀로 준비중인 신작 RPG ‘일곱개의 대죄’, 태그액션 RPG ‘요외워치 메달워드(가제)’ 등 일본시장에 특화된 게임들을 준비중이다. ‘일곱개의 대죄’는 일본에서만 2800만부가 팔려 나간 인기 애니메이션이고, ‘요괴워치’ 또한 콘솔게임 및 애니메이션 등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일본의 대표 인기 IP 중 하나다.
넷마블이 일본에 내놓는 게임들은 제작 단계부터 일본 게이머 고증작업 등 철저히 일본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임들이다. 이는 일본시장을 뚫어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임을 넷마블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엔도 대표는 "일본엔 어렸을 적부터 게임기를 갖고 놀던 사람들이 현재의 50대까지 포진돼 있고,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이 높은 사람들도 매우 많다"며 "일본이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타겟층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들의 요구에 맞춰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 게이머들은 ‘닥치고 사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토리보다 전투와 사냥 중심의 플레이를 좋아하는 반면 일본 게이머들은 ‘왜’에 방점을 찍는 특징을 띠고 있다. 특정 행위에 대한 배경, 즉 스토리와 세계관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돼야 비로소 게임 플레이에 대한 목적의식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또 일본 게이머들은 운영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단순히 퍼주기식 정책보다 기업의 서비스 마인드 여부부터 먼저 살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처음에 진입하기 어렵지만 성공하면 장기 흥행에 대한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넥슨, 검증된 게임성에 ‘일본문화’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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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재팬 사무실 전경. (사진=넥슨) |
넥슨은 개별 게임의 토대가 되는 게임성은 유지하되 거기에 인터페이스 및 그래픽, 시나리오 등을 일본 게이머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설정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천편일률적인 일본향 게임들 속에서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 위한 넥슨만의 전략이다.
넥슨재팬 김기한 모바일사업본부장은 "일본 게이머들이 넥슨에 기대하는 것은 기존의 일본게임들과 똑같은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전과는 다른 재미,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일본시장에 소개해 나가는 게 넥슨재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미있는 콘텐츠라면 어느 시장이든 통한다고 믿는다"면서 "시장의 틀에 구애 받지 않고 넥슨이 가장 잘하는 영역에 일본의 특징을 담아내는 게 가장 효과적인 현지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간단한 듯 설명했지만 넥슨이 말하는 일본 ‘현지화’ 작업은 매우 세밀하다. 2016년 말 선보인 ‘히트’로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에 ‘액션 RPG’ 장르 포문을 열었던 때가 바로 그랬다.
기본적으로 그래픽 일러스트를 일본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스타일로 리뉴얼하고,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현지 유명 성우진과의 협업을 통해 캐릭터 목소리 녹음을 다시 했다.
또 스토리를 중시하는 현지 특성에 맞게 캐릭터들의 개성이 부각되는 별도의 스토리라인을 추가하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가로형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 게이머들을 위해서 버튼 동작방식 안내 등 튜토리얼도 세세하게 뜯어 고쳤다.
최근 ‘오버히트’를 론칭하면서도 일본시장을 위한 별도의 개발조직과 운영 인력을 구성하고, 캐릭터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비중을 중시하는 일본 게이머들의 특성을 고려해 각 캐릭터별 특장점 및 매력을 어필하는 방향으로 모델링을 다시 했다. 이와 함께 국내 버전과는 다른 시나리오 라인도 추가했다.
김 본부장은 "‘히트’와 ‘오버히트’를 서비스하면서 이젠 어떤 타이틀을 어떤 식으로 일본에 내놓으면 성공하는 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힌 것 같다"며 "올 하반기 이후에는 내·외부 IP 기반의 타이틀들로 시장을 공략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