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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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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맞서자"...전기차로 힘 합치는 카르텔 '석유수입국기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7.06 07:4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사진=AF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3년 반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국제 원유 가격에 산유국 경제는 회복세를 타며 희색이 완연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석유 소비국들은 울상이다. 지난 달 최대 원유수입국 중국에서는 트럭기사들이 연료 가격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전국적인 파업이 벌어진 탓에 운송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달 2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를 앞두고 원유시장의 눈길은 온통 산유국들이 증산할 지, 감산 정책을 이어갈 지에만 쏠려있었다. 지난 달 중순 인도와 중국이 석유수입국기구 설립에 관해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위험한 동맹관계’를 걱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당사자인 OPEC조차도 미국의 증산 압박과 회원국 내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랴 바쁜 탓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OPEC이 석유수입국기구(oil buyer’s club) 의 위험성에 주목해야 할 때라는 경고가 제기됐다.

지난 달 14일(현지시간) 인도 최대 영문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Times of India)는 중국과 인도가 OPEC에 맞서 협상력 강화 등 석유 수입국의 권익을 추구하는 별도의 기구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인도 정부 관료의 말을 인용해 베이징에서 석유수입국기구를 결성하기 위한 공식적인 논의가 시작됐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관료는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진다"며 "미국의 석유가스 생산붐은 우리(인도, 중국)가 OPEC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고 언급했다.

인도와 중국은 세계 석유 소비의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OPEC의 조치로 유가가 오를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 중 하나다.

세계 원유시장에서 OPEC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한 석유수입국기구 설립에 참여하는 나라로, 인도와 중국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 소속 저명한 환경운동가 칼 포프에 따르면, 과거 반 OPEC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꺼리던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이번 동맹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석유수입국기구 합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전의 유가 변동과는 달리 화석연료에 대한 대안책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OPEC이 미래 석유 소비국 카르텔과 맞서야 하는 지점이다.

인도, 중국, 유럽연합(EU)은 전기차 채택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은 배터리 제조에서 선두주자다. 만일 그들이 마음을 먹는다면, 5개의 지역이 원유시장을 흔들고 효과적으로 OPEC을 전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전체 자동차 시장 내 전기차 비율이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만큼, 아직까지는 현실에서 펼쳐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시나리오이긴 하다.

인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도 운전자의 90%는 필요한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고, 도로세를 인하하며, 보조금을 인상하면 전기차로 전환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인도 전기차 대량 채택에 대한 추가적인 장애물로서의 가격과 주행거리를 파악한 또다른 설문조사도 있다. 이러한 장애요인들 때문에 인도 당국은 최근 야심찬 목표를 수정했다. 2030년까지 인도 차량 전체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데서 30%로 하향조정했다.

전기차를 말할 때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은 전기차 보급 측면에서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두주자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중국의 전기차 보급률은 상당 부분 전기차 제조에 대한 정부의 관대한 보조금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은 2020년 ‘제로’로 축소될 예정이며, 자동차 제조기업들은 이미 정부 지원 없는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2020년 이후 전기차 붐이 지속될 지 불확실하다고 보는 이유다.

이처럼 전기차를 둘러싼 불안정한 상황은 중국과 인도가 OPEC이 지배하는 국제 원유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석유수입국기구를 만들려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유럽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전기차 채택율을 보이는 지역으로, 환경 면에서 가장 선두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동시에 유럽은 여전히 많은 원유를 수입하고 있고, 시장의 큰손(대형 구매자)으로서 유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과 인도는 전기차 채택에 있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유럽은 충전 인프라 구축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유럽, 중국, 인도, 일본은 세계 자동차 제조업의 6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유럽에서 제조된다. 4개 지역은 세계 원유의 35%를 소비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등을 통해 이 숫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프는 "중국과 인도가 합쳐진다면, 석유수입국기구가 점진적이거나 혹은 좀더 빠르게 전기차로의 전환을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전적으로 OPEC이 지속되는 저유가에 동의할 것인 지 아닌 지 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석유수입국기구에 보다 회의적인 견해를 취하는 이들은 보조금, 충전 인프라 등 전기차 채택의 도전적 요소에 주목한다. 설령 모든 석유소비국들이 힘을 합치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다.

이리나 슬라브 연구원은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석유수입국기구는 OPEC이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될 수 있으며, 산유국들은 석유소비국들의 회동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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