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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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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국제유가 어디로-①] 선거 앞둔 트럼프, 유가 잡기 혈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7.02 08:07

美, 이란산 원유수입 각국에 중단 요구...산유국 증산에도 공급부족 늘어날 듯
지나치게 높은 연료가격 경제엔 부담
트럼프,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악재로 작용
전문가 "SPR 실행시 유가랠리 중단"

▲(자료=에너지경제신문DB)


한달 간 지지부지하던 국제유가가 일주일새 8% 넘게 뛰면서 배럴당 74.15달러, 3년 7개월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 금융의 중심 월가에서는 하반기 유가가 배럴당 90달러까지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원유재고가 빠르게 감소하는 등 펀더멘털도 강세장을 가리키고 있으나,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료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전략비축유(SPR)를 풀면 유가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정반대의 관측도 나온다. 유가는 어디로 향할까.

22∼23일(현지시간) OPEC 총회 이후 유가가 급등세를 탄 것은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 원유 공급차질이 발생하는 건수와 규모가 늘어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물량을 상쇄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對)이란 제재 복원을 선언한 미국이 각국에 이란산 원유 수입 전면 중단을 요구하면서 날이 갈수록 공급 부족분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의 150만∼200만 배럴의 증산 선언에도 시장이 다시 공급부족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유가 랠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연료 가격을 내리기 위해 전략비축유(SPR)를 풀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료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면 경제에 부담이 커지는데, 이는 선거에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오르락 내리락 원유시장…"사우디+러시아 증산, 이란 차질 상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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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 간의 WTI 가격 추이. (표=네이버 금융)

5월부터 펼쳐진 원유시장의 180도 전환은 원유시장이 본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심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지난 5월 말 사우디와 러시아가 18개월간의 감산 정책을 끝내고 증산에 돌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유가는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배럴당 20달러대까지 추락했던 3년간의 저유가 시대에 다시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불과 한 달이 지난 7월 초, OPEC+가 100만 배럴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로 증산하더라도 공급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지 불분명해졌다.

29일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는 70센트, 0.95% 오른 배럴당 74.15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도 1.59달러, 2.04% 상승한 배럴당 79.44달러를 나타냈다. 일주일 동안 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8%, 5% 이상 뛰었다.

나스닥의 타마르 에스너 수석 에너지 애널리스트는 "이제 모든 사람이 여유생산용량과 향후 시장 추세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주 동안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산유국의 증산결정에 주목했던 시장은 최근 발생한 일련의 혼란으로 관심을 옮겨갔다고도 덧붙였다.

EMI DTN의 도미닉 치리첼라 위험관리부문 이사는 "석유의 예상 감소분은 OPEC과 러시아가 합의한 증산규모를 뛰어넘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각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란 석유 수입을 중단할 경우, 시장 내 석유 공급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유가는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월가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후탄 야자리 프론티어 시장 주식 리서치 부문 대표는 "유가가 매우 매력적인 시장 환경에 처해 있다"며 "내년 2분기 말까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자리 책임자는 "원유 공급 차질이 전세계에서 가시화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이란에서 석유를 사지 못하게끔 해서 이란을 고립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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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방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의 혼란과 장애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사우디의 석유 생산을 대략 200만 배럴까지 늘려 줄 것을 요청한다고 그에게 설명했습니다. (석유) 가격이 높습니다! 살만 국왕은 동의했습니다!"

증산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널리 알려진 대로, 그리고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트위터에 언급했듯, 트럼프 정부는 이란의 공급차질 물량을 상쇄하기 위해 사우디에 생산량을 늘릴 것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사우디는 요청에 응했고, 일일 원유생산량을 5월 1000만 배럴에서 7월까지 1100만 배럴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증산의 규모와 속도 양측면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리비아, 베네수엘라, 이란, 캐나다, 앙골라, 카자흐스탄에서 공급차질이 발생한다면, 사우디의 증산 물량을 상쇄하기 때문에 OPEC 총회의 합의 내용이 충분치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설령 사우디 등 최대 원유수출국들이 트럼프 정부의 요구에 응한다 하더라도, 세계 원유 재고량의 감소는 가속화할 수 있다. 실제 지난 주 유가 급등의 주 요인은 주요 산유국들의 생산량 증가가 재고 수준을 안정시키기에 충분치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그렇게 되면 유가는 훨씬 더 빠르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오일프라이스닷컴과 포브스의 로버트 래피어 에너지 분석가는 "이는 미국의 원유생산업체들을 행복하게 하는 반면, 정유사들을 고통으로 몰아 넣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유가는 정유사들의 마진을 잠식해 수익을 낮추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래피어 전문가는 "정유사들은 지난 5월 말 트럼프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연료 사용 촉진 정책을 반겼으나, 유가 급등은 정유사들의 수익에 단기적으로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트럼프, 전략비축유 푸나?

상황이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비축유로 눈을 돌려 고유가를 막을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이다. 영국의 투자은행 스탠다드차타드는 투자노트에서 "미국의 전략비축유가 가동되기 전까지 WTI가 너무 많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미국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휘발유 가격이 더 오른다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가 전략비축유를 풀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정치인들은 전략비축유 풀어 재고를 소진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왔다. 공급부족이 경제에 해가 미칠 정도로 심각한 상황 등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것을 운영원리로 했기 때문이다. 과거 전략비축유 판매내역을 살펴보면 물량을 푸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고 규모도 적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73년 비축유가 형성된 이래 46년간 단 6차례에 불과했다. 다음 목록은 미국 에너지부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내역이다.

△1985년 11월 시험 판매 100만 배럴 △1990년 1991년 9월, 1월: 사막 방패/폭풍으로 인한 공급차질 판매-2100만 배럴(1990년 8월 400만 배럴: 1991년 1월 1700만 배럴 대통령령) △ 1996∼1997년 10월 ; 1월 ; 4월 2800만 배럴 : 비상용이 아닌 판매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 판매 1100만 배럴 △2011년 6월 IEA 조정 권고에 따른 판매 : 3064만 배럴 △2014년 3월: 시험 판매 500만 배럴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전략비축유를 둘러싼 표준은 셰일 혁명에 힘입은 미국 원유생산량 증가로 약화돼왔다. 풍부한 공급과 순수입의 급격한 감소가 맞물리면서 전략비축유의 중요성이 감소한 것이다. 지난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람의 봄과 리비아 정전 사태에 따른 여파로 전략비축유를 풀 당시 오바마의 정치적 동기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었다. 몇 년 후 미 의회는 예산 문제를 들며 전략비축유 판매를 제한했는데, 이는 40년간의 미국 에너지 안보 전략을 끝내는 것을 골자로 했다.

닉 커닝엄 오일프라이스 닷컴의 원유 전문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는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주에 위치한 소금동굴에서 원유 비축물량을 풀어 유가를 낮추기 위해 시장에 기름을 버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것"이라며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높은 기름값 때문에 정치적 역풍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면 조금에 망설임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전략비축유 판매를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하지만, 무역,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규범을 파괴시킨 대통령이라면 전통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커닝엄 연구원은 "시장의 수급이 타이트하고 모든 방향은 강세를 가리키고 있다"면서도 "트럼프가 전략비축유를 푼다면 원유시장에 큰 충격파를 던지면서 유가 랠리가 급격하게 중단될 것"이라 전망했다.


◇ 전략비축유(SPR)란?

미국이 1973년 석유위기 이후 전쟁이나 수급차질 등에 대응하기 위해 비축해놓은 석유로,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州)에 접한 멕시코만의 소금동굴에 약 5억 7100만 배럴이 저장돼 있다. 전략비축유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의해서만 방출된다. 초기에는 현금으로 거래됐으나 지금은 정유회사가 나중에 석유로 되갚는 물물교환방식으로 이뤄진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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