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국제유가 급락세…신흥시장 붕괴, 유가 랠리에 제동 거나?

한상희 기자 hsh@ekn.kr 2018.05.30 1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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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국제유가가 또 떨어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정책을 이끈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하루 100만 배럴을 증산하겠다는 보도가 나온 후, 1년 가까이 이어지던 국제유가 랠리가 붕괴될 조짐이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지난 주 고점 대비 6% 가까이 빠졌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5거래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며 이틀새 5% 넘게 급락했다. 원유생산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유가 상승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원유시장이 극심한 불안에 노출됐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SE)에서 7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7%(1.15달러) 떨어진 66.73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 4월 17일 이후 최저가다. 지난주 기록한 최고가 72.24달러에 비하면 18일부터 사흘새 7% 이상 폭락한 것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7월물 브렌트유는 장 막판 오름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최고가 대비 6% 가량 내렸다.


◇ 사우디-러시아 원유생산량 늘리나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지난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시장이 건전하게 유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며, 6월에 우리의 감산 정책을 조정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는 6월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2017년 1월부터 시행된 감산 조치의 완화를 논의하기 위해 만날 예정이다. 알-팔리는 "OPEC과 러시아가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 붕괴와 이란에 대한 미국 제재의 영향을 보완하기 위해 가까운 장래에 세계 시장에 더 많은 석유를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배럴당 60달러 수준의 국제유가가 적합하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수년간 70~50달러 수준을 초과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생산자들에게도 좋지 않다"면서 "러시아와 OPEC은 기존 감산을 고수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 베네수엘라-이란 힘입어 유가 100달러 간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이날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오늘 OPEC과 러시아가 증산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앴지만, 원유가 더 오를 것이란 향후 전망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발표가 단기적으로 상승세를 제한하더라도 3분기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82.5달러 전망은 유효하며, 하반기에 이보다 더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OPEC과 러시아 증산에 관계없이 유가는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로 급등할 것이라고 밝혔다. 퀼베스트 웰스메니지먼트의 밥 파커 투자위원은 미국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유가를 배럴당 70~80달러로 유지하는 데 ‘매우 강한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에서 ‘완전한 붕괴’가 발생할 경우 곧 배럴당 100달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이 극적으로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다소 공격적인 수치인 ‘유가 100달러 시대’가 골드만삭스와 전문가 한 명만의 의견은 아니다. 월가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oAML)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공급차질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배럴당 160만 달러의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추산하며 내년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BoAML는 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선에서 박스권 흐름을 보이지 않고, 세 자리로 치솟을 수 있는 세 가지 잠재 요소가 있다며, 러시아와 사우디의 증산,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증가를 들었다.


◇ 신흥국 경제 분열 조짐…원유시장 최대 위협으로

그러나 이는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수요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증산을 하든, 베네수엘라 산유량이 급감하든 이제 수요 시나리오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수요 측면은 최근 몇 달 간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며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석유 트레이더들이 OPEC과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공급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을 지에 관심을 쏟는 사이, 신흥국 경제가 급격한 균열을 보이고 있다. 이는 주요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늘리는 것보다 유가를 훨씬 더 큰 폭으로 끌어내리며 원유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다.

TURKEY-ECONOMY-CURRENCY <YONHAP NO-0323> (AFP)

▲터키 앙카라에 위치한 환전소에서 직원 한 명이 달러 지폐를 세고 있다. (사진=AFP/연합)


이 시나리오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가 신흥시장 전반에 파급효과를 부를 것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강달러와 고금리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달러부채 상환 부담을 늘리고, 경제 활동을 억제하며 통화가치에 압박을 가한다. 통화가치가 추락하면 신흥국은 더 깊은 부채 수렁에 빠지게 되고,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역시 최근 통화가치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흥국들의 상황이 1997~1998년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를 연상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2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신흥 시장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외환·금융 위기의 냄새를 풍긴다"고 말했다. 크루그먼은 교수는 "지금까지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신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면서 "무서운 어떤 것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1990년대 초·중반 아시아의 호황은 생산과잉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또 당시 3~4년 후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견하기도 했다.


◇ 터키-아르헨 통화 가치 급락…신흥국 금융위기 오나

크루그먼의 지적대로 금융위기의 증거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중앙은행의 신뢰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달러 강세, 미국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자 터키 리라화 가치는 지난 두 달 간 20% 넘게 급락했다. 달러화 대비 아르헨티나 페소는 24.277페소로, 아르헨티나 통화 가치는 최근 6주 사이 20% 가까이 떨어졌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22% 곤두박칠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아예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하고 협의에 나선 상태다. 페소 붕괴로 국고가 고갈됐기 때문이다.

신흥국 통화위기가 글로벌 경기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금리 상승에 따른 경제 충격이 신흥국에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보고서까지 나오면서 신흥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4월 신흥국 주식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2016년 12월 이후 최저치인 800억 달러에 그쳤다.


◇ 투자자들 신흥국서 발빼고 미국으로…강달러, 유가에 악재

신흥국의 자금이탈 속도가 빨라지면서, 투자자들은 경제성장이 견고하고 금리가 높아 상대적으로 투자매력도가 높은 미국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이는 미국에는 호재일 수 있으나,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상당한 악재로 작용한다.

미국 경제가 탈동조화(디커플링, 일정 국가의 경제가 인접한 다른 국가나 보편적인 세계경제의 흐름과는 달리 독자적인 경제흐름을 보이는 현상)를 보이면서 달러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주요 1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WSJ 달러지수’는 2월 이래 5.6% 올랐다. 통상 달러 강세는 신흥시장의 달러화 표시 부채 부담을 가중시키고,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을 비싸게 만들기 때문에 신흥국 경제를 악순환에 빠트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금융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 달러 강세에 따라 신흥국의 부채 부담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부채 상환, 통화 붕괴, 경제성장 둔화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신흥국 경기침체, OPEC 증산과 맞물리면 유가 최소 25% 폭락"

이와 관련, 닉 커닝엄 오일프라이스 원유 전문 연구원은 "신흥시장 침체가 내년 즈음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OPEC과 비회원국 감산이 종료되거나 생산제한이 단계적으로 해제되는 시기와 동시에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그는 "환언하자면 수요 파괴와 원유공급 증가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유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재료"라고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는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브렌트유가 내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하락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은행은 투자노트에서 "향후 몇 개월 안에 PMI(구매관리자지수)가 악화되고, 장기 석유투자자들이 롱포지션(유가 상승에 베팅)을 청산하면 유가가 빠르게 60달러 밑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브렌트유가 현재 75∼80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25% 이상 곤두박질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투자은행은 신흥시장 붕괴를 언급하면서,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기 보다는 꼬리 위험(tail risk event)에 가깝다고 부연했다. 꼬리 위험은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충격을 이른다.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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