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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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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약세·유가 논스톱 랠리…WTI '70달러' 초읽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1.30 12:57



국내 휘발유 가격이 26주 연속으로 오르면서 신기록 경신을 눈앞에 뒀다. 배럴당 20달러대까지 추락했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어느새 배럴당 70달러 초읽기에 들어갔다. "무역과 기회 측면에서 확실히 약달러가 미국에 좋다" 글로벌 외환시장에 깜짝 충격파를 던진 스티븐 므누신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으로 지난 하반기부터 상승세를 탄 국제유가는 달러화 약세라는 호재를 만났다. 여기에 올해와 내년 IMF 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9%로 상향 조정돼 투자심리를 강화한 것도 유가를 지지하고 있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 ‘달러화 표시’ 상품 가격이 다른 통화권 투자자 입장에서 내려가고, 이는 유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지난 주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2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1%(0.63달러) 오른 66.1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영국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3월물도 0.14%(0.10달러) 상승한 70.52달러에 장을 마쳤다. 달러화가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WTI와 브렌트유 모두 주간으로 4.3%, 약 2.7% 올랐다.


◇ 달러 가치 떨어지면 유가 왜 오를까?

일반적으로 달러화와 원유 가격 사이에는 견고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유가 표시 통화인 미국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상대적으로 통화가치가 뛴 나라에서는 유가 오름폭이 크지 않게 느껴지면서 가격 매력도가 올라간다. 이에 따라 원유 수요가 증가하고,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원유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달러 약세가 WTI와 브렌트유를 3년만에 최고치로 이끌었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컨플루언스 인베스트먼트 메니지먼트의 빌 오그레디 수석 시장 전략가는 "달러화 약세는 브렌트유가 조금 오랫동안 70달러 수준에서 거래될 것이라는 우리의 전망을 높였다"고 말했다.


◇ 美 재무 "약달러가 미국에 좋다"…유가 3년 최고치로

달러 가치를 뒤흔든 건 므누신 장관이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 중인 므누신 장관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달러의 단기적 가치는 전혀 우리의 우려 사항이 아니다"면서 달러 약세를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발언 시점도 눈에 띄었다. 므누신의 논평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를 높인 트럼프 정부의 세이프가드 조치 직후에 나왔기 때문이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은 다보스 포럼 연차총회에서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울린 것이냐는 질문에 구체적 답변을 피해갔다. "무역전쟁은 매일 일어나고 있고, 다만 이제 미국에 상륙했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라고 전했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에 대해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포럼 현지에서 CNBC 방송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는 다시 경제적으로 강력해지고 있고, 다른 방식으로도 강하다"라고 전제하면서 ‘강한 달러’를 언급했다.

냉·온탕을 오가는 엇박자 발언으로 연이틀 글로벌 외환시장에 일대 혼선이 빚어졌다.

전반적으론 므누신 장관의 ‘약(弱)달러 발언’에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가 묻어났다는 분석이 우세한 분위기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에 외환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그동안 달러 강세를 추구했던 역대 재무장관의 기조에서 벗어난 데다, 달러 약세를 기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됐다. 달러 약세를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수출 증대를 통해 고용 창출을 노린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부합한다.

사실 이번 주에 나타난 달러 약세는 이미 진행 중인 약달러 추세를 가속화시킨 것 뿐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달러화는 트럼프 취임 이후 지난 1년 간 약세를 보였지만, 지난 12월 초부터 낙폭이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 26일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88.45로 2014년 말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달러인덱스는 지난해 9.9% 떨어졌다. 연간 기준으로 2003년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블룸버그는 지난 50년간 달러인덱스가 연간 9% 넘게 떨어진 적이 8번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수는 올 들어 벌써 3% 넘게 하락했다.

CNBC는 달러 약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이 달러 값 향방에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를 무역전쟁의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관측이 시장의 달러 약세 전망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코메르츠방크의 카르스텐 프리스치 애널리스트는 "달러 약세는 유가에 추가 상승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구리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원자재가 가파른 달러 약세에 힘입어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달러 약세+유가랠리에…투기 자본도 ‘밀물’

지난 12월 초부터 시작된 달러 약세는 급격한 유가 랠리와 동시에 일어났다. 이로 인해 투기자금이 유입되면서 유가가 3년 고점을 경신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실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뉴욕과 런던에서 WTI 선물과 옵션 투기적 거래자들의 순매수(net long) 포지션은 7612계약 증가한 54만9602계약을 기록, 사상 최대치를 또 다시 경신했다.

국제상품거래소(ICE)에 따르면, 지난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브렌트유에 대한 머니매니저들의 순 매수 포지션도 1만3912계약 증가한 58만4707계약을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영국 원유중개회사 PVM의 타마스 바가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원유 재고는 계속해서 줄고 있고, 지난해 달러 가치는 14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며 "재고 감소와 달러 약세에 힘입어 WTI와 브렌트유가 3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유가 랠리를 이끈 달러 약세가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건 아니다. 닉 커닝엄 오일프라이스 연구원은 "달러 가치가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강달러 정책에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매파적 발언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며 "달러 가치 상승은 유가 랠리를 중단시킬 것"이라 내다봤다.


◇ 美연준, 금리 올해 네 차례 인상? 펀더멘털 ‘好好’

게다가 연방준비제도(Fed)는 긴축정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선물시장에서는 올해 두 차례 금리인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Fed는 재닛 옐런 의장이 마지막으로 주재하는 이달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거의 확실시된다. CME페드워치에 따르면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26일 기준으로 선물시장에 반영된 이달 금리 인상 가능성은 5.2%에 그쳤다. 반면 3월 인상 가능성은 76.8%에 달했다.

자산운용전문업체 얼라이언스버스테인 소속 에릭 위노그래드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여러 경제적, 정책적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2018년 기준금리가 25bp씩 4차례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통상 금리 상승은 달러 강세를 야기하기 때문에 유가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한다. 또, 석유회사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에서도 원유시장에 악재다. 다만 경제회복세는 석유수요를 증가시켜 유가를 상승시키는 등 긍정적 영향이 더 크기 때문에 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펀더멘털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주 원유 재고는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준까지 감소했다. 현재 미국의 원유 재고는 4억1160만 배럴로, 2015년 초 이후 가장 낮다. 미국의 오일허브인 쿠싱 재고는 4000만 배럴까지 급감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0% 낮은 것이다. 쿠싱 재고의 하락은 WTI와 브렌트유 간 스프레드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두 유종 간 스프레드는 몇 주 전보다 7달러 이상 하락한 배럴당 4달러로 집계됐다.

커닝엄 연구원은 "펀더멘털은 정유공장이 유지 보수 기간에 진입하면서 원유 재고가 다시 쌓이기 전까지 유가를 지지할 것"이라며 "달러 약세에 힘입은 유가 랠리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올해 유가 전망을 속속 상향 조정하고 있다. 시티그룹은 국제유가가 올해 배럴당 80달러까지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널리스트를 인용해 80달러대 진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3분기 중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75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단, 반대 주장도 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이 늘어나면 국제유가는 급등세를 멈춰 올해 연간 평균으로는 배럴당 60달러 안팎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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