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 투데이) |
"현재 석탄과 원전에 투자하는 어떤 G20 국가도 앞으로 경쟁력이 없어질 기술에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린피스 독일지부 에너지 전문가 토비아스 아우스트루프가 지난 7월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언한 내용이다. 그의 지적대로 기술의 급속한 발달 등에 힘입어 태양열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당초 전문가들 예상보다 훨씬 빨리 떨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친환경 흐름에 위협을 가해도, 재생에너지의 도도한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 "영국선 풍력 발전, 원전 절반 수준으로 하락"
이런 상황에서 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빠른 속도로 낮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영국에서는 원전의 단가에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영국 정부는 지난 11일 실시된 입찰에서 지금 한창 건설 중인 신규 원전의 공급가격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해상풍력 건설 사업 11건을 승인했다.
그중 2022~2023년부터 운영할 해상풍력발전 사업의 경우 ㎿h(메가와트시)당 58파운드(약 8만8621원) 이하로 전력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건설 중인 신규 원전(힝클리 포인트 C)의 공급가격 92.50파운드(14만1336원)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해상풍력의 경우 약정공급가격이 2012년 이후 5년도 채 안되는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번에 낙찰된 재생에너지 사업이 생산할 전력은 2025년 완공 목표인 힝클리 포인트 C 신규 원전의 발전량(영국 전력공급량의 7% 규모)과 비슷하다. 영국 내 전문가들도 "가장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갖춘 기술발전 덕분에 더는 거스를 수 없는 재생에너지 시대가 도래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영국 뿐이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3일 "미국 내 전력망 공급용 태양에너지의 가격이 지난해보다 30% 줄었다"면서 "낮아진 인건비와 부품가격의 하락으로 비용감소 목표를 3년 앞당겨 달성했다"고 전했다.
◇BNEF "풍력발전에 주목…초대형 터빈이 성장세 이끌어"
이는 에너지시장 분석업체 ‘블룸버그 신 에너지 파이낸스’(BNEF)의 ‘신 에너지 전망 2017년’ 보고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BNEF 보고서는 2040년엔 재생에너지가 세계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1%로 확실한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으로 원전은 9%에 머물고, 작년 37%였던 석탄은 22%로 줄어들고 천연가스 비중도 16%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발달 속도가 빠르고 관련 투자가 급증하면서 발전 비용은 급속도로 낮아지는 덕으로 BNEF도 분석했다.
BNEF는 특히 풍력에 주목했다.
BNEF는 "초대형 풍력 발전이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불과 몇 년 전에 전망했던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급감하고 있다"면서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는 세계 신규 전력설비에 대한 투자 중 약 86%(10조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19세기∼2025년 풍력발전의 출력 증가 추이. (표=BNEF) |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BNEF 컨퍼런스에서 BNEF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리이브리히는 "풍력과 태양열 발전에서의 비용 하락에 힘입어 많은 지역에서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저렴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중 가장 눈에 띄는 진전을 이루는 분야로 풍력 발전을 꼽으며, 출력 규모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했다.
▲티핑 포인트 ① 2017∼2040년 일본과 인도의 육상풍력 발전, 유틸리티 규모 태양광 발전, CCGT(복합가스화력 발전소), 석탄 발전 단가 전망치. (단위=MWh당 달러, 표=BNEF) |
BNEF가 재생에너지 기술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2004년 초부터 이미 대형 풍력 터빈이 전력 시장에 전환점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해왔다.
BNEF는 지멘스나 베스타스와 같이 세계 최대 규모의 풍력 터빈 제조 업체들이 생산하는 대형 풍력 터빈이 관련 시장의 성장세를 주도할 것이라며, 이들이 현재 공급하는 터빈의 날개 크기는 에어버스 A380 2층 제트여객기를 넘어선다고 전했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풍력 터빈이 상용화 될 경우, 독일의 풍력발전업체들은 향후 10년 간 진행하는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정부 보조금 없이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리이브리히는 "해상 풍력 발전단가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대형 터빈들이 괴물과 같은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터빈 한 개의 크기가 63빌딩을 넘어선다고 상상해봐라"고 확신의 찬 목소리로 말했다.
풍력과 마찬가지로 태양광 발전의 단가 역시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 발전비용이 하락하면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2가지 티핑포인트는 언제쯤?
리이브리히는 구체적으로 재생에너지의 두 가지 ‘티핑 포인트(급변점,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순간 폭발하는 순간)’를 제시했다. 그가 말한 ‘티핑 포인트’는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용이 천연가스와 석탄보다 낮아지는 시점으로, 하나는 신규 발전소, 다른 하나는 이미 가동 중인 화석연료 발전소를 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BNEF는 2025년 일본, 2030년 인도에서 신규 태양광 발전소 건설 비용이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는 비용보다 저렴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티핑 포인트 ② 2017∼2040년 독일과 중국의 육상풍력 발전, 유틸리티 규모 태양광 발전, CCGT(복합가스화력 발전소), 석탄 발전 단가 전망치. (단위=MWh당 달러, 표=BNEF) |
리이브리히는 "이 시점이 지나면 모든 전력원은 풍력과 태양광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티핑 포인트는 중국, 미국, 일본, 독일 등 국가를 막론하고 눈 앞에 와있다"이라고 분석했다.
두 번째 티핑 포인트는 조금 더 멀리 떨어져있다. 현재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와 가스발전소보다 풍력과 태양광의 발전단가가 낮아지는 시점으로, BNEF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과 중국에서 2020년대 중반 즈음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실 에너지 발전단가는 국가 별로 상이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실제적으로 화석연료를 따라잡을 수 있는 지 지금 당장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가령, 브라질은 수력발전에, 프랑스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양 발전원의 점유율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또 보고서의 전망은 각국의 보조금 확대 등 정책적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각 시스템의 생산비 추이 비교에 근거한 것이고 세계평균치다. 따라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목표가 크거나 정책적 지원이 강하거나 관련 여건과 기술이 좋은 나라와 아닌 나라 간 편차가 클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갈수록 대세가 되고 향후 5년 내에도 주요 국가들에선 태양열등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기존 화석연료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리이브리히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경제성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연방 정부 차원의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더라도 세계 전력 믹스에서 현재의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리이브리히는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티핑포인트’가 머지 않았다. 세계 최대 석탄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과 미국에서 석탄 발전이 급감하고 있다. 그 누구도 다시 석탄을 위대하게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트럼프는 죽어가는 석탄산업을 다시 살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리이브리히의 발언은 트럼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