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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국책은행 전경련 탈퇴, '고소원불감청'이어야 한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6.12.14 16:36

김성욱 금융부장

김성욱
‘고소원(固所願)이나 불감청(不敢請)’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간절히 원하지만 감히 청하지는 못한다’라는 뜻이다.

한국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주요 국책은행들이 지난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탈퇴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도 이날 우편으로 전경련에 탈퇴신청서를 발송했다. 국책 금융기관들이 기업인 친목단체인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나선 것은 딱 ‘고소원 불감청’이라 할 수 있다.

공익을 추구하는 공공기관이 민간기업 이익단체인 전경련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지난 10월 전경련 회원사로 가입돼 있던 공공기관 19곳 중 한국전력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공기업 9곳이 탈퇴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경련은 이들의 탈퇴를 거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책은행들은 전경련 가입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계속됐지만 탈퇴할 명분이 부족해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특히 탈퇴 시도 시 전경련의 거부에 부닥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일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삼성그룹과 SK그룹 등이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이들 국책은행은 탈퇴할 명분을 찾았고, 전경련은 탈퇴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그동안 이들 3개 국책은행은 전경련에 가입한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회비를 내왔다. 기업은행·수출입은행·산업은행은 지난해에만 각각 2365만원·2100만원·1156만원을 전경련에 회비 등의 명목으로 납부했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비할 금액은 아니지만, 이들 국책은행을 포함한 공공기관은 민간기업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들 공공기관들도 자체 영업으로 수익이 발생하지만, 탄생부터 운영까지 이들을 지탱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 국민이 낸 세금으로 수천만원의 전경련 회비를 냈다는 것은 결코 좋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기업은행은 특히 전경련 창립 때부터 회원사로 참여했다. 재벌기업인의 처벌을 대신해 만들어진 민간단체 전경련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자발적으로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장이 아닌 ‘보이는 손’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공공기관이 전경련 회원에 가입했다는 것은 설립 목적인 공공 이익에 충실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애초 가입해서는 안 되는 국책은행이 전경련에 가입해 대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여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이 전경련의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온 것이다.

정부가 주인인 공공기관이, 특정 주인이 없는 은행이 민간기업 이익단체인 전경련에 가입한 것은 ‘정경유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유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 권력은 국회로 이동했다. 그러나 잘못된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일어나는 권력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국책은행의 전경련 가입은 처음부터 없었으면 더 좋았을 일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대기업 이익단체에서 탈퇴하는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이 전경련을 탈퇴한 것은 진정으로 ‘고소원 불감청’이길 바란다.

전경련 탈퇴 결정까지 일련의 과정이 그리고 향후의 움직임도 또 다른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어야 하고, 또 아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정경유착을 끊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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