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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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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담] 미래를 위한 원전의 키워드, 안전과 융합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5.12.08 10:55

김호성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장순흥 한동대 총장


▲장순흥 총장이 인재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기획대담] 미래를 위한 원전 키워드는 안전과 융합...해체사업 보다 수출산업화에 힘 실어야

김호성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장순흥 한동대학교 총장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자원도 인재도 자본도 없던 원전 불모지에서 턴키 수출까지.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성장을 거두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60년. 원자력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 세계 원자력계가 놀라고 있다. 

우리에게 원전기술을 전수해 주었던 미국이 오히려 우리 기술을 역수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 원자력계에는 이미 다 알려진 비밀 아닌 비밀이다. 

세계 4위의 원전 선진국 대한민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원자력 전문가들이 흘린 피와 땀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김호성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이 한국형 원전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온 장순흥 한동대 총장을 지난 4일 덕수궁 옆 한식당에서 만나 한국형 원전개발과 UAE 원전 수출 뒷이야기를 들었다.


◇ 미국과 10년 싸워 얻어낸 안전 1위 원전

김호성 이사장-이 식당은 원자력과 인연이 깊습니다. 원자력 1세대 중 한 분인 한필순 원자력연구원 고문의 따님(한윤주 대표)이 이곳을 운영하고 있지요.

장순흥 총장-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이렇게 인연이 깊은 곳에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김 이사장-총장의 가장 큰 업적이 한국형 원전 개발인데, 개발 당시 여러 해 동안 한전과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하 CE)에 맞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장 총장-안전감압밸브 문제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기존의 웨스팅하우스(이하 WH) 대신 CE의 원전 중 ‘System 80’ 모델을 도입해 한국형 원전을 개발하려 하고 있었어요. 그 때 CE 원전에는 안전감압밸브가 없어 제가 CE의 기술을 도입하려면 안전감압밸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김 이사장-안전감압밸브가 원자로 내부 압력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밸브였죠? 비상상황에서 원자로에 냉각수가 들어갈 수 있도록 원자로의 압력을 낮추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 총장-당연히 안전감압밸브의 유무는 원전의 안전성과 직결되는 문제였죠. 사실 CE 기술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CE가 당시 협상에서 수세적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전은 기존 모델을 CE 안대로 들여오려 했어요.

김 이사장-왜 그랬습니까?

장 총장-안전감압밸브의 중요성을 잘 몰랐으니까요. 사실 원래 미국의 원전에도 안전감압밸브가 있었어요. 그런데 스리마일 원전에서 안전감압밸브를 잘못 조작하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났었거든요. 관리의 문제였지만, 애초에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자는 생각으로 안전감압밸브를 없앤 것이지요. 안전감압밸브가 없더라도 냉각수를 주입할 수는 있으니까요. 게다가 WH의 고자세에 시달렸던 탓인지 국내에서는 미국 기업의 설계를 그대로 들여오겠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김 이사장-당시 젊은 교수라 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장 총장-십 년 걸렸습니다. 86년에 문제 제기하기 시작해서 95년에야 해결되었으니까요. 결국 제 주장대로 첫 한국형 원전 모델인 OPR1000에는 안전감압밸브가 적용됐어요. 나중에는 CE 쪽에서도 후속모델인 System 80+에 안전감압밸브를 장착했습니다.

김 이사장 : 우리나라에서 개선한 설계가 CE에도 큰 영향을 준 셈이네요.

장 총장-사실 90년대 이후 CE의 설계는 OPR1000으로부터 역으로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죠. 지금도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에요. 


▲장순흥 총장이 한국 표준형 원전에 안전감압밸브를 적용해야 할 이유를 미국 CE사에 제안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원전해체 보다 수출산업 육성 급선무 
김 이사장-OPR1000의 설계는 APR1400으로 계승됐는데요, 표준설계인증 과정에도 관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 총장-원자로의 기술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역할 전반을 총괄했습니다. 원자로의 안전성을 평가할 때는 보통 연간 노심용융 발생빈도로 따집니다. 1년 동안 노심이 녹아내릴 만큼 큰 사고가 날 확률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표시한 것이죠. 어느 일이나 그렇지만 ‘사고가 100% 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확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APR1400의 경우 1기 기준으로 연간 노심용융 발생 빈도가 10만 분의 1 이하입니다. 원자로 내부의 방사성물질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100만 분의 1 이하고요.

김 이사장-원전을 2세대, 3세대로 구분하는 기준이 뭡니까?

장 총장-실험적 성격이 짙었던 1세대 원전을 제외하면 2세대 이후로는 안전성을 세대 구분의 기준으로 삼는 편입니다. 1년 동안 중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2세대 원전은 1만 분의 1, 3세대 원전은 10만 분의 1 정도로 평가되지요. 이에 비해 4세대 원전은 어떤 핵연료를 사용하는지, 재사용이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보고요.

김 이사장-교육과학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하셨을 때도 원전 안전을 중요한 화두로 내세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직후라 더 그랬죠?

장 총장-당시의 목표는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유럽 수준의 스트레스테스트를 적용해서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는 것, 둘째는 UAE 수출의 여세를 몰아 지속적으로 세계시장에 도전해서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둘은 다른 목표는 아닙니다. 원전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안전이니까요.

김 이사장-내년부터 본격적인 신기후제제가 발효된다는 점에서 원자력에는 호기인 것 같은데...

장 총장-그런 면에서 고리 1호기 폐로 결정은 조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고리 1호기에는 안전성 문제도 없었고 건설자금이 모두 회수돼서 운전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시점이었으니까요. 굳이 비유하자면 아직 멀쩡한 중고차를 비싼 돈 들여서 폐차하는 꼴이지요.

김 이사장-아쉽기는 하지만 고리 1호기 폐로를 계기로 원전해체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해야 할 때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장 총장-그 말도 맞기는 하지만 해체산업은 천천히 생각해도 될 문제인 것 같아요. 그보다는 지금 있는 원전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 프랑스 누르고 원전 수출의 물꼬 트다

김 이사장-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 총장-사실 UAE 수출 건은 운이 좋았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UAE에 그리 주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원전 건설이 워낙 대규모 사업인지라 결정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입찰공고가 나더라도 사업 발주를 취소하는 경우도 허다하거든요. 게다가 당시 우리나라는 수출 실적이 없으니 확실한 기회를 포착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지요. 자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이사장-그런데도 UAE 수출은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로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거의 총력전이었는데...

장 총장-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당시 동생이 두바이 왕가와 연이 닿아 있었어요. 그래서 UAE에서 원전 입찰공고가 나왔을 때 얼마나 확실한 공고인지 동생을 통해 알아봤죠. 그랬더니 공고를 낸 해에 바로 업체를 확정하고 준공할 정도로 UAE가 진지했던 데다 원전 설계부터 건설, 운영까지 모두 하는 턴키 계약이었죠. 우리로서는 이만큼 이상적인 조건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단기에 승부를 내야 하는 만큼 성사만 된다면 빠르게 실적을 쌓을 수 있는 데다 원전 건설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었으니까요.

김 이사장-그래서 정부에서도 역량을 총동원해서 서둘렀던 것이군요.

장 총장-그렇습니다. 변준연 당시 한전 부사장에게 바로 연락했죠. 이런 기회 놓치면 안된다고. 청와대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해봐야 한다고 권유했고요.

김 이사장-당시 프랑스의 기업인 아레바와 정면대결을 해서 이겼는데, 비결은 뭡니까?

장 총장-아직도 한국이 가격경쟁력만으로 UAE 원전 계약을 따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의 원전이 아레바에 비해 저렴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원전은 아무리 싸고 성능이 좋아도 의미가 없죠.

김 이사장-우리 원전이 아레바 보다 안전성을 높게 평가받은 것이군요.

장 총장-처음에는 당연히 UAE에서도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했죠. 실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레바는 프랑스와 여러 나라의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던 회사였어요. 아레바는 APR1400의 안전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어요. 미국의 원자력 규제기관인 NRC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필사적이었지요. 마침 제 전공분야가 원자력 안전이라 다행이었죠. APR1400 안전성을 내 손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그 경험을 살려 아레바가 제기한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소시켰습니다. 마침 UAE가 원전 운영인력과 전문가 양성에 관심이 있다는 정보도 입수해서 교육과 관련된 제안도 했고요.

김 이사장-칼리파 과학기술연구대학(KUSTAR)에 대한 연구지원이었죠. 이에 따라 KAIST와 KUSTAR가 연구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 총장-그야말로 우리로서도 전방위적인 공격을 한 셈입니다. 당시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조건이었던 정보와 안전, 교육을 모두 다루었으니까요. 게다가 아레바의 원전에서 안전 관련 문제가 몇 가지 노출되던 시점이었다는 것도 도움이 됐죠. IAEA가 아레바의 원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는 데도 아레바에서는 저처럼 안전 문제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해명할 사람이 없었죠.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과 가격경쟁력이겠지만, 원전 이외의 다각적인 협력 및 지원방안에 대해서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국제 원전시장에서 대활약하고 있는데, 국가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원전 건설은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사업이에요. 그에 비해 턴키 프로젝트는 잘 나오지 않는 편이라 안정적인 자금확보가 사업의 관건이죠.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원전 기업들이 다양한 파이낸싱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고 수출 협상단도 지원받을 수 있어요. 우리도 원전 수출을 확대하려면 협상 전문인력 확보와 파이낸싱 프로그램을 빨리 개발해야 합니다.

▲장순흥(오른쪽) 총장이 김호성 이사장에게 UAE 원전사업 입찰 참여 뒷이야기를 하고 있다.

◇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파이로프로세싱

김 이사장-원전 건설 이외에도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뜨거운 감자에요. 이번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을 통해 물꼬는 텄는데, 아직도 제약이 많죠.

장 총장-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원자력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 안전의 핵심 이슈가 국제 사회에서는 핵 비확산이고요.

김 이사장-몇 년전 일본이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을 국제화하려고 했을 때 한국이 참여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셨죠. 이 역시 핵 비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 총장-일본의 롯카쇼무라에서 사용하는 재처리 방법은 습식이에요. 퓨렉스(PUREX)라고 하는 방법인데,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만 추출해낼 수 있는 방법이죠. 잘 아시다시피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롯카쇼무라 참여는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행동이에요. 동북아시아의 삼국 중 한 나라는 핵을 이미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두 나라도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죠.

김호성 이사장-그러고 보니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은 이야기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 가동을 못했습니다. 열 아홉 번이나 연기하면서 공사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장 총장-미래 먹거리를 고민할 때는 국제정세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파이로프로세싱에 주목한 이유도 일본의 습식 재처리 방식에 비해 국제관계에서 논란의 소지가 적기 때문이었지요. 공정 자체도 더 단순해서 경제성이 높은 장점도 있고요.

김 이사장-민간 차원에서의 협력 논의가 있었죠. 2012년에 총장께서 테라파워와 함께 차세대원자로 개발을 추진한다는 보도도 봤고, 이와 관련 빌 게이츠가 방한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 총장-차세대 원전의 설계부터 건설까지 모든 과정에서 협력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실력을 인정받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자원도 없는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원전까지 만들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지금은 함께 추진하는 일이 없습니다. 빌 게이츠는 설계부터 건설까지 한 번에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이는 사실 위험부담이 크거든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새로 개발해서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일단 1차로 설계를 완료한 다음에, 완성된 설계를 바탕으로 실증하고 건설하는 것은 설계종료 후 재차 논의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제대로 작동할지, 실용화했을 때 경제성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러한 입장 차이에서 결국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 원자력의 미래 준비 역시 ‘소통‘과 ‘융합’

김 이사장-테라파워와 협력이 무산된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그래도 4세대 원전 개발은 국내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장 총장-사실 우리의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국내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융합이 이루어지면서 차세대 원전과 전력망을 위한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지요. 사실 원자력 공학 자체가 대표적인 융합 학문입니다. 핵물리학을 중심으로 열유체공학, 열시스템공학, 화학공학, 인간공학, 방사선공학등과 같은 다양한 학문들이 서로 연결돼 있죠. 현재는 ICT 기술이 원자력 발전소의 통제실에 적용돼 관리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여주는가 하면, 기존 발전 산업에 ICT기술이 융합되어 스마트그리드라는 새로운 영역이 등장해 전력 사용의 효율성이 향상됐어요. 주목받는 최신 기술인 IoT 역시 가동중인 원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검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원전을 실제로 건설하고 운영하려면 주민들과의 소통, 이해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교육, 심리를 비롯한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원자력발전 시장을 선진국에서 주도하는 이유도 이처럼 저변 기술이 탄탄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김 이사장-신기후체제를 앞두고 우리 사회의 전력 수급구조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다양한 이해가 얽혀서 풀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제법 성숙한 우리 원자력계가 사람과 사회를 아우르는 융합적인 이해와 노력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사회적 비용도 결국은 원자력계가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할 몫이 아닌가 합니다.

장 총장-미래를 준비하려면 기술 이상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기술의 존재 의의는 사회와 사람에게 이바지하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고 원자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해요. 이를 간과하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후쿠시마 사고 때 일본의 대응이었습니다.

김 이사장-그 때 원전 인근 주민들을 이주시킨 조치가 지나친 대응이었다고 지적하셨었죠.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장 총장-비난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제가 말하고자 한 바를 어렵지 않게 알아챘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시 집을 떠나 대피한 사람들이 10만 명이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졸지에 피난민이 된 것이죠. 당연히 수용시설이나 구호품도 부족하고 피난한 사람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문제는 당시 대피 기준이 너무 보수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국제방사선보호위원회는 원자력 사고 시 비상대피 기준을 연간 방사선 노출량 20~100mSv로 권고하고 있는데 일본은 가장 보수적인 20mSv를 적용했어요.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연간 100mSv의 노출량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어려운 판에 굳이 가장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었죠. 아마 당시 전문가들이 국내외 여론과 추가 사고 가능성을 의식해서 대피 기준치를 낮게 잡았을텐데, 피난민이 겪을 고통이나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고려하지 못한 셈이지요. 우리나라 기준은 연간 50mSv로 잡고 있어요.

원자력계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언어와 화법을 고수하기보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방식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원전 수용성이 높은 곳을 보면 지역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혜택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원전과 함께 교육과 일자리의 질이 향상돼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 전체를 봐야 하는 것이죠.

김 이사장-재단과 학계를 포함한 원자력계 모두가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독자 모델을 수출하는 쾌거도 이루었습니다. 하드웨어 뿐 아니라 전문인력 교육과 같은 소프트파워도 충실히 쌓아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자력계가 대중의 지지를 얻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대전제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사람’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듯합니다. 기술적인 해명 이전에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논의의 장을 만들어나가는 역할이 얼마나 무겁고 중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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