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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ant, 130.3×193㎝ Oil on canvas, 2013 |
◇박제 표본으로 전시된 몸
인간은 프로메테우스가 훔쳐다 준 불을 에너지로 깨닫는 순간, 다른 동식물을 지배하며 21세기 디지털 첨단문명까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과학발명과 끝없는 지식욕구 이면에 환경파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양산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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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72㎝ Oil on canvas, 2013 |
그리고 허공에는 신체에 영향을 주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선(線) 형태로 몸을 휘감아 다층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형체는 사라지고 뿔만 남은 사슴 위에 앉은 여인은 혹여 최후의 만찬 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잠수헬멧을 쓸 수밖에 없는 지구 최후1인은 아닐런지. 그녀가 남기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품 ‘head’는 ‘여기 한 때 모든 동식물들이 존재했었다’는 묘비명처럼 단지 인간이었었다는 것만 알아 볼뿐인 헬멧을 깃발에 꽂고 있다.
화면은 파멸한 지구를 담았다. 인간을 멸망으로 몰고 간 욕망의 주체임을 보여주는 ‘몸’은 영원하지 못함을 은유하고, 기의(記意)란 스위스 기호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이론으로 말에 있어서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를 일컫는다. "대상은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에 인간은 대상을 향해가고 또 간다.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이다. 욕망은 기표이다.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고리이다. (중략) 그렇다면 대상은 실재처럼 보였지만 허구가 아닌가. 대상을 실재라고 믿고 다가서는 과정이 상상계요, 그 대상을 얻는 순간이 상징계요, 여전히 남아 그 다음 대상을 찾아나서는 게 실재계다."<욕망이론, 자크 라캉 지음,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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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97×97㎝ Oil on canvas, 2012 |
작품들은 색채가 현실보다 과장되면서 비현실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회화다. 암시를 바탕으로 떠오르는 오브제(objet)나 배경 등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사성의 원리로 하나의 일관된 느낌과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애초에 이들은 실제로 내 곁에 있는 것들이 아니다. 가상세계에 부유하던 이미지들을 채집한 후 이질적인 개채들을 합성하여 틀 안에 고착했다"고 밝혔다. 오브제들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복합체로 인조인간 로봇 안드로이드, 그리스 신화 속 괴물 키메라, 하이브리드 등과 일맥상통함으로써 앞으로 그의 드넓은 작품세계의 확장을 주목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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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파괴롤 지구멸망 후 신인류 상상"
작가를 서울 인사동서 만났다. 5년여 전에 비해 작품마다 문제 의식이 훨씬 깊게 배어있다는 인상이 짙었다. 화면은 얼핏 섹슈얼한 몸을 드러내지만 유전자 변형생물이나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인다고 느낌을 전하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나의 작업은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네바다 핵실험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을 확대 해석해 인류종말이라는 가설스토리로 끌고 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데 새로운 인류를 상상합니다. 가슴에서 꽃이 자라나고 다리에서 뿔이 솟는 부자연스런 몸은 그러한 인식바탕에서 그려낸 인간이미지이기도 하죠"
그의 작품 프로젝트에는 인간의 멸망과 변종 등 돌연변이에 대한 천착이 깃들여져 있다. 임작가는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주제로 지난 2011년 갤러리 고도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이어 같은 주제로 ‘Plastic WORLD’로 갤러리진선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침묵의 봄’은 합성살충제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생태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자연의 모든 구성요소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운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명저서 이름에서 따왔다.
작가가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다. 이후 2012년 일본 도쿄 ‘Shonandai MY Gallery’에서 ‘Falling Star’라는 주제로 세 번째 개인전을 개최해 이목을 끌었다. 이때는 공교롭게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및 원전사고 방사능유출 등으로 동식물의 돌연변이에 대한 우려를 전 세계가 주목하던 때여서 그의 작품 메시지가 훨씬 강렬하게 전달된 전시이기도 했다.
인간의 혼돈과 멸망을 그린 첫 프로젝트에 이어 ‘mutant’, ‘Queen’ 등의 연작도 환경파괴에서 오는 변종의 생명탄생에 주목하는 작업 연장선상에 있는데 그는 "벨기에 물리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의 흩어지는 구조로도 불리는 ‘무산구조’의 ‘자생적 조직화’라는 우주진화 패러다임에 깊은 흥미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서양화 임장환(Lim Jang Hwan)작가는 동국대학교 서양화전공 및 동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개인전을 3회 가졌고 KIAF, 화랑미술제 등을 비롯해 Worlds Apart Fair(싱가포르), Hong Kong Contemporary(홍콩), Bazaar Art Jakarta(인도네시아) 등 국내외 다수 아트페어에 참여했으며 ‘2009아시아프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권동철 문화전문위원 kd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