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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기후정상회의 ‘기후재정’ 두번째 세션을 주재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녹색기금 1억달러 확대·에너지 신산업 육성 등 적극 참여의지 표명
자동차·철강산업 기후변화대응 취약… “실천 위한 태도변화 필요”
[에너지경제] 기후변화대응(climate change countermeasure)이 박근혜 정부 후반부를 장식할 담론으로 떠올랐다.
지난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UN기후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녹색기후기금(GCF) 출연금 1억달러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또 기후변화 도전을 새로운 가치 수용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삼자고 호소했다.
때문에 향후 한국 사회에서 기후변화대응이 실질적, 지배적 담론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 “기후변화, 국제사회 공동대응해야”
9월은 한국의 기후론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한달이었다.
지난 4일 에너지 신사업 대토론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에너지 효율과 절약, 수요관리를 강조했다.
전기차와 ESS 등 그간 주류 에너지에 밀려 변방에 머물렀던 산업이 전면 부상했고 한전은 중소기업에 대한 포용력 확보와 새로운 시장상황에의 적응을 주문받았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박 대통령은 뉴욕에서 개최된 기후정상회의에도 참석해 기후변화도전을 새로운 가치 수용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삼자고 호소했다. 또 기후재정세션의 공동의장을 맡으며 5000만달러를 약속했던 한국정부의 GCF 출연자금을 1억달러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기후정상회담과 맞물려 개최된 제69차 UN총회의 기조 연설에서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절대빈곤과 기후변화에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절대빈곤과 기후변화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과제들은 복잡성과 상호의존성을 감안할 때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기후변화대응에 관해 “녹색기후기금의 조속한 정착과 글로벌 녹색성장기구의 개도국 지원확대에 협력할 예정“이라며 “한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부담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시장,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과실을 개도국과 함께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무대에서 박 대통령의 기후변화대응 호소는 남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내 석상에서 기후변화대응을 가끔 언급했어도 국제사회에서의 공식 발표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수립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때만해도 전문가들은 박대통령의 에너지에 대한 시각을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신호가 있어야 방향을 잡을텐데 없으니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무표정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정치권이 에너지와 기후변화대응에 관심갖기 시작하면 전문가의 목소리와 의견 반영이 희석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무대응을 환영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있었다.
하지만 9월 들어 진행된 연이은 기후변화-에너지 이벤트는 박 대통령이 그간 장고(長考)를 거쳤음을 보여준 증거가 됐다.
◆기후변화대응 국내 수용 분위기 조성?
박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한 도전을 새로운 가치 수용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대응하자고 호소했다.
‘일자리 창출’은 연관산업 육성을 의미하니 해오던대로 하면 되지만 ‘새로운 가치 수용’은 실천이 녹녹치 않다.
무엇보다 우리 산업이 제조업 중심의 고에너지, 고탄소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력산업인 철강, 자동차, 조선해양플랜트는 무엇보다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하고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철강산업은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였지만 전력 소비가 여전히 크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설비가 온실가스 배출 주적인 석탄화력발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한다면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기여가 도루묵이 된다.
우리 자동차 산업은 특히 기후변화대응에 취약하다. 우리나라 자동차 내수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 현대기아차그룹은 원자재서부터 자동차 완성품까지 수직계열화한다는 명목으로 현대제철을 계열사로 운영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이 현대제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에 취약하다는 점과 생산한 강판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현대제철은 고로만 3기를 갖고 있다. 고로는 파이넥스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다.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매출 30%를 차지하는 주력제품인 H형강의 판매가 급감하자 자동차, 조선용 강판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특히 자동차 부품과 내장재 공급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동부특수강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 선진국은 자동차 경량화를 통한 연비 강화를 목적으로 철강재 외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합금 혹은 탄소섬유를 자동차용 내외장재로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 기후변화대응 움직임에 동참한다는 명분으로 필요한 전력도 수력발전에서 충당하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은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외면한채 국내 시장을 중대형 차량의 소비처로 유지해나간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즉, 우리 자동차 산업의 경우 공정과 최종 생산품 모두 기후변화대응에 취약한 형편이다.
이러한 산업구조 때문인지 환경부가 2012년부터 준비해온 저탄소차협력금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다시금 5년 유예됐으며 예정대로 같은 시기 시행 예정인 배출권 거래제(ETS, Emission Trade System)에 대한 업계의 저항감도 여전하다.
◆기후변화 담론 자리잡으려면?
박 대통령의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호소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엇갈린다.
우리의 주력 에너지 산업인 원자력 발전이 청정에너지(clean energy)로 분류되는만큼 원전 추가 수주를 염두해온 발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간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대응에 무관심했다는 국내외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제스처라는 해석도 있다.
일부 환경론자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신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소규모 FIT(발전차액지원제도, Feed in Tarrif) 도입 등 해묵은 과제의 공론화 기회로 삼을 생각이다.
저탄소녹색협력금 유예를 규탄해오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일부 국회의원들도 박 대통령의 발언을 우리 환경정책현실과 대비시켜 진정성을 따질 기회로 활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호소로 인해 우리 사회가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라는 소용돌이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중론이다.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대응을 실질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 반추해보고 무엇보다 일반 국민들의 태도변화가 수반돼야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의찬 세종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간간히 기후변화대응을 국내 회의에서 호소했지만 지난해 주춤해 보인 것이 사실”이라며 “박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직접적으로 호소한만큼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대응 준비가 됐는지 리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온실가스감축은 대기오염물질 저감보다 어려운만큼 실천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각 부처가 내놓은 기후변화대응 정책을 올곧이 실천하고 제대로 수행됐는지 엄밀하게 측정보고검증(MRV, measurement, report, verification)될 때 박 대통령의 호소가 제스처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었다.
이어 전 교수는 “무엇보다 일반 국민들의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